곧 60인데 대만으로 체험학습 다녀왔습니다

임경화 2024. 8. 2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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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가게 연 지 17년 만의 여행... 공부한 중국어 실컷 듣고 말하고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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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화 기자]

올 초에 여권을 갱신하고 첫 여행을 다녀왔다. 도시락가게를 연 지 17년 만이다. 자영업을 하면서는 휴가를 제대로 보내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사정보다 고객의 사정에 좌지우지 되는 피동적인 삶을 살다 보니, 어느 정도의 포기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제 좀 벗어나고픈 열망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번 휴가는 그런 점에서 나에게 주는 포상휴가라고나 할까? 돌봐 드려야 할 친정엄마도 안 계시고, 아들 딸은 각자 자기 스케줄로 움직이다 보니 남편만 괜찮다면 며칠이라도 다른 곳에서 살다 오고 싶었다.

다람쥐 챗바퀴처럼 굴러가는 자영업자의 세계에 한 줄 변화를 준 중국어 공부가 이번엔 여행의 동기가 되 주었다. 10여 년 전 중국에 선교사로 친한 벗이 떠났을 때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공부였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곳에서 친구도 보고 친구의 사람들도 만나고 싶었다.

그러다가 우연하게도 동네 주민센터에서 모집하는 초급중국어 강좌를 시작으로 더디지만 꾸준히 공부를 하게 되었다. 코로나 기간에 남편이 내게 권했다. "요즘처럼시간 될 때, 당신~ 공부 좋아하는데 사이버대학에 진학해서 중국어 공부를 제대로 하는 건 어때?" 그렇게 주경야독을 시작했다.

정신없이 낮에는 도시락을 만들고 저녁에는 컴퓨터 앞에서 중국어 공부를 하는 늦깎이 대학생활을 4년 보낸 후 올초에 중국어 학사를 받았다. 그렇지만 맘처럼 중국에 여행 갈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광복절 연휴가 있는 주간에 주말을 포함하면 3박4일 여행이 가능했다.

남편한테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동안 나를 고스란히 보아왔던 터라 기분 좋게 동의해 주었다. 함께 중국어를 공부하는 동료들과 대만으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 중국은 모든 선교사를 추방하는 추세여서 친구한테는 갈 수 없었지만 중국어를 맘껏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대만이 최적의 여행지였다.
 대만의 지하철은 단어 공부 하기 좋다
ⓒ 임경화
이번 여행을 중국어 체험학습(?)이라고 이름 붙였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중국어가 들린다. 기내방송을 하는 기장의 목소리도, 기내식을 가져다 주는 승무원의 목소리도 다 중국어이다. 대만에 도착하자 중국어와 한자가 이리저리 춤을 춘다. 중국어 특유의 성조 때문인지 지하철에서 깔깔대는 여학생의 웃음소리도, 지하철 역내 안내방송도 들렸다 안 들렸다를 반복하면서 생경한 세상에 어느새 도착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지우펀의 밤거리를 걸었다
ⓒ 임경화
마치 이상한나라의 엘리스가 내 손을 끌여들여 요런 세상으로 이끌어 준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새삼스럽고 활기찬 세상이었다. 훅 하는 뜨거운 바람과 조금만 지나도 습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타이페이의 공기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듯 달랐다. 돌아가면서 대만 사람에게 길을 물었고, 차례가 되면 중국어로 주문을 했다. 현지인들은 어설픈 우리 중국어가 귀여운 듯 즐겁게 답 해 주었다.
교과서로만 배운 언어들이 어느새 현장에 나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만큼이나 지하철이 잘 되어 있어서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였다. 역마다 붙어있는 지명들은 읽기에 최적화 된 공부가 되었다.
 사람 냄새 나는 대만의 시장 골목에서 우육면을 먹었다
ⓒ 임경화
우리는 마치 한글을 처음 배울 때 엄마와 동네 간판을 읽듯 보이는 대로 읽어보고 말 해 보았다. 호텔로 들어와서도 TV를 틀면 중국어가 나오고 복도 끝에서 만난 호텔리어도 중국어로 인사했다. 60에 가까운 내 모습은 어디 가고 잠깐이나마 소녀처럼 순간순간 설렘을 경험하는 내가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즐겁고 자유로우니 만족스러웠다.
짪은 시간이었지만 되도록 현지인 음식점에 가고 관광지보다는 시장이나 동네 뒷골목 쯤을 돌아 보면서 소소하고 편안한 3박 4일을 살고 왔다. 내년에는 중국 본토를 한번 가보고 싶다. 바쁜 일상을 떠나 깨끗하고 조용한 호텔에서의 시간도 좋았고,매 끼마다 남이 해 주는 밥도 좋았다.
 대만의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 보았다.
ⓒ 임경화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는 새하얀 뭉게 구름과 연분홍 노을도 좋았고 기내식도 맛있게 먹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과의 수다도 좋았고, 낯선 거리에서의 낯익은 대만 사람들도 좋았다.

살짝 피곤함을 뒤집어 쓰고 공항에 내리니 남편이 마중을 나와준 것도 좋았고, 아들이 여비에 보태라고 준 용돈 봉투도 좋았다. 그러나 다 좋았는데 내가 집에 도착해서 씻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을지 아마 상상 못하겠지. 촌스럽게도 매운 라면을 하나 끓여서 혼자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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