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출산제 시행 한 달째 : 웃는 자와 우는 자, 과연 누구인가?
[권희정 기자]
지난 7월 19일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사유로 출산과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임산부가 신분을 밝히지 않고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제가 시행되었다. "생모 및 생부와 그 자녀의 복리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 제1조)으로 한다는 보호출산제 시행 한 달 째, 과연 누가 웃고 누가 울고 있을까?
웃는 자
보호출산제 시행을 전후하여 보건복지부와 관계 기관은 이를 홍보하기 위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일찍이 보건복지부와 대한약사회는 업무 협약을 맺었으며 이미 전국 2만5000개 약국에 24시간 위기임산부 상담 전화번호 1308 홍보물을 비치했다. 약국 외에도 산부인과 (544개소), 보건소 (246개소), 가족센터 (244개소), 학교 밖 청소년센터 (22개소), 중/고등학교 상담실 (5,719개소), 대학교 상담센터 (409개소)에 홍보물을 배포했다.
뿐만이 아니다. 복지부 관계자와 관련 기관 담당자들까지 보호출산제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뜻하지 않은 임신, 출산 혼자 감당하지 마세요. 1308"이라는 문구가 쓰인 홍보물을 들고 정부 관계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각종 공중파 뉴스와 소셜 네트워크를 장식하고 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도 한 매체 인터뷰를 통해 "벌써 13명이 보호출산을 신청했다. 달리 말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었던 13명의 아이가 살아난 것으로 볼 수 있다"(KBS NEWS 2024.8.8)라고 말하며 흡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순간 무슨 근거로 보호출산제가 없었다면 13명의 위기 임산부가 모두 아기를 죽였을 것이라고 가정한 것인지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더 궁금한 것은 이것이었다. 잠정적 영아 살해범으로 몰린 이 13명의 위기 임산부는 정작 보호출산제를 선택하고 웃었을까? 그리고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기는 1308을 홍보하는 관계자들처럼 환하게 웃으며 성장할 수 있을까?
우는 자
위기 임산부의 신분과 모든 정보는 보호출산제를 선택한 순간 비식별 정보로 전환된다. 즉 아기는 보호출산제로 태어났다는 것 외엔 어머니가 누구인지는 물론, 자신의 출생에 관련된 어떤 정보도 어떤 이야기도 알지 못한다. 정확한 상담 메뉴얼이나 수많은 변수에 대응하지 못하는 현행 상담 시스템 안에서 순간적 판단으로 선택한 보호출산제가 영구히 단절되는 어머니와 아기에게 지속적인 트라우마가 될 가능성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은 것일까.
우선 아기를 포기한 어머니는 생모신드롬 (Birthmother Syndrome)으로 고통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생모신드롬이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의 일종으로 출산 후 아기를 포기한 산모가 평생 우울증, 자기학대, 자존감 상실, 그 외 이유 없이 앓는 신체적 질병 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원가족과 자신의 출생에 대한 모든 정보를 잃고 입양이나 보호시설로 보내질 아동이 경험할 정체성 부재의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전쟁 이후 잘 살기를 바라며 해외로 입양 보낸 20만 명이 넘는 아기들이 성장하여 한국에 돌아오기 시작했다. 무시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수의 해외 입양인들이 한국을 찾고 있기에 우리는 이들을 '귀환 입양인'으로 부른다. 이들에 대한 공식적인 집계는 없으나 한해에도 수백 명이 자신의 원가족에 대한 한 줌의 정보라도 얻기 위해 한국을 찾고 거의 빈손으로 돌아가고 있다.
▲ 상담전화 1308과 위기 임산부 안전한 임신 중단이 보장되지 않거나, 출산/양육을 위한 충분한 지원이 없다면 누구나 위기 임산부이다. |
ⓒ 권희정 |
이로써 보호출산제의 명과 암은 분명해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보호출산제를 선택한 산모의 숫자를 세며 웃어야 할까? 이전 기사(2024.6.28)에서도 언급했지만, 영국은 아동 유기에 있어서 어떤 예외 사항도 두지 않고 철저히 단속하고 처벌하는 한편, 위기 임산부와 임신과 빈곤 가정 지원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영국 역시 미혼모에 대한 낙인, 미혼모 아기를 대상으로 한 비밀 입양이 성행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입양 개혁 운동이 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어떤 선택이 없어 아기를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던 미혼모 당사자들, 그리고 비밀 입양 관행 속에 자신의 출생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던 입양인들, 그리고 그들의 경험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감을 한 학계와 정부, 입양 관계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낸 결과이다. 이로써 입양은 서서히 공개 입양으로 바뀌어 갔으며, 원가족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입양 아동의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1975년 입양인은 18세가 되면 자신의 출생 관련 기록이 나와 있는 출생증명서 원본을 받을 권리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1986년에는 입양 사후 센터가 런던에 처음 설립되었다. 입양으로 아기를 잃은 영국 미혼모의 경험을 연구한 <입양으로 아기를 잃은 50만 명의 여성들 Half a Million Women: Mothers Who Lose Their Children by Adoption >(1992년 출간, 국내 미번역)에 따르면 센터가 열리자 놀랍게도 10년, 20년 전에 입양을 보낸 미혼모들이 나타나 그간의 억눌렸던 아기 상실에 대한 슬픔을 토로했다고 한다.
3년 후인 1989년 영국은 일반등기소에 입양부서를 두도록 규정했다. 이곳에 입양인과 친생부모는 자신의 정보를 등록할 수 있다. 만약 '모자 관계가 확인'되면 입양부서 담당자는 입양인에게 알림으로써 재회를 돕는다. 이제 영국은 "입양인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은 정상이며, 마땅히 그래야 하고, 장려돼야 한다는 생각이 점차 정당성을 얻고 있다"(같은 책).
우리가 채택한 보호출산제는 "위기", "보호", "지원"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산모의 익명성 "보호", 익명 출산 "지원"이다. 안전한 시기에 임신 중단을 보장받지 못하는 산모, 건강한 출산과 충분한 양육 자원을 지원받지 못하는 산모는 언제나 위기 임산부이다.
위기 임산부로부터 아기만을 분리하여 입양이나 시설로 보내는 것은 임산부의 위기를 해결하는 임시방편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산모와 아기 모두를 장기적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보호출산제로 웃는 자, 누가 울고 있는지 보고 무엇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하고 고치고 실천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혼모 아카이빙과 권익옹호 연구소> 칼럼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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