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정치' 동시에 꺼냈다…한동훈∙이재명 중도 쟁탈전 [8·25 당대표 회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양당 대표 회담(25일)을 열기로 하면서 본격적인 정면 승부에 돌입했다는 평가다. 4·10 총선 당시 대결이 의석수를 다투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었다면, 선거가 없는 시기에 벌어질 이번 레이스는 차기 대선 후보로서 존재감을 보이면서 진영내 지지 확보와 중도층 공략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할 고차방정식에 가깝다.
둘은 우선 민생을 고리로 한 중도층을 전장(戰場)으로 택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1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격차해소특별위원회 신설을 준비하고 있다”며 “파이 키우기와 함께 격차해소 정책에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격차해소 강조는 보수 정당의 좌클릭으로 볼 수 있다. 한 대표는 “대한민국의 우상향은 개개 국민의 우상향과 동반될 경우 정말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며 “파이를 키우는 정책, 그리고 격차를 해소하는 정책을 똑같이 중시하고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격차 해소 정책은 일률적인 현금 살포와 다른 것”이라며 민주당과 선을 그었다.
반면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의 목적은 뭐니 뭐니 해도 먹고사는 문제, ‘먹사니즘’”이라며 “우리 앞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성장을 회복해서 더 많은 기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당대표직 수락 연설에서 “멈춰 선 성장을 회복하고 지속 성장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밝힌 데 이어, 이틀 연속 보수의 트레이드마크인 ‘성장’을 강조한 것이다. 다만 이 대표가 제시한 성장 비전은 ▶AI시대를 대비한 기본사회 ▶에너지 대전환에 대응할 에너지 고속도로 등 기존 민주당과 궤를 함께했다. 이 대표는 “이제 실천으로 성과를 내야 할 때가 됐다”며 “국민 삶에 보탬이 되는 정책이라면 모든 것을 열어두고 정부·여당과 협의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민생 이슈를 앞세운 두 사람은 일사천리로 양자 회담에 합의했다. “국민 삶에 관한 사안은 제한 없이 원하는 모든 의제를 다 얘기하면 좋겠다”(이재명), “우리 둘 다 ‘민생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뜻에 의기투합하고 있다”(한동훈)며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자 양당 대표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과 이해식 민주당 의원이 실무 논의를 거쳐 25일 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정치권에선 “구체적인 의제를 놓고 서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으며 정국 돌파구를 찾아내는 형식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양측이 신속한 합의에 도달한 건 “극단적인 정쟁이 반복되는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각자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부에선 줄곧 특검법과 탄핵안을 밀어붙여도 변화를 만들어내진 못한 데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협상론이 대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역시 “여당이 민생 정책 주도권을 가져와서 ‘유능한 정책 정당’이 되어야 한다” “거대 야당에게 무기력하게 밀리는 모습을 반복하면 안 된다”는 고민 끝에 전격적으로 대표 회담을 수용했다.
다만 회담 의제와 형식을 둘러싼 실무 협상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양측 모두 “회담이 엎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지만, 구체적인 의제 하나하나가 합의점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특히 민주당이 선(先)순위 의제로 요구하는 순직해병 특검법을 둘러싼 여권 내 입장차가 뇌관이다. 친한계에선 “이슈에서 벗어날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당 관계자)는 입장이지만, 친윤계에선 “특검법 협상을 벌이는 것 자체가 야당의 ‘프레임 전쟁’에 갇히는 자충수”(중진 의원)란 비판적 인식이 팽배하다. 이 대표 역시 대표 회담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여당 주장을 일부 수용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와의 비타협적인 ‘끝장 투쟁’을 요구하는 강성 지지층을 견인할 수 있느냐가 숙제다.
그런 의미에서 8·25 대표 회담이 한동훈·이재명 대표 두 사람 모두의 정치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두 사람이 이번 회동을 만나는 용도로만 활용하고 서로 입장차만 확인할 경우, 정국은 굉장히 얼어붙고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질 것”이라며 “반면에 양당 대표 회담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낸 이후 영수회담이나 3자 회담으로 이어진다면 지도자로서 둘의 위상은 더 높아지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오현석·김정재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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