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삼 목사의 신앙으로 세상 읽기] ‘거룩한 잡놈’

2024. 8. 20. 03: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지 않은가.

"나는 퍼뜩 '잡놈'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중략) 나도 잡놈이 되고 싶어졌다. 목사라는 제사장적 순혈주의, 그 위선적인 거룩함과 순혈주의적 사제의 모습을 벗고 잡놈이 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도 참 잡스럽게 사셨다. 목사 의사 선생 혁명가 설교자 상담가. 아, 그래서 예수님 말씀이 꿀맛이었구나."

목사가 잡놈이 돼야 하는 이유는, 거룩한 곳에만 머문다면 '수도사'는 될 수 있어도 진정한 목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땅의 목사들이 '거룩한 잡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지 않은가. 수년 전 어느 일간지에 소개된 이야기다. 주인공은 충북 영동 물한계곡에서 아주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김선주 목사다. 기사에 소개된 내용은 김 목사가 목회하는 동네 노인정에 써 붙여 놓은 ‘목사 사용설명서’였다. ‘1. 보일러가 고장 나면 전화합니다. 2. 텔레비전이 안 나오면 전화합니다. 3. 냉장고, 전기가 고장 나면 전화합니다. 4. 휴대폰이나 집전화가 안 되면 전화합니다. 5. 무거운 것을 들거나 힘쓸 일이 있으면 전화합니다. 6. 농번기에 일손을 못 구할 때 전화합니다. 7. 마음이 슬프거나 괴로울 때 전화합니다. 8. 몸이 아프면 이것저것 생각 말고 전화합니다. 9. 갑자기 병원 갈 일이 생겼을 때 전화합니다. 10.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합니다.’

이 설명서를 보면서 10번째가 참으로 압권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목사가 있다는 것이 너무 귀하고 감사해서 작은 정성을 보냈다. 며칠 후 본인이 쓴 책이라며 따뜻한 선물과 함께 도착했는데, 책에 나오는 소제목 중 ‘거룩한 잡놈’이 있었다.

“나는 퍼뜩 ‘잡놈’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중략) 나도 잡놈이 되고 싶어졌다. 목사라는 제사장적 순혈주의, 그 위선적인 거룩함과 순혈주의적 사제의 모습을 벗고 잡놈이 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도 참 잡스럽게 사셨다. 목사 의사 선생 혁명가 설교자 상담가…. 아, 그래서 예수님 말씀이 꿀맛이었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진짜 목사가 되려면 ‘잡놈’이 돼야 할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목사가 ‘쓰임’을 생각하지 않고 ‘대접’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가나 특별대우를 받고 교인들이 지극정성으로 받들어주니 ‘잡놈’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이 말에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목사가 잡놈이 돼야 하는 이유는, 거룩한 곳에만 머문다면 ‘수도사’는 될 수 있어도 진정한 목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잡놈’이어야 하지만 ‘거룩한 잡놈’이어야 함을 놓쳐서는 안 된다.

미국 ABC방송국에서 포스트모던 시대에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주제로 ‘교회 같지 않은 교회 9곳’을 선정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레볼루션 처치(Revolution Church)’와 그 교회를 목회하는 제이 베이커 목사였다. 교회는 교회 같지 않았고, 목사는 목사 같지 않았다. 온몸에 문신을 하고 술집을 빌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교회답지 않은 곳에 교인답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말씀을 듣는데 2~3년이 지나자 이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보도였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접근방식이 이와 비슷했던 것 같다. 너무 비약이 심한 걸까. 레볼루션 처치가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지만 예수님의 방식과 가장 근접한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은 삶의 방식을 바꾸고 당신을 좇으라고 단 한 번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부르셔서 그와 함께 식사하셨을 뿐인데, 어느 날 그가 예수님 사역의 동반자가 되었다. 자신의 집에서 잔치를 벌이고 다른 세리들과 죄인들을 예수님께로 초대한 것이다. 신기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하면 그를 영접한 이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변화된다는 것이다.

‘잡놈’이 돼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목사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큰 교회를 목회하며 ‘외로운 섬’이 되거나 홀로 거룩해 ‘수도사’가 되기보다 모든 교인에게 쓰임받는 잡스러운 목사가 되는 것이야말로 목회자를 부르신 이유가 아닐까. 거룩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일을 하는 곳이 거룩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 땅의 목사들이 ‘거룩한 잡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김병삼 만나교회 목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