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인사이트] 윤 대통령, '의료대란' 왜 침묵하나
[이충재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4월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료개혁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
ⓒ 대통령실 제공 |
윤 대통령의 의정대립에 대한 언급은 총선 전인 지난 4월1일 대국민담화가 마지막이었습니다. 당시 윤 대통령은 51분 동안 읽어내려간 담화에서 "기득권 카르텔과 타협 불가"를 강조했습니다. 증원 규모 2000명 졸속 결정에 대해선 "충분히 검토한 정당한 정책을 절차에 맞춰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최근 국회 청문회에서 의대 증원 심사 회의록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폐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윤 대통령의 발언은 거짓으로 판명났습니다. 정부가 정책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회의록을 파기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총선 참패 후에는 의료갈등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언급이 아예 사라졌습니다. 그사이 아리셀 화재와 집중 호우, 티메프 사태, 심지어 올림픽과 관련해서도 메시지를 냈지만 일반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재난에는 별 관심이 없는 모습입니다. 헌법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대통령이 정면으로 헌법을 위배하고 있는 셈입니다. 어떤 메시지를 내도 정무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2천명 무리한 증원... 의사 양성 시스템, 연쇄적으로 붕괴시켜
사회적 재난에 가까운 의료갈등의 가장 큰 책임이 윤 대통령에게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총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윤 대통령이 일찌감치 2000명이라는 비현실적 규모를 책정해놓고 밀어붙였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국회에서 "의료공백이 이토록 오래 지속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힌 것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윤 대통령의 갑작스런 결정으로 무리한 증원이 가져올 후유증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는 사실을 실토한 겁니다.
당장의 의료대란도 걱정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의사배출이 연쇄 차질을 빚으면서 앞으로 최소 4,5년 간 의사 공백 사태가 불가피하다는 점입니다. 의대생에서 수련의(인턴), 전공의(레지던트), 전문의로 이어지는 의사 양성 시스템이 연쇄적으로 붕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공중보건의나 군의관 등 공공·지역의료부터 타격을 입고 가뜩이나 기피과목인 흉부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도 무너질 게 명확한 상황입니다.
행정처분 철회 등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쓴 정부로서는 사실상 속수무책입니다. 전공의에게 의존했던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대책도 의사배출이 꽉 막힌 상황에서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한국 의료체계가 벼랑끝으로 몰린데는 집단이탈한 의사들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27년만에 의대증원이라는 중요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졸속으로 밀어붙인 정부, 특히 대통령에게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이 이제라도 의료대란을 야기시킨데 대해 사과하고 수습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윤 대통령은 임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이달 말쯤 국정브리핑을 열고 4대개혁 등에 대해 설명한다는 계획이지만 국민연금 개혁안에 의료갈등은 뒷전으로 밀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최근 응급실 운영 중단 등 국가의료 붕괴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윤 대통령부터 책임감을 갖고 의료계와 대화에 나서는 게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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