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양궁 금메달이 우리 경제에 주는 시사점

2024. 8. 2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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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오륜기가 걸린 에펠탑, 피아노 상판에 드리운 빗방울에 투영된 레몬빛 조명, 그리고 희귀 질환으로 투병 중인 세계적 디바 셀린 디옹이 열창한 ‘사랑의 찬가 (Hymne a L’amour)’. 다소 어수선했던 개막식은 이렇게 마지막에 백미를 장식하면서 ‘과연’이라는 감탄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시작된 파리 올림픽에 우리 선수단은 44년 만에 최소 규모로 참가했지만 MZ세대들의 거침없는 진격으로 애초 기대했던 5개를 훌쩍 넘어 13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 경쟁과 공정 보상이 양궁신화 비결
경제성장에도 꼭 필요한 핵심 요소
‘경쟁의 미국’이 ‘규제의 유럽’ 눌러
우리 사회의 경쟁 기피 풍조 걱정돼

2024 파리올림픽 양궁 개인·단체 및 혼성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수확한 대한민국 양궁대표팀 선수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우진, 이우석, 김제덕, 전훈영, 임시현, 남수현. 뉴스1


어느 광고 문구처럼 ‘금메달이 무려 5개’다. 이번 올림픽에서 양궁에 주어진 모든 금메달을 독식한 것이다. 이러한 금빛 신화 뒤에는 전용 훈련장이나 최첨단 슈팅머신부터 대표팀 식사까지 세심하게 챙긴 현대차그룹의 지원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끊임없는 경쟁과 공정한 선발 원칙, 즉 공정한 보상체계가 주요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남녀 각각 100여 명이 참가해 장장 7개월에 걸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발된 6명의 궁사 중 대부분이 친숙하지 않은 이름들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경쟁’과 이에 따른 ‘공정’한 보상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마치 ‘무한경쟁’을 주장하는 것으로 의미가 전도되어, 이 단어를 쓰는 순간 ‘차가운 머리’만 있지 ‘뜨거운 가슴’은 없는 냉혈한으로 매도되는 세상이 되었다. ‘공정’은 보다 복잡하다. ‘공정 (justice)’과 ‘공평 (equality)’은 다른 개념이다. 마이클 샌델과 같은 철학자의 관념론적 접근과는 독립적으로 경제학에서는 능력과 노력에 비례해 보상을 받는 것이 공정이고, 모든 참여자에게 동일한 보상을 주는 것이 공평이다. 경쟁의 결과는 사실 능력과 노력뿐 아니라 운이나 우리가 흔히 ‘××찬스’라고 부르는 외부영향력 등 여러 다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공정은 관찰 가능한 경쟁의 결과로부터 이러한 기타 요소를 배제하고 직접적 관찰이 불가능한 능력 및 노력만을 추출해 보상하는 것이다. 문제는 보상이 어떻게 주어지는가에 따라 노력하는 정도도 역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즉, 보상은 노력의 함수지만 노력 역시 보상의 함수가 되는 만큼 수학적으로 서로 ‘엮임 상태’에 있다. 이 엮임을 풀어 공정한 보상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미시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분야 중 하나다.

셔터스톡


양궁 못지않게 경제 역시 성장하려면 경쟁 및 이에 따른 공정한 보상이 핵심이다. 공평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경쟁에 뒤처진 사람들 경우 이들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고, 애초 경쟁에 참여할 수 없는 약자들에게는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하는 것 역시 경쟁과 공정 못지않게 중요하다. 다만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뜨거운 가슴’이 ‘냉정한 머리’보다 표에 도움이 되다 보니 ‘경쟁’이란 용어는 우리 사회에서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경쟁이란 성장의 동력인 만큼 이를 인위적으로 억제할 경우 그런 경제는 도태된다.

한가지 예가 미국과 유럽 경제의 차이다. 금융위기 이전 2007년만 해도 1인당 GDP는 미국 (4.8만 달러), 독일 (4.1만), 프랑스 (4.1만), 영국 (5만)이 엇비슷했다. 그런데 작년 기준으로 미국 (8.2만), 독일 (5.3만), 프랑스 (4.4만), 영국 (4.9만)으로 미 달러 강세를 고려하더라도 미국과 유럽국가 간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왜 그럴까? 몇 가지 요인이 있지만,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된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국가 간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 경쟁의 장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상황에서는 기본적으로 기술이나 과학이 우위에 있는 국가가 우세를 점할 수밖에 없는데, 기술 혁신 역시 경쟁의 산물이다. 이에 따라 보다 경쟁을 중시하는 미국 경제가 유럽의 경제를 압도하게 된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만큼 산업 및 노동시장에 강력한 규제가 도입되어 있다. 규제는 경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범위를 제약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샌타클래라 시에 위치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선두 주자 엔비디아의 본사 외부. 연합뉴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미국은 대학 및 각종 민관 연구소에 막대한 투자를 하되 서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 투자를 배분한다. 반면 프랑스나 독일에서 생각나는 대학을 얘기해 보면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영국 역시 옥스브리지(옥스퍼드+케임브리지)의 위상은 과거와 같지 않다. 미국의 경우 특히 연구 중심의 대학원 과정과 연구소에 지원을 집중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을 끌어들인 후 이 중에서 경쟁에 살아남은 인재들에게만 미국에 체류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고 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경쟁을 너무 터부시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 경제에서 유일하게 경쟁이 치열한 곳은 규제 도입 부문이다. 규제의 백과사전이라 불릴 정도로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규제란 규제는 다 도입해 촘촘한 그물망으로 경쟁을 인위적으로 제약하고 있다. 양궁의 금메달이 우리 경제에 던지는 시사점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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