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 “사방이 댐, 또 댐이냐” vs “반도체 용수 10% 이상 더 필요”

서경호 2024. 8. 20.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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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천댐 건설 결사 반대하는 강원도 양구 현장


서경호 논설위원
“양구군 말살 댐 건설을 즉각 철회하라!”

“지역소멸 가속화하는 수입천댐 결사저지”

국토의 정중앙에 있어 ‘배꼽도시’라는 강원도 양구. 지난 14일 찾은 양구군은 댐 건설에 반대하는 플래카드 천지였다. 읍내에서 두타연으로 가는 도로 곳곳에 지역 단체들이 내건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환경부는 지난달 30일 극한 호우와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 전국에 14개 기후대응댐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연간 2.5억t의 물 공급 능력을 확보하려는 이번 계획에서 양구 수입천댐 규모가 가장 크다. 총저수용량은 1억t, 하루 70만 명에게 식수를 공급할 수 있다.

「 양구군의 분노 “수도권은 일류국민, 강원도는 삼류국민인가”
환경부 “화천댐은 이미 활용, 평화의댐 담수도 해법 못 돼”
‘4대강 속도전’ 피하고 원하는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건설을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두타연. 수입 천댐이 건설되면 일부 수몰될 가능성이 있다. 댐 건설 위치를 하류로 옮기면 두타연 계곡을 살릴 수 있다고 환경부는 설명했다. 서경호 기자

환경부 발표 이후 지역사회의 반대가 가장 격렬한 곳도 양구였다. 환경부 발표 당일, 서흥원 양구군수는 득달같이 국회로 달려가 기자회견을 했다. “현재 양구군은 화천댐·소양강댐·평화의댐 등으로 둘러싸여 ‘육지 속의 섬’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또다시 댐을 건설하는 건 양구를 사지로 내모는 일이다. 수자원 보존을 위해 수십 년간 각종 피해와 생활 불편을 감수해온 지역주민이 견뎌온 박탈감과 허탈감에 정부는 기름을 부었다. 수도권 주민은 일류국민이고 강원도 사람은 삼류국민인가.”

민통선 덕분에 보존된 두타연 수몰?
수입천댐이 생기면 수몰된다고 알려진 두타연에 가봤다.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 북쪽에 있어 휴전 뒤 50년간 금단의 땅이었던 두타연은 2004년 개방됐다. 동행한 장암석 자연환경해설사는 “민통선 안에 있어 환경이 지금처럼 최상의 상태로 보존될 수 있었다”며 “멸종위기종 1급인 산양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만든 폭포와 웅덩이, 주위를 병풍처럼 에워싼 기암이 멋지게 어우러졌다.

환경부는 왜 이곳에 댐을 추진하는 걸까. “민간인 출입 통제선과 DMZ(Demilitarized Zone)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수몰되는 일반 민간 가옥이 단 한 세대도 없으며, 상수원 보호구역 등 규제 미발생”이라고 환경부 발표자료에 적시돼 있다. 댐을 추진하는 중요한 이유는 수도권 물 부족 때문이다. 박재현 환경부 물관리정책실장은 “현재 소양강댐(저수용량 29억t)과 충주댐(27.5억t)에서 수도권에 물을 공급하는데 용량의 94%가 이미 소진됐고 6%만 남아있다”며 “반도체처럼 물을 많이 쓰는 사업이 늘어나 더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면 하루 135만t의 용수가 더 필요하다. 수도권의 하루 용수량 1000만t의 10%가 넘는 물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환경부 “두타연 살리는 플랜B도 가능”
양구군민의 반발에 대해 박 실장은 “주민 의견을 충분히 듣고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추진하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두타연 수몰을 피하기 위해 댐을 더 하류에 건설하는 플랜B도 마련했다. 지역사회와 얼마든지 협의할 수 있다는 거다.

이제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처럼 밀어붙이기식 댐 건설은 불가능하다. SK하이닉스가 경기도 여주시의 반대로 오랫동안 용수시설 건설을 못 했던 것은 여러 가지 공사의 인허가권이 지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양구군이 반대하면 댐 공사를 위한 건설노동자들의 임시 숙소조차 지을 수 없다.

정부는 지역사회 설득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댐 건설 발표 때 “댐 주변 지역 지원 예산을 대폭 상향하겠다”고 강조했다. 환경부 내부에선 김 장관이 예산실장 출신이어서 “예산 대폭 상향”이란 표현을 쓸 수 있었다고 본다. 예전 같으면 예산 당국인 기획재정부 눈치가 보여 예산에 ‘대폭’ 이란 표현을 공식자료에 감히 쓰지 못했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댐 건설로 지역사회가 좋아진 사례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일정규모 이상의 댐 건설기간에 주변 지역 경제와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한 ‘댐 주변 지역 정비사업’으로 현재까지 28개 댐에 8500억원 이상을 집행했다. 보현산댐 주변에 태양광발전소를 세워 마을기업 형태로 운영하고 이익금은 주민에게 나눴다. 지난해 9억원의 매출을 올려 5억원은 주민에게 배분하고 1억원은 장학금 등 복지 지원에 썼다. 성덕댐 주변엔 43억원을 투입해 종합복지타운을 건립했다. 김천부항댐의 짚와이어와 영주댐의 오토캠핑장도 정부 예산이 투입돼 지역 관광 활성화에 기여했다.

