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과 이혼한 줄도 몰랐다"…朴이 밝힌 '정윤회와 인연'
■ ‘박근혜 회고록’ 다시보기
「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자 첫 탄핵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며 기약 없는 파국의 길을 걸었습니다. 4년 9개월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2021년 12월 31일 사면된 박 전 대통령은 국내 언론 최초로 더중앙플러스 '박근혜 회고록(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87)'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중앙일보 독자 여러분을 위해 재임 기간 동안의 국정 비화와 최순실 게이트 등 박 전 대통령의 솔직한 심경이 담긴 회고록을 각 파트별로 엄선하여 1화를 전문 무료로 공개합니다.
‘The JoongAng Plus(더중앙플러스)’는 중앙일보의 역량을 모아 마련한 프리미엄 지식 구독 서비스로, 재테크·육아·건강 등 134개에 이르는 다양한 시리즈를 구독 후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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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 최순실과 탄핵편〉
최순실과의 이혼도 몰랐다…朴이 밝힌 ‘정윤회와 인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3341
문건 배후엔 김무성·유승민? 朴 “촉새 女의원의 음해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3665
“대통령님, 비덱이 뭔가요?” 잡아뗀 최순실, 난 믿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3853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자괴감” 참모 말린 이 말 직접 넣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4162
시중에 나돈 ‘탄핵 찬성’ 62명…날 힘들게 한 명단 속 그 이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4472
최순실 일탈 왜 보고 안됐나…어렴풋이 짐작 가는 게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7551
」
「 〈제1부〉 정윤회와 인연 - 조응천·박관천의 황당 소설 」
2014년 11월 잊고 지냈던 ‘정윤회’라는 이름을 다시 듣게 됐다. 정윤회 실장(과거 비서실장을 지내 ‘정 실장’으로 호칭)이 나의 측근인 청와대 비서관 3명(이재만·정호성·안봉근)을 비롯해 10명의 여권 인사들과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세계일보 기사(2014년 11월 28일) 때문이었다.
나는 기사를 보는 순간 ‘이것은 완전히 사실이 아닌 게 보도됐구나’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윤회 실장은 이미 오래전에 내 곁을 떠난 사람이었다.
이 사건과 연루된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 행정관이 나중에 검찰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가 1위, 정윤회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이 언론에 보도돼 사회적으로 파문이 일었던 적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그런데 이로부터 2년 뒤 최서원 원장(과거 유치원 원장을 지내 ‘최 원장’으로 호칭) 문제가 불거지자 최 원장의 전 남편이었던 정 실장이 정말로 정권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또 정 실장의 실체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정윤회 실장과의 관계를 소상히 설명하려고 한다.
달성군 결전 앞두고 최서원 모친이 정윤회 추천
정 실장을 알게 된 것은 1997년 말께로 기억한다. 나는 그해 대선 막판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돕기로 하고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그때 나에게 정 실장을 추천한 사람은 최서원 원장의 모친, 그러니까 정 실장의 장모인 임선이 여사였다. 79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청와대에서 나오게 됐을 때, 임 여사는 나의 어려운 형편을 헤아려 여러 가지를 챙겨주시던 분이었다. 임 여사는 내가 선거운동에 뛰어들면 옆에서 실무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보고 사위였던 정 실장을 나에게 보낸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선거운동을 한 기간이 워낙 짧았기 때문에 정 실장과는 서로 안면을 튼 정도에 불과했다.
정 실장이 내 주변에서 본격적으로 역할을 맡은 것은 내가 98년 4·2 국회의원 재·보선에 나가 달라는 요청을 받고서다. 그 무렵 한나라당의 상황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한나라당은 처음으로 야당 신세가 되면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만큼 이 재·보선은 당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선거로 인식됐다.
