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군정보사 안팎의 군 기강 해이 ‘막장극’

2024. 8. 20.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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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홍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대북전략센터장

국방부 장관의 교체 인사 전에 터진 국군 정보사령부의 기밀 유출과 수뇌부 충돌 사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충격적이다.

첫째,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첩보부대에서 인적 정보가 무더기로 유출됨으로써 핵심 정보자산인 휴민트(HUMINT) 붕괴 우려를 초래한 참사라는 점이다.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화이트 요원’ 뿐 아니라 신분을 위장한 ‘블랙 요원’ 신상까지 수천 건이 북한으로 넘어간 정황이 포착됐다. 돈을 받고 적에게 기밀 정보를 팔아넘겼다면 동료의 등에다 총을 쏜 것이나 마찬가지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 공들여 구축한 정보망이 하루아침에 파괴됐을 것이다. 복구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가늠하기조차 힘들 만큼 국가안보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 구속된 의혹 당사자인 군무원은 노트북을 해킹당했다고 주장한다.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정보기관 내부 통신망은 외부와 분리돼 있어 해킹이 불가능하다. 만약 개인 노트북에 임의로 기밀정보를 저장했다면 정보사 보안 관리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 휴민트 인적 정보 유출 충격적
수뇌부 집안싸움에 국민 불안
엄중 문책 통해 환골탈태해야

김지윤 기자

둘째, 정보사의 수뇌부를 구성하는 핵심 간부인 사령관(소장)과 여단장(준장)이 하극상과 폭력 및 직권남용 혐의로 맞고소했고, 그 와중에 수행 중인 비밀공작 사업의 명칭과 방식이 노출됐다. 이 또한 기본적 보안의식조차 망각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목숨을 건 치열한 정보전, 사선을 넘나들며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프로 정보 요원의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군 기강 문제는 사병이나 부사관, 또는 초급 장교들의 비행과 폭력 등 개인 차원의 일탈 행위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차원이 다르다. 국가안보의 최전선에서 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 수집과 와해 공작을 위해 존재하는 군 정보기관이 업무 수행의 기본자산인 휴민트를 통째로 빼앗긴 것만으로도 충격적이다. 게다가 기밀 유출 사실을 몇 개월간 몰랐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그 와중에 정보전쟁의 선두에서 부하 요원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첩보·공작활동의 조타수 역할을 해야 하는 수뇌부들이 주먹다짐의 집안싸움까지 벌였다. 정보역량의 위축을 초래한 것을 넘어 군 정보기관으로서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위아래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쳐야 승리할 수 있는데 정보사는 상하 협력은커녕 극단적 분열상을 드러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의 기밀유출 사건과 관련한 김병주 의원의 질의를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다. 뉴스1


요즘 정보사의 치부를 전하는 뉴스는 보고 듣기조차 민망하다. 물론 거대 군 조직 가운데 일개 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만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니다. 전반적인 군 기강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위기 신호로 봐야 한다.

“군기(軍紀)는 군대의 기율이며 생명과 같다. 군기를 세우는 목적은 전투력을 보존·발휘하는 데 있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시행령 제2조다. 군 기강이 흐트러지면 전투력을 상실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없다는 뜻이다. 한반도 안보 환경이 엄중한 이 시점에 곱씹어봐야 할 경고다.

김정은은 대한민국을 ‘제1의 주적’으로 지목했고,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남조선 전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자고 독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남 정보활동과 공작사업을 전시 수준으로 강화하고 있다.

지난 1월 15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교육교양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명기하는 것이 옳다″며 헌법 개정을 시사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이처럼 위중한 시기에 발생한 정보사의 군 기강 해이 참사는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많은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무너진 군 대북정보력의 회복이 시급하다. 이번 사태의 진실과 책임 소재를 철저히 규명해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

다만 북한의 도발 징후를 포착하고 선제 대응하는 초기 단계에서 핵심 임무를 수행하는 군 정보기관이 위축되거나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조직·인사는 물론 대북 공작 등 사업 전반을 종합적으로 점검해 국가안보에 명운을 거는 ‘강한 정보사’로 환골탈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다산 정약용은 “군은 백 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하루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兵可百年不用 一日武備)”고 역설했다. 우리 군의 기강을 바로 세워 어떠한 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는 ‘준비된 강군’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호홍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대북전략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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