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유령’ 불린 헤즈볼라 최고위 지휘관, “7층 올라가라” 전화 받고 피살

백일현 2024. 8. 2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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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유령’을 어떻게 죽였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 이 같은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달 30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최고위 지휘관 푸아드 슈크르(사진)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하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보도했다. 슈크르는 이름이나 얼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이웃도 “유령 같았다”고 할 정도였다.

슈크르는 사망 당일 레바논 베이루트의 주거용 건물 2층에 있는 사무실에 머물렀다. 사망하기 몇 시간 전까지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슈크르는 그날 저녁 누군가로부터 같은 건물 7층에 있는 숙소로 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어 오후 7시, 이스라엘 폭탄이 숙소를 강타해 슈크르와 그의 아내, 다른 두 여성, 두 아이가 사망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이날 공습으로 70명 이상이 다쳤다.

WSJ는 헤즈볼라 관계자를 인용해 “주변 건물들 사이에서 더 쉽게 공격할 수 있는 7층으로 올라오라는 전화는 헤즈볼라 내부 통신망을 뚫은 누군가가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도청을 막기 위해 내부 통신망에서도 암호화된 언어를 사용해왔다. 지난 2월엔 소속 전사와 가족에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슈크르는 지난달 말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고원에 있는 마즈달 샴스의 축구장에 헤즈볼라가 발사한 로켓이 떨어져 10여명이 사망한 후 이스라엘의 공격선상에 올랐다. 슈크르가 사망한 당일 오전 헤즈볼라는 고위 지휘관들에게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이스라엘의 공습을 막진 못했다.

슈크르는 헤즈볼라와 후원자인 이란 사이의 주요 연결 고리였다. 1983년 베이루트 미 해병대 막사 폭탄 테러로 미군 241명이 숨진 뒤 공격 계획·실행자로 지목된 슈크르는 40년간 미국을 피해 다녔다. 헤즈볼라가 1985년 공식 창당된 후엔 첫 군 사령관이 됐다.

슈크르는 지난 10개월간 이스라엘과의 전투를 지휘했다. 외부 노출을 꺼려 참전 용사 소모임에만 모습을 드러냈고, 올해 초 이스라엘과 싸우다 죽은 조카 장례식에도 몇 분 동안만 참석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을 보도하는 레바논 언론 매체가 다른 사람의 사진을 게재할 정도로 슈크르는 베일 속에 있던 인물이었다.

WSJ은 “슈크르는 사망하자 어둠에서 벗어났다. 추도식에서 그의 얼굴은 광고판에 인쇄됐고, 전장에서의 그의 삶을 다룬 영상이 대형 스크린에 투사돼 내레이션은 그의 미덕을 귀청이 터질 듯한 음량으로 찬양했다. 그는 베이루트의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전했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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