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안 내놓았던 소품에서 본 ‘아버지의 바다’…'프리즈 서울' 앞두고 유영국 개인전
" “여름엔 마당에서 러닝셔츠 바람으로 못을 입에 문 채 캔버스 틀을 직접 짜느라 땀을 뻘뻘 흘리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진 이사장이 기억하는 아버지 유영국(1916~2002)의 모습이다. ‘유영국의 자연: 내면의 시선으로’가 서울 삼청로 PKM 갤러리에서 21일부터 열린다. 전시된 1950~80년대 유화 34점 중 21점이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채 유족들이 간직하던 그림들이다. 19일 전시장에서 만난 유영국재단 유자야 이사는 “겨울에는 난방비를 아끼려고 작업실을 나와 안방 앞 좁은 마루에서 소품을 그리셨다. 사람들이 소품이니까 싸게 사려 하자 아버지가 ‘가격은 그렇게 매기는 게 아니’라며 아예 팔지 않고 보관해 오던 것들을 이번에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색과 면으로 이뤄진 그림을 그리며 “추상은 말이 없다”고 했던 유영국이다. 유진 이사장은 “아버지는 과묵했다. 어릴 적 어떤 그림이 좋은지 여쭈어도 ‘네가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는 그만이셨다”고 돌아봤다. 이중섭(1916~56)의 2년 선배로 1938년 도쿄 문화학원을 졸업했고, 미술창작가협회에서 활동했던 유영국이다. 그러나 일제 말 고향 울진에까지 특별고등경찰의 감시가 미치자 고기잡이에 나섰고, 6ㆍ25로 피란 와서는 양조장을 운영했다. 유진 이사장은 "아버지의 그림에서는 울진 앞바다, 배후의 산, 고기잡이배에서 만났을 일출이 보인다"고 말했다.
풍경화도 아니건만 빨강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한 그의 그림에서 사람들은 산과 바다를 본다. 자연을 모티프 삼은 '유영국 월드'는 소품에서도 그대로다. 그린 뒤 긁어내거나, 화면을 다 채우지 않고 흰 여백을 군데군데 남긴 그림도 있다. 고(故) 정병관 미술사학자는 생전에 유영국에 대해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전통과 현대성 사이에서, 화면 구성의 지혜에 있어 중도를 걷고 있다. 강한 것과 유연한 것 사이에 그 자신의 독특한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고 썼다.
김환기와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유영국의 전시는 최근 해외에서도 활발하다. 지난해 뉴욕 페이스갤러리에서 해외 첫 개인전을 열었다. 올해는 세계 최대의 미술제인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병행전시로 퀘리니스탐팔리아 재단에서 유럽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PKM 갤러리는다음 달 초 열리는 국제아트페어 ‘프리즈(Frieze) 서울’에서 유영국의 1973년도 대작을 주요작으로 소개한다. 전시는 10월 10일까지, 무료.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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