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어떤 휴가를 보낼 것인가

2024. 8. 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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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무더운 여름이 꺾기는 시점이 있다. 하안거를 마치는 음력 칠월 보름날이다. 아직 낮으로는 열매들의 성숙도를 높이는 따갑고 마른 햇살이 기세등등하지만, 벌써 산중 참선 마을에는 아침저녁으로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 시간대엔 산문을 드나드는 발걸음도 멈추고 주위는 온통 고요로 충만하다. 달빛이 선명하면 별이 드물다는 말마따나 어진 이 드문 세상은 온통 소인배들로 소요하지만, 산중의 하늘엔 뭉게구름 한가로이 노닌다.

유난히 더운 올여름 인사법은 “많이 더운데 어떻게 지내셨나요?”가 대세다. 북태평양과 티베트 이중 고기압이 한반도를 뒤덮어 가마솥더위가 이어진다는 기상청의 계속되는 예보가 사람들을 더 지치게 만들었다. 어느 지방을 가거나 깊은 밤에도 날아드는 폭염 주의 문자들, 누적 온열 환자가 2700명이 넘었다는 뉴스들이 한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군다. ‘더울 때는 더위 속으로 들어가라’는 선가의 말이 있다. 그런데 더위를 피하려 산속이나 바닷가로 휴가를 떠나도 모두 불볕더위 속이었다. 그 무더위 속으로 들어간 덕분에 모두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 마음과 몸 충전 시간이 휴가
산사 참선 후 스트레스 낮아져
본성 찾는 노력, 삶 지혜롭게 해

스님들에게 여름은 하안거 기간이다. 여름 석 달 동안 산문 출입을 금하고 선방에 모여 공부하는 시간이다. 사실 스님들이 수행하는 공간과 그 안에서의 삶을 들여다보면 요즘 세상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웰니스의 시간과 공간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적 없는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멋들어진 소나무 사이로 솔 향기 머금은 바람 불어오는 언덕에 앉아 첩첩이 펼쳐진 산자락들을 바라보는 맛은 말 그대로 일품이다. 안거대중들은 한국의 건축미 가득한 아름답고 장엄한 목조건물에서 수행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고, 보름마다 깨달음으로 이끄는 법문을 듣는다. 몸을 맑게 하는 사찰음식을 먹고, 향기로운 향 한 자루 피운 후 청량한 작설차를 마시는 품격은 산중 선원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

나를 돌볼 틈도 없이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금쪽같은 휴가의 시간이 있는 계절이 여름이다. ‘이 귀한 휴가 기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몇 해 전 미국 버몬트 주립대학 심리학과 연구팀과 함께 서울대의 한 연구소 직원들의 휴가와 ‘참사람의 향기’ 참가자들의 8일 동안의 참선효과를 비교, 분석한 연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연구소의 직원들은 휴가 후 스트레스 지수가 오히려 약간 높게 나왔고, 같은 기간 산사에서 참선했던 사람들은 현저히 스트레스 지수가 떨어진 것은 물론, 연구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다.

『선가귀감』에 ‘참선은 밝은 지혜의 길이고, 업은 어두운 무명(無明)의 길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업식(業識)은 생각할수록 어두워지는 마음으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다. 참선의 마음은 선(禪)의 마음에 참여하여 들어간다는 말이다. 선은 우리의 본성을 이르는 말이다. 본성은 번뇌가 없어 고요하고 청정한 마음이며, 집착이 없어 자유롭고, 여기 생생하게 살아있는 행복한 마음이며,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는 넉넉한 마음이다. 본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점점 밝고 밝은 지혜로운 삶으로 향하게 된다.

수능을 코앞에 둔 고등학교 3학년 도천이가 출가결심을 하고 며칠 전 부모님과 함께 산중을 찾아왔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한문학당에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은 학생이다. 어려서부터 배려심이 많고, 사유가 깊은 말을 하던 마음 따뜻한 아이였다. 오랜만에 만나서 대학입시와 전공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어서 상담심리전공을 하고 싶다’는 말에 ‘출가하면 더 깊고 넓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답해 주었다. 도천이는 얼마 전 MBC의 ‘강연자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내가 강연했던 내용을 보았다고 했다. ‘IMF 외환위기 때 실직자들을 위한 단기 출가 수련회를 하고, 자살을 생각했던 사람들이 수련을 하여 삶의 희망을 찾을 때 의사만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스님께서 먼저 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자각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직장인들은 한여름 길지 않은 휴가 동안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것으로 1년을 버틸 힘을 얻는데, 도천이는 작은 나의 굴레에서 벗어날 대장부의 길이라는 알토란같은 ‘참 휴가’를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내었으니, 특별하고 기쁜 이유이다.

휴가는 활기찬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마음과 몸을 충전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고된 삶에 지친 이에게 휴가가 더없이 소중한 선물인 이유이다. 폭염으로, 또 삶의 현장에서 지치거나 고통받는 분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당신은 어떤 휴가를 보내고 싶습니까?’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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