애초 내가 출마하기로 한 지역은 경북 문경-예천이었다. 지역의 요청도 있었고,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교편을 잡으셨던 곳이었기 때문에 나도 숙고 끝에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그런데 갑자기 변수가 생겼다. 선거를 두어 달가량 앞두고 당에서 대구 달성에 출마해 달라는 것이다. 당시 대구 달성의 여당(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이었다. 한나라당에서 누가 출마하더라도 20~30%포인트가량 크게 뒤진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이곳 출신인 엄 후보는 지역을 탄탄히 관리한 데다 대구·경북 진출을 노리던 여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 경력이 전무한 그를 여당의 부총재로 임명했을 정도였다. 덕분에 지역 개발과 정부 지원 등 대형 공약을 앞세워 그는 압도적인 격차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요구를 받은 나는 당황스러웠고, 주변에서도 강력하게 만류했다. 하지만 당의 어려운 형편을 아는 데다 간곡하게 부탁하니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애당초 개인의 정치적 욕심을 바라고 나선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선거를 한 달 앞둔 상황에서 가보니 분위기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좋지 않았다. 한나라당 달성군지구당 사무실이었던 곳은 상대 후보의 선거사무실로 바뀌어 있고, 조직도 상대 쪽에 많이 넘어간 상태였다. 앞서 사퇴한 전임 한나라당 의원은 개인적인 문제로 당원 명부를 인수·인계조차 해줄 형편도 아니었다. 여론조사 격차도 여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에서도 지는 선거라고 판단했는지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최태민 사위’ 꼬리표에 고생한 정윤회…차츰 멀어져
막막한 상황 속에서 나는 당장 선거를 도울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임선이 여사가 “가까이서 봐왔는데, 사람이 괜찮다.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사위인 정 실장을 다시 한번 추천했다. 나는 얼마 전 대선 때의 인연도 있고 해서 선뜻 승낙을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단 3명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루 20시간이 넘는 강행군이 매일같이 이어졌다. 정 실장은 녹록지 않은 상황 속에서 열심히 도왔다. 항공사 직원 출신인 그는 매너가 깔끔했고, 일 처리도 무난한 스타일이어서 안심이 됐다. 나는 20~30%포인트 열세였던 선거를 기적처럼 뒤집어 승리했고, 정 실장은 입법보조원으로 여의도에서 나를 계속 돕게 됐다.
그랬던 그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내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다. 당시 경쟁 상대였던 이명박 후보 측에선 나와 관련된 여러 가지 마타도어를 퍼뜨렸는데, 가장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것은 최태민(최서원 원장의 선친) 목사 일가 문제였다. 최 목사 일가가 소유한 부동산이 나와 관련된 재산이라는 의혹을 비롯해 아무 근거도 없는 음해가 집요하게 이어졌다. 97년부터 나를 도운 정 실장도 ‘최태민의 사위’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러다 보니 정 실장은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2016년 12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 실장의 부친이 “며느리가 아들을 쓰지 말라고 진언해서 박 대통령과 멀어졌고, 두 사람도 이혼했다”는 식으로 말한 것을 나중에 알게 됐는데, 사실 나는 두 사람이 이혼했다는 것도 시간이 꽤 지난 뒤에야 알게 됐다. 다만 정 실장에게 가정사 등 개인적 문제가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해 정 실장은 차츰 업무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고, 내가 대선에 출마한 2012년이 되기 전 일을 완전히 그만뒀다. 나와의 인연도 거기까지였다.
정윤회, 중국집서 3인방 조종해 국정 개입? 황당한 얘기
다만 나는 대선에서 승리하고 2013년 청와대로 들어가기 전 고마웠던 분들에게 연락하면서 정 실장에게도 오랜만에 전화해 “그간 많이 도와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고, 이후 서로 어떤 접촉도 없었다.
그러니 정 실장이 청와대 인사를 포함한 10명과 매달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모임을 갖고 국정에 개입했다느니, 김기춘 비서실장의 퇴출을 꾸미고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안봉근·이재만·정호성 비서관 등 나를 오랫동안 도운 비서관 3인방도 정 실장이 데려온 사람들이라는 말도 그럴듯하게 퍼졌다.
