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의 글로벌 기업 탐구] 규칙 대신 ‘더 많은 자유와 책임’… 속도·혁신 극대화
위기마다 혁신으로 돌파·급성장
엔터업계 공룡들과 경쟁서 승리
현재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 문화를 가진 기업은 넷플릭스일 것이다. 셰릴 샌드버그 전 메타(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넷플릭스의 문화선언문인 ‘컬처덱’이 이제까지 실리콘밸리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문건이라고 극찬했다. 넷플릭스는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와 자체 제작물을 전 세계에 공급하며 콘텐츠산업을 선도하고 있는데 그 기반은 독특한 문화다.
넷플릭스는 리드 헤이스팅스가 1997년에 ‘온 세상을 즐겁게’라는 미션으로 DVD 우편 대여와 판매업체로 창업했다. 1998년에 세계 최초로 온라인 DVD 대여업을 시작한 넷플릭스의 결정적 성장 계기는 2000년의 구독서비스라는 혁신적 사업모델 개발이었다. 대여 DVD 연체료 경험에 착안해 특정 콘텐츠에 대한 대여료가 아닌 구독료를 지불하면 무한대의 콘텐츠를 일정 기간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수익구조는 여전히 불안했고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붕괴로 위기를 맞아 회사를 당시 DVD 대여업의 글로벌 리더인 블록버스터에 매각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헤이스팅스는 위기 돌파를 위해 2002년 상장으로 창출된 자본으로 온라인 구독서비스를 본격화하며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블록버스터도 2004년 구독서비스에 진입했으나 기존 DVD 대여업 규모 중심의 사업방식을 구독서비스에 그대로 적용하다 위기를 맞아 2010년 파산했다.
넷플릭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략적 속도를 자랑한다. 2007년 넷플릭스는 기존 DVD 대여업을 대폭 축소하고 온라인 스트리밍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전면 전환했고, 2008년에는 DVD 판매업에서 아예 철수했다. 곧이어 글로벌화를 시도해 2010년 캐나다를 시작으로 2011년에 중남미, 그리고 단숨에 유럽 전역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190여개국으로 진출했다. 2012년에는 자체 콘텐츠 제작을 시작해 ‘오징어게임’이나 ‘옥자’에서 볼 수 있듯 매년 다양한 나라에서 500여개가 넘는 현지 고유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 전 세계로 유통하고 있다.
스마트 모바일기기의 확산으로 아마존프라임, 디즈니+, HBO맥스 등도 온라인 스트리밍에 진출했으나 엄청난 속도로 끊임없이 혁신하는 넷플릭스를 이길 수 없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영화관이 폐쇄되면서 넷플릭스의 구독자가 급증했다. 현재 넷플릭스는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무수한 장르의 수많은 콘텐츠를 다양한 기기로 언제 어디서나 무제한 즐길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모든 종류의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전방위 경쟁을 하고 있다.
2009년 124장의 PPT로 정리한 문화선언문인 ‘컬처덱’은 명문화된 규칙이 없는 넷플릭스 구성원의 행동기준이다. 컬처덱은 ‘무규칙 원칙’을 선언한다. 넷플릭스 창업 이전 헤이스팅스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새 규칙을 제정하다 규칙이 계속 늘어 아예 아무런 시도도 할 수 없게 된 경험을 했다. 이를 통해 헤이스팅스는 혁신은 새로운 규칙을 찾는 작업이므로 기존 규칙을 마음대로 깨뜨릴 수 있어야 하며, 더 좋은 것은 아예 규칙이 없이 자유롭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구성원에게 규칙 대신 더 많은 자유를 주면 더 좋은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임소재도 명확해진다”며 무규칙 원칙을 실행했다.
규칙을 대체하는 것이 ‘자유와 책임’이다. 여러 단계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기존 기업과 달리 넷플릭스는 신입직원이라도 자신의 일은 자유롭게 결정해 실행한다. 결과에 책임만 지면 된다는 것이 자유와 책임 원칙이다. 단지 “넷플릭스에 이익이 되도록 행동하라”는 느슨한 기준만 제시될 뿐이다. 따라서 넷플릭스에서는 말단 직원이 수백만 달러의 거액도 회사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상부 승인 없이 직접 결제하는 일이 흔하다.
또 넷플릭스에는 휴가규정이 아예 없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휴가를 사용하면 된다. 그 결과 업계 평균에 비해 넷플릭스의 연간 휴가가 열흘 정도 많지만 헤이스팅스는 덕분에 나머지 기간 구성원들의 집중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져 큰 이익이 됐다고 주장한다. 이런 극단적 ‘자유와 책임’ 경영의 결과 2019년 조사에서 넷플릭스는 구성원의 86%가 회사생활이 행복하다고 대답해 구글, 월마트, 메타 등을 물리치고 압도적 선두로 평가됐다.
자유와 책임에는 탁월한 구성원이 필수적이다. 특히 넷플릭스는 예외적으로 특출한 인재가 대부분의 가치를 창출한다고 믿기 때문에 극도로 탁월한 인재의 비율을 ‘인재밀도’라고 부르며 인사의 핵심 목적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지원자의 역량과 태도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으므로 일단 같이 일해본 다음 기대에 어긋나는 구성원은 즉시 해고한다. 그러나 해고 시 매우 너그러운 보상패키지를 제공해 퇴사자가 회사에 부정적 태도를 가지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구성원 각자 넷플릭스에서 계속 일할 자격이 있는지를 스스로 평가해보는 ‘키퍼테스트’를 수시로 실시하도록 추천하며, 동료들의 피드백도 적극 권장한다. 키퍼테스트는 넷플릭스의 특수한 업무수행 방식에 필요한 역량과 태도, 성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므로 상시 개선의 기준이 된다. 또 넷플릭스에서의 모든 평가와 피드백은 투명성 극대화를 위해 솔직하며 직설적이며 공개적 소통을 원칙으로 한다.
문화는 내면에 당연시되기 때문에 성과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만일 환경이 다시 불연속적으로 변해 넷플릭스의 ‘무규칙 원칙’과 ‘자유와 책임’ 문화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될 때 문화 자체를 제때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재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며 경쟁이 심화되면서 넷플릭스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최근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줄이고 구독료를 소폭 인상하기도 했다.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도 컬처덱에 제시된 독특한 문화가 여전히 넷플릭스에 유효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토론이 필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헤이스팅스와 핵심 경영진 스스로가 키퍼테스트를 여전히 통과할 수 있을지가 넷플릭스의 10년 후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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