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동숲 전시에 신난 아이들, 왜 그런가 했더니
4대보험 없는 주부들이 쓰는 '점을 찍는 여자들'은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그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기자말>
[최은영 기자]
닌텐도 게임 중 '모여봐요 동물의 숲'(아래 모동숲)이 있다. 출시되자마자 품절 대란이 있던 귀한 게임이다.
남매는 10살 넘어가면 '남'이라서 서로 말도 안 한다는 풍문답게 우리집 남매도 '남'이다. 그런데 모동숲으로는 30분 수다가 된다. 귀한 풍경이다.
'코엑스 아쿠아리움X모여봐요 동물의숲' 콜라보 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들 마음은 벌써 코엑스에 닿았다. 사이좋은 남매를 시전한다는데 당연히 가야했다.
그렇게 볼 건 없는 전시인데
▲ 이게 천원이라고? 그냥 입장권에 포함시켜도 충분할 거 같은데? |
ⓒ 최은영 |
"이렇게 작게 꾸며놓은 게 그렇게 좋아?"
"작으면 어때. 실제로 있다는 게 중요하지!"
▲ 모동숲 주민 캐릭터 카드, <좋아하는 말>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 |
ⓒ 최은영 |
아이들이 열광하는 이유
그후로 며칠 아이들 게임을 유심히 봤다. 기존에 내가 아는 게임은 일단 급했다. 시간 내에 미션을 해결해야 하고 적을 무찔러서 점수를 얻고, 아이템을 보충해야 했다.
반면 모동숲은 해결할 미션이 없다. 그저 내 취향 대로 섬과 집을 꾸미고 낚시를 한다. 안빈낙도의 삶이다. 나는 구경만 하는데도 그 여유로움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렇게 꾸민 섬과 집에 다른 주민들을 초대해서 자랑한다. 다른 섬에 초대받아 내 섬을 꾸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물론 이런 활동을 위해 대출을 일으키긴 하지만 물고기와 곤충, 목재를 팔아 충당하면 그만이다.
일요일 아침에 무를 일정 가격에 사서 시세가 오르면 되파는 무테크도 한다. 떡상과 폭락이 가끔 있지만 치명타는 아니다. 안전한 금융시장이다. 게다가 게임 속 플레이어는 주민들과 우정을 쌓으며 따뜻하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촉진한다.
오랜만에 접속하면 주민들이 '왜 요즘 안 보였어?'라고 안부를 묻는다. 싫은 소리 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입력된 값을 읊는 자판기랑 비슷한데 묘하게 영혼이 느껴져서 '얘네가 나를 기다렸구나'라는 마음이 든다.
게임 속에서 이미 깊은 감정 연결을 형성하고 있는 아이들은 '전시'라는 새로운 형태를 만나게 되었을 때, 단순한 관람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인형과 판넬 몇 개만 가지고도 자신이 그 세계의 일부가 된 듯한 감각을 맛본 것이다.
이러한 몰입은 감정 만족도를 극대화했다. 이쯤되면 전시의 수준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결된 감정이 없는 나같은 사람 눈에는 모동숲 전시에서 특별함을 느끼기 어렵겠지만, 그 감정을 충분히 공유하는 아이들에게는 열광할 만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객은 세분화 된다. 스토리는 하나도 모르면서 퀄리티만 따지는 나같은 고객은 모동숲이 먼저 거부할 일이다. 퀄리티는 이미 게임속에서 충분히 증명했기에 전시회에 굳이 큰 돈 들일 이유가 없다. 그 퀄리티를 아는, 그 세계관에 동조하는 고객들만 데리고 가도 충분한 수익이 나니까.
어떠한 아이템이든 고객이 납득할 만한 스토리가 있다면 단순한 상품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걸 깨달았다. 이 스토리는 고객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그들이 반복적으로 찾고 싶은 경험을 만든다. 그러니 소비자와 진정한 연결을 원한다면, 단순히 제품을 팔려고 하기보다는 그 제품이 고객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방향'을 찾아야 할 때
나는 그런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까? 몇 년 간 꾸준히 글을 쓰긴 했지만 소재가 그야말로 중구난방이다. 체험단, 마케팅, 육아, 글쓰기, 페미니즘, 성경, 운동 권장, 살림, 19금 소설, 전체연령 가능 소설 등 도대체 무슨 스토리를 만들려고 쓰는 지 모르겠는 글들만 쌓였다.
각 소재별로 챕터 50개 미만으로 그친 터라 하나로 묶기도 애매하다. 모동숲 기획자가 본다면 '이 여자는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지?'라고 할 거 같다. 그래도 나는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했을 거란 걸 알아서다.
그러니 후회 대신 내가 한 선택을 옳은 쪽으로 몰고 가는 데에 힘을 써야 한다. 무수한 헛발질이 적어도 체력훈련은 됐을 거라고 믿어본다. 이제는 '방향'을 찾아야 할 때다. 글들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그 속에서 나만의 목소리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면 단순한 조각들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지금은 그 실마리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부디 내가 나를 위해 마련하는 미래가 의미 있는 점을 찍는 일이 되길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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