이참에 이 세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모두 내가 98년 대구 달성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전후부터 함께 한 사이다. 안봉근 비서관은 원래 대구 달성의 전임 국회의원이었던 김석원 전 의원의 수행비서였다. 내가 막 대구 달성으로 왔을 때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는 딱 적임자였다. 정호성 비서관은 내가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대학교수의 추천을 받아 일하게 됐다. 정 비서관은 그의 제자였다. 이재만 비서관은 나성린 전 의원의 추천을 받아 들어왔다.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이 안 비서관이었고,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보좌진을 충원하는 과정에서 나머지 두 사람도 들어오게 됐다. 이들은 서로 성격이나 업무 스타일도 달랐지만, 모두 사심이 없고 착실했다. 그래서 내가 정계 입문한 이래 18년간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정 실장이 이들 3명을 뽑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또 정 실장이 이들에게 지시를 내릴 처지도 아니었다. 이들이 정 실장과 오랜 시간 함께 일했으니 혹여 한두 번 식사 정도는 했을 수도 있겠지만, 청와대와 무관한 정 실장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다든가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들에게 세계일보 보도에 대한 내용을 확인해봤는데, 역시 “사실무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오보라는 확신을 갖게 된 나는 진상을 제대로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얼마 후 이재만 비서관은 세계일보의 ‘정윤회 리스트’ 보도를 고소했다. 터무니없는 소설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사회적 혼란이 너무 커지고 있었다. 배후를 하루빨리 규명해 더는 혼란이 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당 보도에서 정 실장과 주기적으로 만난다고 했던 이 비서관은 고소인 자격으로 12월 14일 검찰에 출두했다.
조응천, 박관천이 쓴 ‘황당 소설’ 나라 흔들었다
2015년 1월 5일 검찰은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나중에 재판에서도 확인됐지만 정윤회 실장이 청와대 비서관들을 뒤에서 지휘하며 국정에 개입한다는 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그리고 이런 황당한 소설을 만든 것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조응천 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공직기강비서실 소속 행정관 박관천 경정으로 드러났다.
박 경정은 행정관 시절이던 2013년 박동열 당시 대전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증권가 지라시’와 풍문을 듣고 이를 조 비서관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이후 조 비서관이 진상 파악을 지시하자 박 경정은 박 청장으로부터 전달받은 각종 풍문과 정보를 과장하고 추가해 마치 정윤회 실장이 국정에 개입했던 것처럼 조 비서관에게 보고했던 것이다. 정 실장이 청와대 비서관 3인방과 김기춘 비서실장을 퇴출 시키려고 모의했다는 내용도 그 보고서에 있었다. 2014년 1월 조 비서관으로부터 이를 전달받은 김기춘 실장은 ‘터무니없는 지라시 수준’이라며 일축했다고 한다. 너무 황당하다 보니 나에게 보고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2014년 11월 세계일보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 나서야 ‘정윤회 보고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언론에 의해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엔 조 비서관과 박 경정 모두 공직기강비서실을 떠난 상태였다. 조 비서관은 2014년 4월 초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청와대 내부 비위 사실을 감사한 내용이 언론에 유출된 책임을 물어 자리를 떠났고, 박 경정은 이보다 한 달 앞서 원 소속인 서울 도봉경찰서 정보과로 복귀했다. 그런데 박 경정은 이때 물러나면서 남산에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분실에 짐을 잠시 보관했는데 이때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과 경찰들이 예전에 박 경정이 만들었던 ‘정윤회 보고서’를 몰래 훔쳐보고 언론에 흘리면서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된 것이다.
