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승의 퍼스펙티브] 경제안보 강화하고 국가경쟁력 키울 ‘모델-K’ 만들자
한국이 국제경제 주도국 역할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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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경제권과 한국 이어 줄 최대 화두는 경제안보와 공급망
높아진 국가위상, G7 정상회의 초청으로 확인…이젠 G10 목표
기업가 정신과 제조업 경쟁력 살린 한국형 ‘레벨업’ 전략 필요
단순 경제논리론 과제 해결 못해, 대립과 냉소주의 넘어서야
」
이제 한국은 다음 단계의 경제안보로 태세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가 주요 7개국(G7)을 비롯한 주요 대상 국가에 다가갈 수 있는 열쇠는 공급망과 경제안보에 있다. 주요 경제권의 공통 화두가 된 공급망 안보는 우리의 취약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반도체 및 배터리, 원전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의 투자와 협력을 원하는 국가들이 많다.
경제안보의 새로운 담론을 찾을 때
경제안보를 능동적으로 자산화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제가 등장한다. 하나는 펀더멘털을 강화하는 국가경쟁력의 새로운 정립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적인 파트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네트워킹이다. 중요한 것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어떤 리그’에 들어가는지의 정체성 문제이다. 이런 차원에서 주요 10개국(G10)에 목표를 맞춘 새로운 국가경쟁력 모델을 경제안보와 연계시켜야 한다.
1996년 한국은 선진국 클럽이라고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2008년 한국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2010년 한국에서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보다 강화된 글로벌 및 지역적 대표성을 갖게 됐다. 2020년대에 들어서며 이미 여러 경제지표에서 10위권의 위상을 확보한 한국은 G7 정상회의에 수차례 초청되며 국제사회에서 정치·경제적으로 보다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받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문화적 소프트파워 역시 한국의 위상을 확연히 바꿔놨다. 한 세대 안에서 거의 10년 주기로 선진국 진입과 지속적인 승격을 만들어 낸 사례는 역사상 유례가 드물다.
하지만 압축적인 성장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우선 산업별 불균형이 심화했다. 반도체 호황 뒤에 사양산업과 자영업의 그늘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사회경제적 위기가 됐다. 세대 간 갈등 역시 민감하다. 전쟁과 빈곤을 경험한 할아버지 세대와 고속성장 시대를 경험한 부모 세대, 이미 선진국이 된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저성장의 덫에 걸린 ‘MZ 세대’ 자녀들이 한 식탁에 모여 밥을 먹는다. 서로의 입장과 의견이 다르다. 누구는 미국이 중요하다고, 누구는 중국이 중요하다고 외친다. 기업이 양보해야 한다고, 노동조합이 양보해야 한다고 서로 주장한다. 자신의 경험에서 다 맞는 얘기를 하고 있지만, 상대방에게는 납득이 잘 안 된다.
접점을 상실한 사회에서 한국이 어디로 나가야 할지에 대한 지향점은 명확하지 않다. 인정과 공존이 미흡한 상황에서 산업 간, 세대 간에 불신의 폭이 넓어져 가고, 그 틈을 극단적 도덕주의, 과거로의 회귀, 냉소주의가 빠르게 자리 잡았다. 실용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반실용적인 이념 논쟁이 팽배한 정치는 포퓰리즘에 휩쓸리기 쉬운 구도다. 결정적인 순간에 ‘팀 코리아’가 위기 상황으로 발을 깊이 담그고 있다.
선진국 모방 대신 자체 모델 필요
이제 G10을 바라볼 ‘모델-K’를 새로 만들 시기가 됐다. 지난 30년 간 성장을 이끌어 온 한국의 모델이 과연 있었는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반세계화와 복지 담론 사이에서 고민하며 성장했다. 공통의 화두는 불명확했다. 2024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에서 발표한 국가경쟁력 지수에서 한국은 이제까지 순위 중 가장 높은 20위를 차지했지만, 목표로 하는 G10의 경제 위상에 걸맞은 지표까지는 거리가 있다. 선진국 진입의 목표를 넘어서 국제경제의 주도국 역할을 할 레벨업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모델-K는 국내적·국제적으로 접점을 만들면서 미래를 위한 새로운 국가경쟁력이라는 화두를 던져야 한다.
