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본 '하츄핑', 결국 저도 울었습니다
[김예지 기자]
우리 집에는 두 괴물이 산다. 올해 여섯 살, 네 살인 괴물들의 특기는 어깃장 놓기. 무슨 말이든 한 번에 듣는 법이 없고 "시룬데(싫은데)?" 하는 말로 엄마의 인내심을 테스트한다.
유난히 마음이 바쁜 어느 아침이었다. 오전 11시부터 학부모 참여 수업이 있었다. 급한 업무를 쳐내려면 일찍 출근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바쁜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늦장을 부렸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영화 속 장면 |
ⓒ 쇼박스 |
지난 9일, 아이 둘을 데리고 처음 극장 나들이에 나섰다. 상영관에 들어서기 전부터 시끄럽게 굴면 중간에 나와야 한다는 협박에 가까운 당부를 여러 번 해두었다. 여차하면 중간에 나올 수 있게 출입구에서 가까운 맨 뒤 좌석을 예매했다. 쏟아지면 수습이 어려운 팝콘과 콜라 대신 빼빼로와 어린이 음료를 준비했다.
두 아이 좌석에는 각각 어린이용 방석을 깔았다. 눈높이는 얼추 맞춰졌지만 몸이 가벼운 두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시트가 함께 들썩였다. 자칫하면 두 아이를 무릎에 각각 얹고 봐야겠구나,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주인공 '하츄핑'은 우리 가족에게 꽤 친숙한 캐릭터다. 첫째가 무려 1년여를 푹 빠져 지낸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 시리즈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지난봄 첫째가 즐겨 입던 원피스도 하츄핑, 몇 개월을 졸라 마침내 생일 선물로 쟁취한 장난감도 하츄핑, 약국에 가면 단골로 챙기는 비타민도 하츄핑이다.
영화는 '캐치! 티니핑' 시리즈의 프리퀄로, 로미와 하츄핑이 처음 만나는 스토리다. 짝꿍 티니핑을 간절히 찾아해매던 로미는 왕궁서재에서 우연히 하츄핑의 존재를 알게 되고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티니핑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왕궁 식구들의 반대에 부딪히는데, 하츄핑이 사는 곳이 괴물 트러핑이 사는 라미엔느 성 근처라는 이유에서다.
영화의 빌런인 트러핑은 한때 라미엔느 성에 살던 리암왕자의 짝꿍 티니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성안 사람들을 모두 돌로, 티니핑들을 괴물 혹은 병사핑으로 만든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결국 로미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하츄핑을 구하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로미가 하츄핑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드러난다. 처음에는 로미를 피하던 하츄핑도 결국에는 로미의 진심을 깨닫고 마음을 연다.
아이에게 보여주려고 갔는데 엄마가 더 재밌게 봤다는 후기들은 과장이 아니었다. 하츄핑이 사는 온통 핑크로 뒤덮인 동네는 탐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고, 로미가 하츄핑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에 뛰어드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찔끔 났다.
주인공 하츄핑 말고도 마음을 짠하게 하는 인물이 있었다. 영화의 빌런으로 등장하는 괴물 티니핑인 '트러핑'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트러핑은 라미엔느 성에 마법을 걸어 티니핑들을 괴롭힌다. 또 주인공 하츄핑에게 '사람은 절대 믿어서 안 되는 위험한 존재'라고 주입하며, 하츄핑이 로미와 거리를 두게 만든다.
▲ 영화 속 장면 |
ⓒ 쇼박스 |
우려가 무색하게도 두 아이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의 말썽도 부리지 않았다. 자리가 불편했을 법도 한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빼빼로를 하나씩 꺼내먹으며 집중해서 영화를 봤다. 쉬를 오래 참았는지 서둘러 볼일부터 보고 나온 아이들에게 손을 씻자고 말했는데 웬걸, 돌아오는 대답이 "시룬데?"가 아니다.
요 괴물들이 이럴 리가 없는데, 싶어 오늘 기분이 좋은지 묻자 첫째가 말했다.
"응. 좋아. 엄마가 어린이집에 빨리 데리러 와서 좋아. 하츄핑 보고 빼빼로도 먹어서 또 좋아. 팝콘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내친김에 아이들과 키즈카페에도 갔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날 대하는 아이들의 말투와 시선이 점점 동그래진다. 트러핑인줄 알았던 아이들, 알고 보니 사랑이 넘치는 하츄핑이었다.
몇 시간 오롯이 함께 보낸 걸로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니 평소의 뾰족한 행동도 이해가 된다. 매일 어린이집에 꼴찌로 데리러 오는 엄마가 집에 와서는 제대로 놀아주지도 않고 '씻자, 이 닦자, 자야 돼'라며 서두르는 게 싫었을 테지. 트러핑이 괴물이 된 이유가 있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뾰족해진 데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 트러핑인줄 알았던 아이들, 알고 보니 '사랑의 하츄핑' |
ⓒ 김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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