이것이 나라를 뒤흔들었던 이른바 ‘정윤회 리스트’의 실체다. 권력서열이니, 국정을 비밀리에 움직이는 ‘십상시’니 하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들이 돌아다녔고 사실처럼 위력을 행사했다. 일반 국민은 청와대에서 보고서가 작성되고 언론에도 보도됐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1부- 최순실과 탄핵〉 다음 편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문건 배후엔 김무성·유승민? 朴 “촉새 女의원의 음해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3665
“대통령님, 비덱이 뭔가요?” 잡아뗀 최순실, 난 믿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3853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자괴감” 참모 말린 이 말 직접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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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나돈 ‘탄핵 찬성’ 62명…날 힘들게 한 명단 속 그 이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4472
최순실 일탈 왜 보고 안됐나…어렴풋이 짐작 가는 게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7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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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회고록’ 다시보기 목차
「 〈인터뷰 영상 풀버전〉
박근혜 前대통령 침묵 깼다 “탄핵 제 불찰, 국민께 사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5342
〈2부 - 정책편〉
내가 삼성병원장 꾸짖었다? 사진 한장이 괴담 만들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9249
난 욕 먹고 연금개혁했는데…文, 손 하나 까딱 안 하더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5050
“지구상 이런 나라 몇 있을까”…내가 국정교과서 마음 먹은 순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2773
〈3부 - 국내 정치편〉
안대희·이완구 다 날아갔다…“가슴 쓰렸다” 총리 잔혹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9668
朴 “내가 혼외자 터뜨려 채동욱 찍어냈다? 황당하단 말도 아깝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9967
통진당 해산 반대한 문재인…朴 “위기때 실체 드러나는 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0295
박근혜가 직접 택한 남자…“그가 내 앞에서 울먹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3922
그날 밤, 연락 끊은 유승민…그와의 관계 그때 파탄 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6770
유승민 그리 키울 일 아니었다…2016년은 정말 되는 게 없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7097
“내가 알던 진영 아니었다” 朴 놀라게한 측근의 돌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7448
〈4부 - 외교안보편〉
“위안부 합의 들은 적 없어” 윤미향 오리발, 말문 막혔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6717
朴 커터칼 테러때 도착한 쇠고기, 거기엔 아베 편지 있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6960
안 그래도 ‘최순실’ 터졌는데…朴, 왜 논란의 지소미아 집착했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7297
개성공단 폐쇄, 내가 선수쳤다…뻗대던 北, 그제야 꼬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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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협상 결렬” 문 박차자, 김양건 “뭔 결렬” 팔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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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공들여 성공한 첫 방미…하필 그때 윤창중이 사고쳤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8606
中 전승절때 구석 밀려난 北, 최용해는 나와 눈 마주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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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전투기가 되겠냐던 文, KF-21 출고식서 “우리가 개발”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1087
가발까지 쓴 표창원·손혜원…춤추며 ‘사드 괴담’ 퍼뜨렸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2466
〈5부 - 세월호의 기억편〉
“내가 정윤회와 호텔서 밀회?”…朴 직접 밝힌 ‘세월호 7시간’ (상)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1531
세월호 그날 청와대 왜 갔나…朴 밝힌 ‘최순실 미스터리’ (중)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1874
朴 “나도 흥분해 경질했다”…교육장관 ‘황제 라면’ 진실 (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2193
〈6부 - 검찰 수사편〉
朴 “왜 더러운 사람 만드냐” 검사 면전서 서류 확 밀쳤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5628
최순실과 눈도 안 마주쳤다, 그녀는 중요한 말은 쏙 뺐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5911
“딱 하나 사실대로 말 안했다” 검찰조사 그날, 박근혜의 고백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6280
“뇌물죄, 이미 정해져 있었다” 판사도 놀란 朴 최후 입장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7326
〈7부 - 수감생활편〉
컵라면 물 가득 부어 끼니…의사는 내 어깨 보고 “참혹”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7878
동생 지만 면회도 거절했다…박근혜가 감추고 싶었던 것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8944
박근혜, 희미한 미소 띤 채 “내일 감옥 가는 건가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9160
尹 “참 면목없고 늘 죄송했다”…당선인 돼 찾아온 ‘특검 팀장’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9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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