과거에는 여러 선진국 모델을 비교하고 모방하는 것이 국가경쟁력 논의의 큰 방향이었다. 여전히 참조할 유용한 사례들은 존재하지만, 달라진 한국의 위상에 맞는 기성 모델을 찾기는 어렵다. 경제안보와 국가경쟁력에서는 한국 자체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
한국은 제국주의를 통해 성장한 국가가 아니고, 구시대의 족쇄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인종과 난민의 문제도 유럽에 비해 통제가 가능하다. 아직 기업가 정신과 제조업 기반의 경쟁력을 보유한 주요 국가 중 하나다. 한국이 잘하는 것, 잘해야 하는 것, 한국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구체화해야 한다.
외국 동향 분석할 전문가 강화해야
모델-K에는 여러 경쟁력 요소들이 접목된다. 분단과 지정학적 갈등 아래에서는 안보 경쟁력이 최우선으로 고려된다. 핵 억지와 위기관리는 군사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안보의 근간이다. 여기에 교육과 이민을 포함한 인적 자원 경쟁력, 새로운 에너지 모델을 위한 탄소 경쟁력, 탈규제를 통한 첨단기술 경쟁력이 일차적으로 더해진다.
그러나 공급망과 자원안보 문제는 한국 혼자서는 풀 수 없다. 외교적 강화를 통한 네트워크 경쟁력이 필수적이고, 양자 관계 차원을 넘어 다양한 형태의 소다자주의 체제의 확대가 필요하다. 규제와 표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규범경쟁력 역시 중요하다. 국제규범 창출에 직접적인 참여는 경제안보 대응태세를 피해 방지 및 수습이라는 방어적 차원에서 공격적이고 능동적인 차원으로 전환한다. 이 부분이 받쳐줘야 ‘힘을 가진’ 경제안보가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한국은 아시아의 허브가 돼야 G10 진입이 가능하다. 미국·중국·일본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입지와 역량을 가진 나라는 극히 제한적이다.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주변국들과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모델-K에서는 중국·일본·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ASEAN) 전문가들이 더 많이 배출되고 미국과 유럽의 거시적인 동향을 분석할 전문가 집단도 한층 더 강화돼야 한다. 매년 땜질을 입혀 놓은 입시 체제 아래에서 힘을 잃어가는 외국어 경쟁력도 복원돼야 한다. 한국에서 영어와 중국어·일본어가 자연스럽게 섞여서 사용될 때 엄청난 흡입력을 발휘할 수 있다. 언어는 지정학적 갈등 사이에서 협상력을 발휘할 기본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경쟁력이 된다.
‘모델-K’ 지속적 공론화 과정 있어야
모델-K는 고정된(static) 규율이 아니라 동적(dynamic) 모델이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하는 모델-K는 일회적인 구상만으로는 부족하고 지속적인 공론의 과정이 필요하다. 국내적·국제적으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공약수를 최대한 만들어 내야 한다.
군사안보도, 경제안보도 ‘왜’ 중요한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구체적인 방안이 힘을 받는다. 거대 담론만이 국가경쟁력과 경제안보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기업 차원에서, 개인 차원에서 존재하는 미시적이고 분자화된 경쟁력 요소를 담아내는 그릇이 모델-K가 돼야 한다. 공론화에는 설득하는 것보다 많이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리한 생각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많은 재원이 여러 부문에 존재한다. 그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원동력이 앞으로 한 세대 안에 또 여러 번의 ‘퀀텀 점프’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미국 대선 이후 또 한 번 출렁일 국제경제의 거센 파도에 맞설 ‘팀 코리아’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폭넓은 인재 풀을 과감하게 모아 모델-K를 위한 새로운 캠프를 꾸릴 때다. 국가경쟁력 전략수립은 정부 주도로도 할 수 있지만, 뜻을 같이하는 여·야·민간의 3자 차원에서 구성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성장의 담론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정권 초에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성을 느낄 때가 ‘골든 타임’이다. 화두를 끌고 나갈 수 있는 힘은 국정 운영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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