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비로봉에 올랐습니다
박서진 2024. 8. 1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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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진 기자]
입추가 지나고 말복을 보냈음에도 늦여름의 기세가 대단하다. 17일 아침,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소백산으로 출발했다. 폭염으로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안전 문자가 연일 계속되니 더우면 가다가 돌아오기로 했다.
천동다리안관광지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등산화 끈을 조이고,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평소 찬물을 마시지 않지만 꽁꽁 언 얼음물도 두 개나 챙겼다. 물배낭이 되었다.
▲ 사진으로 보는 소백산의 변천 |
ⓒ 박서진 |
아침 7시 48분! 야영장 근처라 그런지 반바지에 반팔, 혹은 민소매 상의를 입고 가벼운 신발을 신은 사람들이 간격 차이를 두고 내려온다. 적당하게 젖은 땀자국은 등산로로 이어진 경사가 적당한 산책길까지 다녀왔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사람들의 표정 역시 아쉽거나 지쳐보이지 않는다. 적당한 땀자국이 보기 참 좋다. 천동탐방안내소에 도착했다. 소백산국립공원 마스코트 미우가 반겨주었다.
▲ 소백산 국립공원 미우를 소개합니다. |
ⓒ 박서진 |
고요한 숲이 방음 안 되는 아파트처럼 여기저기서 속닥인다. 혼자 오르는 산길이 두렵기도 하지만 새소리, 물소리, 등산객에게 길을 내어주고 숨바꼭질 하는 산짐승의 조심스런 몸짓 소리에 귀 기울이니 불안이 사라졌다.
▲ 우렁찬 물소리가 기운을 복돋아준다. |
ⓒ 박서진 |
정상이 목표인 사람들은 조금 이른 시간에 올랐을 것이다. 안전한 산행을 위해 해가 중천에 뜨기 전 하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등산이 시작된다.
천동탐방지원센터-천동쉼터-천동삼거리-비로봉총6.6km! 원점회귀 코스로 왕복 거리 13.2km이다.
천동탐방지원센터-천동쉼터-천동삼거리-비로봉총6.6km! 원점회귀 코스로 왕복 거리 13.2km이다.
비로봉은 소백산의 주봉이며, 높이는 해발 1,439m이다. 비로봉의 칼바람은 겨울산을 찾는 등산객에게 소문난 정상 맛집이다. 쭉쭉 뻗은 침엽수를 가로지르는 파란색이 초록과 짝을 이루니 한 쌍의 원앙같다.
▲ 숲과 짝을 이룬 파란하늘 |
ⓒ 박서진 |
웅장한 계곡물소리는 고요한 숲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바위와 자갈에 막혀 길 잃은 물길의 트림 소리에 어릴 적 마당 한가운데 설치한 펌프가 소환된다. 물 한바가지의 마중물이 땅 속 물을 끌어올릴 때 그 찰나의 짜릿한 손맛! 손을 움찔하며 실없이 깔깔 거렸다.
오가는 이 없으니 너털웃음이 부끄러움을 잊는다. 그늘진 숲길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가느다란 볕이 먼지처럼 뿌옇다. 나도 모르게 손사래를 치니 햇빛이 돌 맞은 물방울처럼 사방으로 튀어 반짝인다.
숨을 길게 내뱉으며 호흡을 정리한다. 하늘을 올려보니 배부른 햇님이 나뭇잎을 풍성하게 한다. 숲길이 달라진 듯하다. 오랜만이라 착각일 수 있겠지만 기억속 길이 아니다. 잦은 폭우에 무너진 흙길 위로 박힌 돌과 쓰러진 나무를 피해 또 다른 길이 생겨난 건 아닐까?
그러나 길의 본질은 변함 없으니 발길이 자연스레 옮겨진다. 눈부심이 강렬해진다.햇살이 유난히 비치는 그곳이다. 천동 쉼터가 코앞이라는 표지판이기도 하다.
▲ 천동쉼터가 얼마남지 않았다. |
ⓒ 박서진 |
9시 25분 드디어 천동 쉼터 도착이다! 몹시 덥다. 얼린 물을 꺼내 천천히 마셨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인사를 건네며 응원한다. 당초 계획했던 목표 변경을 위해 나와 타협한다.
'더이상 못갈 정도는 아니잖아!', '더워서 그렇지 힘든 건 아니지?', '정상까지 가보자! 가다가 못 가겠으면 내려오지 뭐!' 배낭을 추스려 어깨에 메고 다시 출발한다. 청포도 사탕을 입 안에 넣었다. 너덜길이 청포도밭이 되었다. 청포도 향이 숲을 채운다.
올라가는 사람이 없으니 조급해진다. 혹시 비라도 오면 어쩌나!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마음이 배신하지 않도록 다독이며 서두르지 않고 호흡에 맞춰 발을 옮긴다. 음용이 불가하다는 샘터 앞에서 발을 멈췄다. 먹지 못한다니 손이 대신 물맛을 봤다. 손끝이 닿자마자 얼굴이 환해진다. 차가운 물맛이 더위를 잠시 잊게 해주었다.
▲ 손으로 마셔요. |
ⓒ 박서진 |
내려가는 등산객의 "안녕하세요" 큰 목소리의 인사부터 얌전한 묵례까지 그 속에 담긴 진심어린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체력을 적절히 분배하며 정상을 향해 걷는다. 정상과 한층 가까워진 천연기념물 제 244호 주목군락지에 다다랐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에는 건너편 월악산을 덤으로 볼 수 있는데 오늘은 구름속에 꼭꼭 숨었다.
▲ 고목 앞으로 펼쳐진 주목 군락지 |
ⓒ 박서진 |
정상까지 대략 1km 정도 남았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땀으로 젖은 옷이 산바람이 스칠 때마다 보송보송해진다. 건강한 바람이 마음에 쏙 든다. 천동 삼거리를 지나 탁 트인 능선이 펼쳐진다.
▲ 천동삼거리 |
ⓒ 박서진 |
하늘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다. 오른쪽은 바다만큼 파랗고 다른 한쪽은 회색빛 구름으로 뿌옇다. 비로봉 정상석 위로 구름이 걷히고 파란 물결이 요동친다.
▲ 가슴이 확 트이는 소백산 능선 |
ⓒ 박서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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