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세 번째 도시 된 서울, '끔찍한' 상상

양형석 2024. 8. 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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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장동건 주연의 대체 역사물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양형석 기자]

지난 15일은 제79회 광복절이었다. 광복절은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한국이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8.15광복'을 기념하는 날로 1949년에 국경일로 지정됐다. 매년 광복절이 되면 경축식을 진행하는데 독립 기념관이 개관한 1987년부터는 어김 없이 독립 기념관에서 8.15 경축식을 진행했다.물론 세종문화회관이나 광화문광장 등에서 행사를 진행할 때도 있었지만 광복절의 의미가 달라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독립 기념관의 광화문 경축식이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7일 독립 운동을 폄훼하는 발언을 했던 김형석 교수가 독립 기념관 관장에 임명되면서 이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결국 올해 광복절 경축식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부가 주도한 행사와 광복회를 비롯해 야6당이 용산 효창 공원에서 개최한 행사로 나뉘어 '반쪽 경축식'이 열렸다.

시끄러운 현 상황을 보고 있자니,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가 떠오른다.
 이시명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던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서울에서만 85만 관객을 동원했다.
ⓒ CJ ENM
한국엔 아직 흔치 않은 타임슬립 영화들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 여행을 하는 초자연 현상을 의미하는 '타임슬립'은 SF계열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교적 자주 등장한다. 과학적인 설명이 부족하더라도 이야기의 서사만 잘 연결된다면 얼마든지 영화와 드라마의 한 장르로 관객들을 만족 시킬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비해 영화에서는 아직 시간 여행이 그리 자주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2005년에 개봉했던 영화 <천군>은 남북이 극비리에 개발한 핵무기를 미국 몰래 빼돌린 남북한 군인들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조선 시대로 떨어져 '청년 이순신' 을 만난다는 내용의 SF 코미디 영화다. 거창한 설정에 비해 완성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박중훈, 황정민, 김승우, 공효진 등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고 오늘날 천만 영화를 5편이나 보유하고 있는 마동석의 연기 데뷔작이기도 하다.

2007년에는 현재까지 고소영의 마지막 영화가 된 타임슬립 로맨틱 코미디 <언니가 간다>가 개봉했다. 화려한 의상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의상실 잡일을 전전하는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꿈을 이루고 사랑도 쟁취한다는 내용의 경쾌한 SF 성장 코미디 영화다. <이중간첩>과 <아파트>의 연이은 실패로 슬럼프에 빠졌던 고소영이 열연을 펼쳤지만 <언니가 간다> 역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동명의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만든 손예진과 소지섭 주연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도 타임슬립이라는 소재가 포함된 판타지 멜로 영화다. 신인 시절이었던 2001년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남매로 출연했던 손예진과 소지섭이 스타배우로 성장한 후 17년 만에 재회해 애틋한 멜로 연기를 선보이며 많은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또한 떠오르던 신예 박서준이 소지섭의 대학생 아들로 특별 출연했다.

서울이 '일본 제3의 도시'가 됐다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사카모토는 이후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 CJ ENM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장동건이 곽경택 감독의 <친구>보다 먼저 출연을 결정했지만 촬영 준비기간이 길어지면서 <친구>보다 늦게 촬영을 시작한 영화다. 영화 초반 어색해진 짧은 머리의 장동건이 등장하는 것은 <친구> 촬영 직후 바로 촬영에 들어간 탓이다. 당시 한국 영화로는 파격적인 80억 원에 달하는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면서 제작 당시부터 관객들의 많은 기대를 많았던 작품이다.

물론 2024년을 기준으로 보면 는 다소 뻔하고 조악해 보이는 CG도 적지 않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 이 영화에서 보여준 액션의 완성도는 그 시절 '한국형 액션 블록버스터의 정점'이었던 <쉬리>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특히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가전은 감독과 제작진, 배우들이 상당히 공 들인 흔적이 엿보일 정도로 상당히 수준이 높다.

영화의 완성에 대한 평가는 관객마다 제각각이지만 사카모토를 연기한 장동건과 사이고 역의 나카무라 토오루가 보여준 연기 호흡에 대해서는 호평 일색이다. 두 사람은 때로는 둘도 없는 친구와 동료로, 때로는 치열한 라이벌과 적으로 영화 속에서 자주 부딪힌다. 차가운 인상과 달리 촬영 기간 내내 스탭을 챙길 정도로 정이 많은 배우였던 나카무라는 2002년 대종상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1909년 10월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미수에 그치고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이 독일의 베를린에 떨어지면서 1945년 광복을 맞지 못한다는 설정의 이야기다. 그렇게 긴 세월이 흘러 2009년의 서울은 여전히 '경성'으로 불리는 일본의 세 번째 도시가 됐다.

그리고 조선계 일본인 경찰 사카모토(장동건 분)는 조선인들로 구성된 반정부 무장단체 '후레이센진'을 쫓는다. 아무리 영화 속 가상 현실이라지만 대한민국에게는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19분이면 충분했던 천호진의 카리스마
 조선해방동맹의 리더 김준환을 연기한 천호진은 짧은 분량에도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 CJ ENM
배우 천호진은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서 조선인들로 구성된 해방동맹 단체 후레이센진의 리더 김준환을 연기했다. 김준환은 이토회관에서 인질극을 벌이다가 영화 시작 19분 만에 사카모토의 총에 맞고 사망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사카모토에게 조선인의 정체성에 대해 일갈하는 등 넘치는 카리스마로 관객들을 압도했다.

<타짜>에서 '마포대교의 안전성(?)'을 격하게 신뢰하는 곽철용 역으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김응수는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서 일본인 경찰 미우라를 연기했다. 김응수는 이 작품 뿐 아니라 <재밌는 영화>와 <한반도>,<기담>,<그림자 살인> 등 많은 영화에서 일본인 역할로 출연한 바 있다. 이는 김응수가 일본 영화대학에서 유학을 하면서 일본과 일본어에 매우 능숙한 배우이기 때문이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서 김준환 사망 후 후레이센진의 새 리더가 된 인물은 바로 서진호가 연기한 오혜린이었다. 거친 반정부 무장단체를 이끄는 여성 리더인데 여성이 리더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오혜린은 영화 속에서 압도적인 실력이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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