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1923 간토대학살> 피디가 된 이진희 교수

김성수 2024. 8. 1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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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기자]

이진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한 후 지난 2004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일본제국주의사'를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그는 미국 이스턴 일리노이 대학에서 사학과 교수 및 아시아학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21년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왜곡한 미국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 논문에 최초로 문제를 제기해 램지어로부터 항의 메일을 받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스트레스 때문인지 건강이 급격히 악화하며 암에 걸려 항암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램지어 사태'가 불거진 직후부터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일본 내 재일교포 차별을 정당화 하는 램지어의 또 다른 왜곡 논문도 찾아냈다. 그래서 이를 출판하기로 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로 하여금 결국 램지어의 논문을 수정하도록 주도한 끈질긴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지난 광복절에 개봉한 영화 <1923 간토대학살>의 피디가 되었다. 어떤 사연으로 '끈질긴' 대학 교수가 영화 피디까지 하게 된 것인가? 그 사연이 궁금했다. 그래서 지난 12일부터 18일까지 이진희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이진희 교수
ⓒ 노틀담대학
- '1923년 간토대학살'에 관해 세계 최초로 박사 논문을 썼는데 논문의 제목과 내용을 소개하면?

논문 제목은 <제국의 불안정성: 대지진, 소문, 일제의 한국인 학살>(Instability of Empire: Earthquake, Rumor, and the Massacre of Koreans in the Japanese Empire)이다. 이 논문에서 나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을 근대 일본 제국의 식민지 경영상의 불안정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분석했다. 한글과 영문 자료를 포함해 이 사건과 관련한 해외 자료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던 시기에 다국어로 된 증거 자료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조망한 연구 논문이다.

[관련기사] 누명 쓰고 보복학살 당했는데, 사과도 못 받았다(https://omn.kr/8fvg)

- 지난 1990년대 말부터 '1923 간토대학살' 관련 다양한 연구와 조사를 했는데 이 사건에 관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연구하게 된 계기는?

25년 전 요코하마의 연구소에 적을 두고 있던 당시, 간토대지진 후 특히 대규모의 한인 학살이 자행되었던 그 도시의 문서 사료를 여럿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원인, 과정, 규모와 결과에 대해 그 어느 하나 만족스러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당시 여러 군데 학살이 벌어졌던 현장을 걸으며 생각했다. 1920년대 거대한 두 국제 도시인 도쿄와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비무장 민간인 대량 학살 사건은 수많은 중국인과 서양인을 포함해 반드시 많은 목격자를 낳았을 것이고, 당시의 충격적인 상황은 그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지난 25년간 열심히 전 세계의 관련 증거 자료들을 모았다. 학살 책임 당국의 부단한 은폐 노력에도 세계 사람들은 기록하고 있었다. 이제는 이런 흩어진 기록들을 모아 해를 손바닥으로 가리듯 수 만 명의 목격자가 있던 인종 학살 사건을 완전히 은폐하려는 지난 101년간의 상황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간토 조선인 인종 학살의 상세 사항과 유형을 보면 국가가 유포한 가짜뉴스가 어떻게 비인도적인 경험과 반인류적인 범죄에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이 휘말려 들어가게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반드시 잘 알려 세계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과 지도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피해자와 가해자 측이 인종 학살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화해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역할 모델이 되어주기를 희망한다."

- 미국 대학에서 한국사·일본사·역사를 가르칠 때 미국 대학생들 반응이 어떤지?

홀로코스트와 같은 서양사 중심의 교육과정에서 배운 인종 학살 사례와 미국 역사에서 배운 인종 차별에 근거한 린치와 학살과 비교하면서 흥미로워 한다. 그런데 왜 동아시아 역사에서 보이는 간토대지진 당시의 조신인 학살과 같은 세계사적인 현상을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지 의아해하기도 한다. 세계사와 세계2차대전 관련 수업을 할 때면 유럽의 상황은 상세히 배웠지만 태평양전쟁은 진주만 공격, 원자폭탄 투하, 미국 내 일본계 이민자들에 대한 핍박과 강제수용 외에는 교과서에서 상세히 배운 경험이 없는 세대다. 난징대학살과 '위안부'의 폭력과 관련해서는 조금씩 고등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한 세대다. 하지만 이외 731부대나 강제동원 그리고 간토대학살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학생이 많다.