환경단체는 “기후토건주의” 비판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환경단체의 반발도 거세다. 환경운동연합은 야당 국회의원, 대한하천학회 등과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14개 댐 건설을 ‘기후토건주의’로 규정했다. 박창근 대한하천학회 회장은 “윤석열 정부의 물 정책에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의 ‘어두운 그림자’가 묻어난다”며 “최근 홍수 피해의 원인은 (댐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방 관리 부실’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강찬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작은 댐은 홍수 예방효과가 낮다”며 “2020년 섬진강댐 사례에서 보듯이 자칫 댐 운영을 잘못하면 댐이 오히려 수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입천댐 대신에 화천댐과 평화의댐을 활용하자는 지적에 대해 박재현 환경부 실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용인 반도체 단지에 화천댐을 활용하는 방안은 이미 추진 중이다. 발전댐인 화천댐은 이미 다목적댐처럼 운용하고 있다. 이것을 고려해도 물은 부족하다. 평화의댐에 물을 채우면 북한지역까지 침수된다.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가능한 대안이 아니다. 휴전선 남쪽만 물을 채우면 저수 용량이 너무 적다.”

‘기후대응댐’ 프레임 성공할까
동강댐이 백지화된 건 24년 전 김대중 정부 때다. 정부가 붙였던 이름은 영월댐이었는데 동강을 살리자는 반대 운동이 거세지면서 지금은 다들 ‘동강댐’으로 기억한다. 지난달 정부는 14개 댐을 ‘기후대응댐’으로 불렀다. 역대급 홍수와 가뭄에 대응하자는 취지를 잘 살린 셈인데, 환경부 담당 사무관의 작품이다. 프레임 전쟁에서 일단 앞서갔다. 이현정 녹색정치LAB 그레 소장은 “기후위기에 댐은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며 “기후대응댐이란 표현은 형용모순”이라고 주장했다.

물은 더 필요하고 지역사회는 반발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 개발과 환경 보존의 충돌을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숙의와 토론으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데서 진짜 실력이 나온다. 1973년 소양강댐 준공 때 양구·춘천·인제 등에서 6개면 38개 리가 수몰됐고 2만여 명이 반강제적으로 이주해야 했다. 참으로 무도한 시절이었다. 강원연구원에 따르면 소양강댐 건설로 인한 피해는 지난 50년 동안 6조 8300억~10조 1500억원으로 추산된다.

환경부도 인정하듯이 이제 소양강댐 같이 거친 방식의 댐 건설은 가능하지 않다. 환경부는 댐 건설에 10년이 걸리지만 그렇다고 시한을 정해놓고 추진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다행이다. 4대강 사업처럼 속도전 치르듯 서둘지 말고 댐을 원하는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게 바람직한 전략이다.

■ “양구 군민도 한국 국민…대통령 전화해도 난 못해”



서흥원 양구군수 인터뷰

“양구 군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사방이 다 댐인데 머리 위에 또 댐을 만드나. 국가정책도 양심을 갖고 해야 한다.”

서흥원(59·사진) 양구군수는 댐 건설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14일 군청 군수실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이틀 전인 12일 강원특별자치도청 앞에서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군민들과 수입천댐 건설 반대 궐기대회를 열었다.

Q : 왜 반대하나.
A : “양구는 사방이 다 댐이다. 남쪽엔 소양강댐, 서쪽엔 화천댐, 북서쪽엔 평화의 댐이 있는데 북쪽에 또 수입천댐을 만들겠다는 거다. 수입천은 결국 화천댐에 합류된다. 담수량이 10억t인 화천댐은 지금 7억~8억t만 담수하고 있다. 여분이 많다(화천댐을 활용하면 된다는 뜻). 담수를 안 하고 있는 평화의댐을 활용할 수도 있다. 댐 예정지인 방산면 일대는 지난 70여년간 홍수나 가뭄 피해가 없었다. 오로지 수도권 용인의 반도체 클러스터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한다.”

Q : 환경부는 두타연이 수몰되는 1안과 댐을 4㎞ 하류에 건설해 담수량은 줄이되 두타연은 살리는 2안도 내놨다.
A : “어쨌든 수입천 물을 막는 건 마찬가지다. 댐 하류는 도랑물이 되고 농업용수를 쓰기 힘들어진다. 농민도, 관광객도 다 떠날 것이다.”

Q : 환경부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지원 예산을 대폭 늘린다고 했는데.
A : “뻔한 스토리다. 댐 건설한다고 300억, 400억원 지원해주고 나중에 그만큼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에서 깎을 거다.”

Q : 환경부에선 어차피 공사하려면 지자체가 최종 인허가권이 있기 때문에 주민이 반대하고 군수가 동의하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A : “어쨌든 (공사를 하는) 그 단계까지 가지는 말아야 한다.”

Q : 국민의힘 단체장이다. 중앙정부가 원하는 사업을 반대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나.
A : “주민의 뜻이 중요하다. 정치적 고려는 하고 있지 않다.”

Q : 환경부는 주민설명회라도 하고 싶어 한다.
A : “댐 건설을 전제로 하는 설명회가 과연 필요한가. 의미 없다.”

Q : 반도체가 중요하니까 양구군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충분한 대가를 받으면 되지 않나.
A : “딜(거래)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반도체가 그렇게 중요하면 양구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라.”

Q : 윤석열 대통령이 글로벌 반도체 경쟁은 산업전쟁이고 국가 총력전이라며 과감한 지원을 약속했다. 대통령이 전화해서 부탁해도 안 되겠나.
A : “못한다. 대통령보다 군민이 중요하다.” 」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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