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미국 호황의 연료, ‘가계 유동자산’이 바닥나고 있다
미국 침체 우려가 낳은 발작이 진정됐다. 이달 초 미 노동부가 발표한 7월 일자리 상황이 낳은 경기침체 두려움이 뉴욕뿐 아니라 서울 증시마저 급락시켰다. 순간 미 국채 등 채권값이 뛰면서(금리 하락) 엔캐리 자금의 역류 우려까지 증폭됐다. 마치 글로벌 머니 흐름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날 듯했다.
그러나 패닉으로 치달을 듯했던 급락이 순식간에 진정됐다. 심지어 미 뉴욕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8월 16일로 끝나는 한 주 동안 3.9% 뛰었다. 주간 상승률로는 2023년 11월 이후 약 9개월 사이에 가장 높다. 순식간에 침체 우려는 씻겨나갔다. 미 금융그룹 가운데 잽싸기로 소문난 골드만삭스는 미 경기침체 확률을 25%에서 20%로 낮췄다. 이어 “9월 첫 주에 발표될 일자리 상황(8월 치)이 ‘요즘 상황에 비춰 좋은(reasonably good)’ 수준이라면 침체 확률이 15%까지 내려갈 수 있다”라고도 했다. 골드만삭스 예상대로라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실물경제를 침체에 빠뜨리지 않고도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킨 최초의 중앙은행가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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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데믹 이후 유동자산 급증세
연준 통화긴축 이후 감소 시작
긴축 이어지면 침체 가능성 커
23일 파월 의장 연설 주목해야
」
가계 유동자산 흐름에 주목하라
그러나 주가가 되살아났다고 미 경제의 침체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이 조용한 틈에 침체 시그널이 있는지를 차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침체 시그널은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중시하는 산업생산과 개인소득, 일자리, 소비지출 흐름의 감소다. NBER 시그널은 이론적으로 타당하고, 분석 방법적인 측면에서 체계적이다. 그럴 만하다. 민간기구인 NBER의 경기변동위원회(BCDC)는 UC버클리대 부부 경제학자인 데이비드와 크리스티나 로머 등 저명한 이코노미스트들로 이뤄졌다. 다만, 위원들이 투자자를 위해 실시간으로 침체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다. NBER 경기판단이 침체 시작 6개월 뒤에나 발표되는 이유다. 게다가 시대별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NBER 지표들이 팬데믹이란 아주 예외적인 사건이 발생한 뒤 나타난 짧은 침체와 예외적인 호황 등을 세밀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요즘 미 중앙은행과 월가의 이코노미스트들이 팬데믹 이후 특수한 상황에 걸맞은 지표로 ‘가계 유동자산 흐름’을 주목하는 이유다.
유동자산은 현찰과 순식간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다. 통화 긴축 초기 미국인들이 사들인 머니마켓펀드(MMF)가 유동 자산의 대명사다. 이코노미스트들이 팬데믹 직후 미국인이 왕성하게 소비하는 이유를 찾다가 발견한 지표다. 소비는 미 경제의 최대 성장엔진이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초과 유동자산(extra liquid assets, 그래프의 실선-점선의 차이)’이 팬데믹이 본격화한 직후 눈에 띄게 늘었다. 소득 상위 20%뿐 아니라 하위 80% 가계의 유동자산도 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샌프란시스코 준비은행은 “팬데믹 기간 이뤄진 미정부의 현금지원과 주식·주택 등 자산가격 상승”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초과 유동자산은 미국인의 왕성한 소비를 가능하게 한 휘발유였다. 실제 미 경제의 최대 성장엔진인 내수가 활발했다. 2021년 이후엔 예외적인 호황 증세까지 보였다. 여기에다 빅테크 주식 붐까지 일었다. 미국인의 초과 유동자산이 더욱 늘어날 수 있었다. ‘미 경제는 질이 다르다는 찬사(American economic exceptionalism)’가 울려 퍼졌다.
급감한 초과 유동자산
왕성한 소비와 예외적 호황의 대가는 인플레이션이었다. 그 바람에 Fed의 시간이 시작됐다. Fed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돈줄을 죄기 시작한 2022년 이후 초과 유동자산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준비은행에 따르면 요즘 소득 하위 80%의 초과 유동자산은 -13%에 이른다. 상위 20%에 속한 사람들도 초과 유동자산이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미국의 최대 성장엔진을 돌려준 휘발유가 바닥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인의 신용카드 연체율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소득 하위 80%의 연체율은 2% 중반이다. 상위 20%의 연체율은 1.3% 안팎이다. 초과 유동자산이 많았을 때인 2021년 신용카드 연체율은 사실상 0%였다. 여기에다 최근 석 달 실업률의 이동평균이 최근 12개월 가장 낮은 수치보다 기준치인 0.5%포인트보다 높은 0.53%포인트에 이르렀다. 일자리 침체경보가 울렸다. 미 경제의 예외적인 호황이 끝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파월 의장의 입에 쏠린 눈
다만, 미 경제가 침체로 직행할지는 Fed의 통화정책에 달려있다. 제롬 파월 의장이 9월부터 빠르게 금리를 내린다면 실물경제 연착륙도 가능할 듯하다. 그 대가는 안정목표(연 2%)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일 수 있다. 미 경제가 의미심장한 갈림길에 서 있는 듯하다.
여기서 떠올려 볼 기억이 바로 파월 등이 보인 ‘2021년 지켜보기’다. 많은 이코노미스트가 파월의 실수라고 지적하지만, 사실 그해 파월 등은 직전에 채택한 ‘평균 물가 목표제(Average Inflation Targeting, AIT)’를 지켰다. AIT는 단기 물가 변동에 맞춰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인플레이션 평균치를 살피며 기준금리를 조절하는 정책 프레임이다. AIT는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9월 연방공개시장정책위원회(FOMC)가 기준금리 인하 여부를 뛰어넘어 정책 프레임을 바꾸는(pivoting) 작업을 할 가능성이 크다. 양적 완화(QE) 등 정책 프레임이 바뀌기 전에는 늘 예고편이 있었다. 미 Fed 산하 준비은행 가운데 일거리가 적은 캔자스시티 준비은행이 주최하는 잭슨홀경제정책심포지움(잭슨홀미팅)이다. 모레(22일)부터 열린다. 파월은 하루 뒤인 글피(23일) 오전 10시(현지시간)에 연설한다.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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