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연주자 발목 잡는 비자 문제
지난 9일 뉴욕주의 야외 원형극장 새러토가 퍼포밍 아츠 센터(SPAC)에서 파비오 루이지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열렸다.
첼리스트 요요마, 가수 존 레전드,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 등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협연으로 유명한 시리즈 공연이다. 원래 협연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였다. 그런데 대타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악장 데이비드 김이 브루흐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김봄소리는 비자 문제 때문에 공연할 수 없었다.
비자(Visa)란 외국인에 대한 입국허가 증명이다. 타국에 입국하려 할 때 주재국 영사 등에게 여권의 유효성을 검사받고 제출 서류의 진위여부, 입국 목적의 정당성 등에 대한 증명과 확인을 받는 행위를 말한다.
김봄소리가 비자 발급을 위한 신청서를 담당 변호사를 통해 미국 비자청에 낸 시점은 올해 3월. 공연 5개월 전이었다. 비자 발급 과정은 험난했다. 비자청에 긴급(Expedited)으로 처리하는 비용을 지불했지만 3~4주 걸린다던 비자 청원(Petition) 과정이 3개월 넘게 끌었다. 이후에도 베를린에서의 비자 인터뷰 예약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추가로 2주 이상 추가 지연됐다. 모든 과정을 비자 전문 변호사와 함께 진행했음에도 8월 9일 연주 전까지 비자는 발급되지 않았다. 중요한 무대를 놓친 김봄소리는 이 모든 과정에서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없어서 큰 답답함을 느꼈다고 했다.
김봄소리 뿐 아니라 많은 연주자들이 미국 비자 발급 과정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행정적 문제를 넘어 예술가의 경력과 생계를 위협하기도 한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브렉시트 이후 비자 절차가 복잡해지면서 일찍 신청해도 제시간에 비자를 받지 못해 연주를 못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작년 유명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는 비자 문제로 영국을 대표하는 음악 축제인 BBC 프롬스 공연을 취소해야 했다.
비자 발급 과정에서 예측 가능한 투명성과 효율성의 개선이 시급하다. 전문 직종에 대한 비자 신청 시 긴급하게 처리되어야 할 상황에 대해 명확한 소통 창구가 있어야 한다.
독일 작가 베르톨트 아우어바흐는 “음악은 유일한 세계 언어이며 번역할 필요가 없다. 영혼은 그 안에 있는 영혼과 대화한다”고 했다. 특히 오랜 세월 검증된 고전음악의 공연은 비자 발급과정에서 걸러질 대상과는 거리가 멀다.
K클래식이 각광받는 요즘, 국제적인 예술 활동은 단순히 한 연주자의 경력만을 위한 게 아니다. 국가 간 문화 교류와 이해를 증진하는 외교관의 역할도 한다. 각국 정부와 문화 기관들이 협력해 예술가들의 비자 발급 과정 개선이 이뤄졌으면 한다. 연주자들이 더욱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전 세계에 창의성을 펼칠 수 있도록.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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