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철의 시시각각] 진짜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마음
2022년 많이 회자된 유행어 중 하나가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다. 국제 게임대회(리그 오브 레전드 2022년 월드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패한 어느 선수의 인터뷰 제목에서 유래했다. 이후 그 선수가 속한 게임단이 우승하며 유행어 반열에 올랐다. 그해 12월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 후보인 포르투갈에 역전승을 거두고 16강이 확정됐을 때 선수단이 펼친 태극기에도 이 문구가 쓰여 있었다. 힘들고 불리해도 희망을 놓지 않는 한 기적이 올 수도 있다는 의미가 마음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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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언급 일절 없는 광복절 경축사
안보실 차장은 “일본의 마음이 중요”
소동 많았던 광복절, 단순 우연이길
」
올해 광복절을 보내며 ‘중일마’라는 말이 화제가 됐다. 지난 16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KBS에 출연해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이 고개를 돌리고 필요한 말을 하지 않으면 엄중히 따지고 변화를 시도해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고 발언한 데서 나왔다. 김 차장은 “마음이 없는 사람을 억지로 다그쳐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것이 과연 진정한가”라고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하루 전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을 겨냥한 강경 방침을 내놓았다. 반면에 광복절 취지를 되새겨볼 만한 일본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때와 장소에 맞지 않은 경축사 맥락이 의아했는데, 김 차장이 인터뷰를 통해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가해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은 즉각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교 수립 이후 수십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의 공식적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가 있었고, 피로감이 쌓였다”고 설명했다.
김 차장의 발언, 나아가 윤 대통령의 인식은 복통 환자에게 소화제를 여러 번 먹였고, 그에 대해 피로감도 있으니 환자는 고통을 호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처럼 보인다. 약에 뭔가 문제가 있거나 더 큰 병이 있는데 오진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없는 의사 같다. 일본이 진정어린 사과를 한사코 거부하고, 찔끔 사과를 하더라도 뒤돌아서서 역사 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하는데 우리가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진정성에서 우러나왔든, 겉치레든 가해자는 피해자가 용서할 때까지 사과하는 게 정석이다. 가해자의 마음과 진정성, 피로도까지 고려해 사과 시기와 방법을 물색해야 할 의무가 피해자에게는 없다.
사과에 인색한 일본의 태도가 께름칙한 다른 이유는 과거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며 비슷한 일을 다시 저지를 마음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일본의 마음과 피로감은 잘 헤아리면서 이런 국민의 마음은 외면하는 이유에 대해 김 차장은 ‘자신감’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우리가 이만큼 성장했으니 일본은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실행할 수도 없다는 의미인 것 같다. 하지만 나라가 강성해지는 것과 잘못에 대해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받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주변 국제 정세는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 그에 대비해 일본의 예상치 못한 움직임 같은 변수를 미리 제거하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유달리 소동이 많은 광복절이었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 국민 성금을 모아 건립한 독립기념관의 수장에 뉴라이트로 의심받는 인물이 임명됐다. 이에 반발해 광복회와 야권은 ‘따로 기념식’을 열었다. “나는 뉴라이트가 아니다”고 항변한 김형석 신임 관장은 취임 첫 결재로 독립기념관이 주최하는 광복절 기념식을 취소했다. KBS는 ‘기미가요’가 나오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광복절 새벽에 내보냈다. 그날 오전 전국의 서점에는 뉴라이트의 본산인 낙성대연구소 연구위원이 쓴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책이 깔렸다. 김 실장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 모든 일이 단순한 우연의 중첩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꺾마’로 무장해 집요하게 ‘중일마’를 추진하는 시나리오의 한 단면일 수도 있겠다. 내년 광복절에는 얼마나 더 시끄러울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최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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