- 요즘 모국의 반쪽 광복절 소동을 보고 드는 감회는?

대한민국이 근대국가로 태동하게 된 맥락과 역사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본 상세한 교육이 절실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제하 극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어떻게 근대민주주의 사상과 제도에 기초해 운영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야만 했던 한인들의 희생적, 재정적 지원을 받았는지, 또 독립선언서와 헌법에 담긴 사상이 어떠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숙지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중국 동북지역 독립운동 사적지 답사를 다녀왔는데, 더 알고 더 공부할수록 근대국가로서 대한민국이 일제의 불법점거 하에서도 어떻게 당시 동아시아와 세계사의 흐름 가운데 다이내믹한 과정을 통해 설립, 유지, 성장해올 수 있었는지를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그 지난한 과정과 결과를 안다면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와 그 법통을 이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역사를 오해·왜곡하는 일은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 지난 광복절에 개봉한 영화 <1923 간토대학살>의 제작 과정 중 김태영 감독에게 여러 자료를 제공하고 학문적 조언을 하며 피디로 함께했다. 독자들을 위해 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를 소개하면?

지난 해 간토대학살 100주년을 맞아 지진 후 대규모 조선인 학살이 자행되었던 도쿄 아라카와 강변에 한국인단이 찾아가 희생자들의 영령을 추모하는 장면으로 다큐멘터리가 시작된다. 그리고 사건 발생 후 지난 백년간 어떤 과정을 통해 종족 말살형 민간인 학살이 발생했고 어떻게 그 진실이 철저히 은폐되어 왔는지를 다루고 있다. 또한 온갖 방해에도 여러 형태로 이 충격적 사건의 진실을 쫓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평생을 바쳐 인종, 국경, 시대를 넘어 희생자를 추도하고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해 오신 분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겨 장차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갈지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관련기사]

일본 연구소에서 찾은 특종... 4년여 추적 끝에 나온 '1923 간토대학살'(https://omn.kr/29sx2)

-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피디로 함께하게 된 동기는?

4년이 넘는 제작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역사자료에 대한 수집, 공개 그리고 고증이 필요한 때 나와 연결 되었다. 당시 김 감독님의 간토 다큐를 위한 역사 고증 요청에 나는 답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지난 두 해 동안 일본군이 범한 '위안부' 성노예 제도의 범죄 현상을 '자발적 매춘부' 활동으로 국제적인 역사 왜곡을 시도했던 소위 '램지어 사태'에 대항하며 싸워온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항암 치료를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학문의 탈을 쓰고 일본군과 반인도적인 제도적 범죄 행위를 저지른 책임 당국에 면죄부를 주는 주장으로 일관한 그의 '역사' 연구 논문에는 간토학살의 본질을 왜곡하는 주장을 담은 것도 여러 편 있던 터라 간토대학살의 진실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야한다는 소명감이 있었는데도 제작팀과 나의 만남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던 중 지난여름 일본 내 100주년 추도집회 자리에서 제작팀과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영화 내용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첫 만남의 순간 제작진이 보여준 진실 추구에 대한 진지함과 성실함에 감동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자료제공, 역사사료의 해석과 번역, 고증을 통해 더더욱 깊이 제작에 관여하게 되어 결국 피디를 하게 되었다.

