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풍년에도, 쌀 남아돌아 골머리인데…거야 양곡법 재시동

김기환 2024. 8. 1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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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총연맹 회원들이 지난 6일 서울역 인근에서 쌀값 보장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쌀 풍년을 맞았지만, 정작 쌀이 남아돌아 골머리다. 야당은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양곡법)을 다시 발의할 모양새다.

19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쌀 풍년이 예상된다. 벼는 고온다습한 동남아 기후에서 잘 자란다. 올해는 기후 온난화에 따른 폭염과 소나기 등으로 벼가 한창 익는 여름철 한반도가 벼 생육에 최상의 환경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농가는 풍년이 달갑지 않다. 가뜩이나 쌀이 남아도는데 쌀값만 폭락할까 우려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달 5일 기준 산지 쌀 가격은 가마(80㎏)당 17만8476원을 기록했다. 올해 1월 가마당 가격(19만6656원) 대비 9.2% 떨어졌다. 쌀 수확기인 지난해 10월(21만 7552원)과 비교해 17.5% 폭락했다. 정부가 안정적인 벼 농가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제시한 가격(가마당 20만 원)에 한참 못 미친다.

김영옥 기자

참다못한 농민이 들고 일어섰다. 전국농민총연맹을 비롯한 농민단체는 지난 6일 서울역 인근에서 쌀값 보장 촉구 집회를 열었다. 9일엔 경남 의령군의 한 농가에서 논 3800㎡(약 1150평)를 갈아엎었다. 경남 진주의 한 농민은 “수확을 앞두고 쌀값이 계속 떨어져 풍년이 하나도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

쌀을 많이 거둔 만큼 소비가 뒷받침하면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쌀 소비가 예전만 못하다. 통계청이 1월 발표한 ‘2023년 양곡 소비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4㎏을 기록했다. 2022년(56.7㎏)보다 0.5% 줄었다. 30년 전(110.2㎏)의 절반 수준이다. 하루 소비량은 154.6g(한 공기 반)에 그쳤다. 196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역대 최저치다.

결국 정부가 나서 수습하는 장면을 반복한다. 농식품부는 19일 국무회의에서 지난해 생산한 쌀 5만t과 올해 40만t을 공공비축 물량으로 매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공비축제는 양곡 부족으로 인한 수급 불안, 자연재해 등 식량 위기를 대비해 정부가 쌀을 사들이는 제도다.

공공비축 규모는 2021년까지 35만t 내외를 유지하다 2022년 45만t, 2023년 40만t, 올해 45만t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쌀값 하락세가 가팔라지자 정부가 시장 개입 수단으로 공공비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다. 지난해 예산안 발표 당시 농식품부는 쌀 매입 단가를 20만원(80㎏) 수준으로 책정했다. 45만t을 가마당 20만원에 사들일 경우 약 1조1250억원의 예산이 든다. 웃돈 주고 산 쌀인데 시중에 팔리지 않으니, 결국 사료용으로 헐값에 판다. 그러고도 남아 추수철마다 창고가 모자란다.

정부는 냉동 김밥, 즉석밥, 쌀막걸리 같은 쌀 가공식품 수출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쌀 가공식품 수출액은 1억6612만 달러(약 2256억원)로 1년 전보다 45.6% 늘었다. 농식품부는 2028년까지 국내 쌀 가공산업 시장을 17조원 규모로 키우고, 관련 수출액을 4억 달러(약 5432억원)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시중에 남아도는 쌀을 처분하는 데 한계가 크다.

이런 상황인데도 야당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일 당론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하기로 했다. 지난 21대 국회 당시 밀어붙였다가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수포가 된 법안을 수정해 9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기존 양곡법보다 의무매입 기준을 완화했지만, 쌀값이 기준가격 미만으로 떨어지면 그 차액의 일부를 농가에 지급하는 내용이 골자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양곡법을 시행할 경우 2030년 쌀 매입·보관비용으로 3조원 이상이 들어갈 것”이라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유럽과 동남아에서 (양곡법과) 비슷한 정책을 시행했다가 재정 부담이 크게 늘고 농업 경쟁력이 약화했다”며 “자칫하면 중증 환자(쌀 산업)를 일으키는 대신 정부 보조금에 기대 생명만 유지하는 ‘연명 치료’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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