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우유만 팔다간 망하게 생겼다"…생존 위기 몰린 유업계[산업 덮친 인구소멸]
작년 분유 생산가동률 1.88%
우유 소비도 감소세…생존 위기
"초코에몽 마시러 갈래?"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잘파 세대'가 술자리에서 호감을 표시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초코에몽은 남양유업이 2011년 일본의 애니메니션 캐릭터 도라에몽을 내세워 출시한 초코우유인데, 숙취 해소에 탁월하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 들어 2030세대에서 일명 '술자리 플러팅 우유'로 불린다.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분유시장 과반을 점유했던 남양유업이 저출산으로 인해 분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유제품 다각화에 나선 것이다.
반세기 넘게 이어진 저출산 흐름 속에서 버티던 국내 분유 업계가 생사기로에 섰다. 산업화 과정에서 맞벌이 가구 증가로 조제분유를 먹이는 산모가 늘면서 팽창했던 분유 시장은 2000년대 초반 초저출산(합계출산율 1.3명 이하) 시대로 접어들면서 성장세가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08년 중국의 분유 파동 이후 한국 분유에 대한 인구 대국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는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와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최근 수년간 치열한 생존 싸움 중이다.
초저출산 직격탄 분유업계…작년 생산 가동률 1.88%
2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영아용 및 성장기용 조제분유 생산량은 6776t으로 집계됐다. 전체 생산능력(35만9603t) 중 1.88%만 사용한 셈이다. 국내 조제분유 생산량은 1978년 1만3730t에서 꾸준히 증가해 1992년 2만7559t을 기록한 뒤 등락을 거듭하다 2010년 이후 반등하며 2017년 2만1000t까지 회복했지만, 최근 수년간 대폭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생산량은 정점이던 2017년과 비교하면 67%가량 주저앉은 수준이다.
이 같은 통계는 남양유업 분유 매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분유 매출이 2000년 2083억원을 기록한 후 감소세로 돌아선 뒤, 2006년 1100억원대까지 떨어졌다. 이후 반등이 시작된 것은 2008년이다. 중국산 분유를 먹은 영유아가 잇달아 사망하는 이른바 '멜라민 분유' 사건이 터지면서다. 초고속 성장을 이룬 중국에서 안전한 한국 분유를 찾기 시작했고, 국산 분유 수출이 대폭 늘었다. 남양유업의 매출도 2008년 1500억원에서 2013년 3790억원까지 150%나 급증했다. 하지만 국내 지속적인 출산율 하락에 따른 내수 위축과 중국의 성장세 둔화가 맞물리면서 남양유업 분유 매출도 우하향 곡선을 그려왔다.
우리나라는 1983년 합계출산율이 2.1명 이하로 떨어진 저출산 시대로 접어들었고, 2002년부터 20년 넘게 초저출산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분유 업계는 쪼그라든 내수 시장 대신 중국을 피난처로 삼아 저출산 타격을 피해 갔다. 하지만 사드 사태 이후 중국 수출길마저 막히면서 출생아 감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실제 매일유업은 사드 사태 직후인 2018년 조제분유 전용 생산단지인 아산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매일유업의 지난해 분유·유아식 생산량은 일평균 6만2253개로 1년 전(7만5754개)보다 17.8%(1만3501개)가 줄었다. 하루 평균 생산량을 공개하기 시작한 2020년(8만3330개)과 비교하면 3년 새 25.3%(2만1077개) 감소한 수치다. 생산량 감소로 평균가동률도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분유·유아식 부문의 가동률은 31.0%로 전년 대비 6.6%포인트, 2020년보다 10.5%포인트 감소했는데, 이는 지난해 전체 평균가동률(64.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최근 수년간 조제분유 생산량이 대폭 줄어든 것은 내수가 뒷받침하지 못한 탓이다. aT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분유 소매시장 매출액은 520억원으로 1년 전(580억원)보다 10.3%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2020년 896억원 수준이던 분유 판매액은 매년 가파르게 감소하며 지난해까지 3년 사이 40.2%가 줄어들었다.
분유 회사들은 이 같은 내수 판매 급감에 따라 초코에몽 등 신제품으로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그 결과 분유 회사의 핵심제품인 분유 매출 비중이 대폭 감소했다. 남양유업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분유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8년 32%에서 지난해 18%까지 축소됐다.
문제는 우유 소비도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우유 소매시장 매출액은 2조6181억원으로 2019년(2조5132억원)과 비교해 최근 4년 사이 4.2% 증가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체 우유시장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는 흰 우유 매출액은 1조6591억원으로 1.0% 감소했다. 전체 우유 판매액의 경우 소폭 늘어나긴 했지만 최근 몇 년간 늘었다 줄기를 반복하며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분유와 우유의 판매 부진에 따라 유업계의 실적도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다. 매일유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7830억원으로 2020년(1조4631억원)과 비교해 몸집은 불어났지만 영업이익이 865억원에서 722억원으로 줄면서 영업이익률은 5.9%에서 4.0%로 하락했다. 국내 최대 유업체인 서울우유도 지난해 업계 최초로 매출액 2조원을 넘겼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서울우유는 지난해 매출 2조238억원, 영업이익 517억원으로 영업이익률 2.6%를 기록하며 부진했던 직전 해(1.7%)보다는 개선된 실적을 거뒀지만 2020년(3.0%)과 비교해선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했다.
유업계 생존 카드는 초고령 사회 공략
극심한 저출산 문제로 기존 전략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유업체들도 주력 소비층을 영유아에서 성인층으로 변경하며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매일유업은 단백질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셀렉스'와 균형영양식 전문 브랜드 '메디웰'을 선보인 데 이어 지난달에는 매일헬스뉴트리션을 통해 시니어 특화 영양식 브랜드 '오스트라라이프'를 출시하는 등 환자·고령친화식 제품도 확대할 방침이다.
매일유업은 2018년 10월 성인 영양식 제품인 셀렉스를 처음 출시했고, 2021년 10월에는 셀렉스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매일헬스뉴트리션 법인을 신설했다.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까지 셀렉스 누적 매출은 3590억원이다. 김선희 매일유업 부회장은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하계포럼 강연에서 "우유만 파는 중소기업은 2026년 이후 다 없어질 것"이라며 저출산 시대에 맞춘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중요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남양유업도 아기 먹거리 기업에서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라이프케어 브랜드로 대대적인 전환을 꾀하고 있다. 최근 '임페리얼XO 액상분유' 제품의 판매를 중단한 남양유업은 이달 들어 건강기능식품 신제품 '이너케어 뼈관절 프로텍트'를 출시하며 포트폴리오 변화에 속도를 가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단백질 브랜드 '테이크핏' 등 단백질·건강기능식품 등 신제품 시장 제품은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남양유업은 자사 공장 5곳 중 나주공장, 세종공장 2곳에 건기식 생산을 위한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인증을 받고 시니어를 위한 제품 라인업을 늘리고 있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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