-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일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제작비로 한국 최초의 간토학살 다큐를 만드는 것도 힘들었지만, 한 장면, 한 장면 만든 후에도 참 많은 방해가 있었다. 100년간 의도적으로 은폐해 온 것을 천하에 드러내려 하니 당연한 훼방이 따랐다. 화도 나고 겁도 났지만 우리의 목표는 선명했다. 결국 공권력을 위시한 위협에 영화에 차마 다 담지 못한 내용이 있어 아쉬움이 남지만, 진실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있어 훌륭한 첫발을 디뎠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한인이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당하는 지경에 이른 크나큰 사건인데도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안의 중요성과 시사점을 간파하지 못하고 이런 저런 핑계로 이 인종 학살의 역사를 한구석으로 치부해오고 있는 점이다.

당시 이 사건은 수많은 한인들에게 어디까지 어떻게 제국의 위선적인 프로파간다(선전) 아래 인간 이하로 내쳐질 수 있는지 직감하게 한 사건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많은 생존자들이 독립투사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육신의 생존뿐이 아니라 정신과 정체성의 생존이 왜 더 중요한가 하는 차가운 현실을 앞에 하고 뜨거운 가슴의 대한민국의 아들딸로, 또 부정한 식민지배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해 힘쓰는 자들로 새로 태어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앞으로 일본 내 한인 인종학살 시도가 어떻게 종족 말살에 실패하게 되었는지, 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한인 중 얼마나 많은 남녀노소 독립운동가들이 나왔는지도 소개해나가고 싶다.
 영화 <1923 간토대학살> 포스터
ⓒ 1923 간토대학살
- 왜 오늘 우리가 이 영화를 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한국인들은 피지배민으로서 암울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정확히 역사를 직시하고 구체적으로 공부해 다른 이들에게, 또 미래세대에게 선명한 교훈을 남겨줄 의무가 있다. 또한 양심적 일본인들의 끈질긴 진실과 화해 추구의 모습을 영화에서 보면서 많은 한국의 관객들이 낯이 뜨거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거기서 멈추지 말자.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지난 101년과는 다른 새로운 역사를.

- 왜 한국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는 데 소극적이라고 생각하나?

간토대학살의 역사가 지난 101년간 한국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복합적이나 그 중 하나는 일본 정부의 은폐 공작에 보기 좋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당시 조선인들이 실제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라든지, '자연스러운' 유언비어로 인한 피치 못할 상황이었다든지, 심지어 당시 일제가 세계를 향해 사후 대책으로 퍼뜨린 가짜뉴스로 조선인 '빨갱이'와 일본인 '공산주의자'가 공모해 폭동과 범죄를 일삼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 라는 식의 날조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반공'으로 포장된 허울이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증표인 듯 정치적으로 호도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1920년대 일본에서 살았던 한인 동포들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건에까지 관심을 두지 않고 한국사나 세계사와는 별개인 일탈의 역사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상업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극장가가 상영을 주저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 이 영화가 한국의 더 많은 영화관에서 상영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 독자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12세 이상 관람가'라는 허가를 받은 것 자체가 큰 행운인데, 차세대들이 모두 이 역사에 대해 알고 미래를 준비해 나갔으면 한다. 그런 동기와 계기를 부여해주는 것은 어른들, 즉 우리 독자들의 책임이다. 그들이 긴 역사적 안목과 국제적, 세계적 관점에서 이 기이한 현상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고 성장했을 때, 이와 유사한 인종 학살로 확대될 수 있는 가짜뉴스가 유포된다든지 증오범죄가 발생한다든지 하는 순간, 끔찍한 눈덩이처럼 커지는 인류의 과오를 멈추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독자들이 이 영화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번 주 내에 많은 관객이 예매하면 상영관이 늘어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번 주여야 다음 주 상영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 이진희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 석사 및 박사(일본제국주의사 전공). 일본 동경대학교, 문부과학성, 국립민속역사박물관 연구원, 도쿄대학교 및 하버드대학교 연구원 역임. 현재 미국 이스턴 일리노이 대학 사학과 교수 및 아시아학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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