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은 집집마다 계절마다 다 달라…10~20년 걸려 찍었다
“전국이 장마전선 영향을 받겠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면 사진작가 이동춘(62·사진)은 SUV 차량에 시동을 걸고 남쪽으로 향한다. 장마가 소강상태일 때 물안개가 피어오른 경북 안동의 고택들이 얼마나 몽환적일지 상상만 해도 가만있을 수 없어서다. “막상 내려가면 비가 그쳐 쨍쨍하곤 해요. 촬영 허탕 치는 게 열 번, 제대로 찍는 건 한두번? 그저 기다림과의 싸움이죠.”
그렇게 30년을 매달린 그가 최근 3권의 한옥 책을 동시에 냈다. 사진집 『덤벙주초 위에 세운 집』 『궁궐 속의 한옥』과 2021년 출간했던 해설집 『한옥·보다·읽다』(공저 홍형옥)의 영문판이다. 『덤벙주초…』는 민가나 서원·향교 사진이 주축이고, 『궁궐 속…』은 창덕궁 내 연경당·낙선재의 사시사철을 담았다. 모두 10년, 20년씩 걸려 ‘기다림과의 싸움’ 끝에 포착한 한옥의 멋과 아름다움이 담겼다.
지난달 31일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서 만난 그는 “전통 한옥은 손글씨 같다”고 했다. “같은 재료란 게 있을 수 없고 같은 목수가 지어도 다 다르다”면서 “집집마다 다르고 계절마다 다르니 아직 찍을 곳, 알릴 곳이 많다”고 말했다.
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 출신의 그가 한옥 촬영에 본격 뛰어든 건 2004년 고속철도(KTX) 개통이 계기였다고 한다. 프리랜서 사진가로 전국의 KTX 노선·역사 홍보 촬영을 맡았는데, 드론이 없던 시절에 교각 위의 열차를 찍으려면 산중턱까지 올라가야 했다. “소위 명당 자리엔 항상 무덤 아니면 제사(第舍·산소를 돌보고 제사 음식 준비 등을 하는 살림집)가 있는데, 거기서 저녁 짓는 연기라도 모락모락 올라오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어요. 막 40대 들어선 터라 앞으로 난 뭐할까. 누구는 소나무, 누구는 야생화를 죽자고 찍는데 그럼 난 한옥을 찍자 싶었죠. 이동춘이 찍는 한옥 사진은 뭔가 다르다는 말을 이미 듣던 터였으니까요.”
마음먹고 찾아간 안동 고택은 각오했던 것 이상이었다. 부모가 북한에서 월남한 그에게 족보를 따지는 게 낯설었고, 1년에 수십 번씩 도포에 갓 차림으로 제사 지내는 풍경은 “조선 왕조가 망한 지 100년이 넘었는데 이게 뭔가” 싶게 어리둥절했다. 1~2년이면 그럴 듯한 한옥 사진 건질 거라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이색 풍경에 “이건 왜 이런 거죠?” 물어도 대꾸 않는 이들 속으로 파고들어야 했다. 모르는 여자가 종가(宗家)에 얼씬거리는 걸 못마땅해하는 어르신을 설득하며 짧은 머리에 남자옷 차림을 자처했다. “제례 근접 촬영을 위해 문턱을 넘는 데 3년 걸렸다”고 했다.
그래선지 그의 한옥 사진은 어딘가 다르다. 밖에서 힐끗대며 찍은 게 아니라 안방에 턱 걸터앉아 밖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대를 이어 같은 집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에서 수백년 묵은 아름다움을 잡아낸다. “그분들은 매일 사는 곳이라 ‘이렇게 예쁜지 미처 몰랐다’ 해요. 안방 벽지에 깃든 햇살을 따사롭게 잡아낸 사진이 있는데, 그 집 주인이 ‘이건 우리집 아니고 옆집 같다’고 해서 제가 정확한 촬영 시점까지 콕 짚어드린 적도 있어요.”
그 멋을 그는 차경(借景, 경치를 빌리다)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집의 창과 문을 액자처럼 활용해 밖의 경치를 잠시 빌려 감상한다는 뜻으로 전통 한옥의 건축미학이기도 하다. 이런 찰나의 자연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어지간한 상상력과 노력으론 안 된다. “고즈넉한 마루에 앉아서 이 풍경에 눈이 오면 어떨까 상상했다가 눈 소식에 냅다 달려가는 거죠. 그렇게 수시로 드나들려면 그 집이 제집 같아야 하고 그분들도 저를 내치지 않으셔야 하니, 사진 찍기 앞서 정을 쌓는 게 우선이었죠.”
“여태 찍은 한옥이 150채가 넘는다”는 그는 그간 미국 LA한국문화원을 비롯해 독일과 헝가리, 불가리아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올해 초엔 프랑스 파리의 갤러리에서 전통 한지에 프린트한 고택 사진을 선보여 주목 받았다. 이번에 『한옥·보다·읽다』 영문판을 낸 것은 세계에 한옥의 멋과 특색을 보다 널리 알리고 싶어서다. 3권을 동시 출간하느라 제작비 마련에 쩔쩔 맸으면서도 다음 사진을 궁리 중이라고 했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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