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기대와 규제 '막차' 에 가계 빚 급증…은행, 대출금리 또 인상
최근 은행들이 앞다퉈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은 한 달 반 사이 총 20차례에 걸쳐 주택구입용 대출 상품의 가산금리(대출금리)를 인상했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와 대출 규제가 강화되기 전 ‘막차’를 타겠다는 대출 수요가 맞물리면서 가계 빚이 빠르게 급증해서다.
19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오는 20일부터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금리를 최대 0.3%포인트 인상한다. 지난 7월 이후 다섯 번째다. 신한은행도 오는 21일 주담대 금리를 올릴 예정이다. 3년 만기 금융채(은행채) 금리를 준거 금리로 삼는 대출 상품의 금리를 0.05%포인트(1년물 상품은 0.1%포인트 인상) 인상한다. 하나은행은 22일부터 모바일 전용 주담대 상품(하나원큐주택담보대출)의 감면(우대) 금리를 0.6%포인트 축소한다. 우대금리를 축소하면 금리 인상 효과로 이어진다.
5대 시중은행(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NH농협은행)이 지난달부터 주담대 대출상품 금리를 올린 건 총 20차례다. 주요 은행이 주담대 가산금리를 한 달 반 사이 1%포인트 가까이 인상하면서, 2%대 금리를 제공했던 대출 상품은 자취를 감췄다. 4대 시중은행(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은행)의 주담대 혼합금리(주기형 포함) 평균은 19일 기준 연 3.47~4.67%다. 최고 금리는 5%에 근접했다.
시중은행이 앞다퉈 대출금리 ‘벽’을 높이는 건 가계대출 증가(잔액 기준)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서다. 연간 가계 빚 증가율을 1.5~2% 선에서 관리해야 할 시중은행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14일 기준 719조9725억원이다. 지난달 말(715조7383억원)과 비교하면 보름 여 만에 4조2342억원 불어났다. 이 속도라면 월간 기준 3년 3개월 만에 증가 폭(전월 대비)이 가장 컸던 지난달 가계 빚 증가액(7조1660억원)을 뛰어넘을 수 있다. 가계 빚 증가세를 이끈 건 주담대다. 5대 은행 주담대 잔액은 14일 기준 562조9908억원으로 지난달 말보다 3조2407억원 늘었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관계자는 “(정책대출을 포함한)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지난해 말과 비교해 이미 2%를 넘어섰다”며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와 대출 규제가 강화되기 전 막차를 타겠다는 수요가 겹치면서 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수도권 중심으로 뛰는 집값은 대출 수요를 자극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주택매매가격지수는 6월 대비 0.76% 뛰었다. 2019년 12월(0.86%) 이후 55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정부가 지난 8일 내놓은 공급 대책도 아직 시장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다. 주간 서울 아파트값은 12일 기준 전주보다 0.32% 올랐다. 21주 연속 상승세다.
시장에서 뛰는 집값과 불어나는 가계 빚을 관리하기 위해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대출 문턱을 높여 주택으로 몰리는 자금(수요)을 줄이는 방식이다. 20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은행장과 만나고, 21일엔 가계부채점검 회의가 열린다. 향후 가계대출 관리에 대한 김 위원장의 목소리가 나올 전망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오는 9월 시행하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A) 2단계 대책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소득에서 빚을 갚을 능력(DSR)은 물론, 금리 변동 리스크(스트레스 금리)까지 반영해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따지는 게 스트레스 DSR 규제다. 금융당국은 단계적으로 DSR 적용 기준을 확대하고 있다. 은행권만 적용했던 1단계와 달리 2단계에선 은행권 신용대출과 저축은행 등 2금융권 주담대가 포함된다. 더 세진 DSR에 소비자가 체감하는 한도 압박은 더 커질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현재 DSR 적용 대상 확대 등 다양한 방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과 가계 빚 관리에 공들이는 건 한국은행이 하반기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자칫 치솟는 집값과 가계부채가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기준금리 인하 여건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상당수 전문가도 가계 빚 건전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봤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과도한 대출로 가계부채가 부실화될 우려가 있다”며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따지는 DSR 규제를 한층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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