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민심이반 최대 변수로…홍수·폭염, 北 아킬레스건 '식량' 위협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과 지난달 말 평안북도·자강도 등 북부 국경지대 홍수 같은 이상 기후 현상이 북한 체제에 중대한 위협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김정은 정권의 아킬레스건 격인 식량 수급 문제와 직결된 북한 내 쌀·옥수수 가격이 홍수 피해 이후 급등하면서 식량난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일본의 북한 전문매체 아시아프레스가 19일 공개한 '북한 시장 최신 물가 정보'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북한 내 쌀 가격은 1㎏에 6800원으로 나타났다. 춘궁기인 지난 4월 말 올해 들어 처음으로 7000원을 돌파한 쌀 가격은 대표적인 2모작 작물인 보리와 밀의 수확철을 맞은 지난달 26일 6200원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수해 직후 10% 가량 급등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6100원)과 비교해도 10% 이상 오른 수치다.
북한 서민들의 주식인 옥수수 가격도 마찬가지다. 본격적인 수확철에 접어들었음에도 지난 2일과 9일 기준 각각 1㎏당 3400원과 3200원을 기록했다. 이는 통상적으로 북한 내에서 옥수수 가격이 강세를 보이는 3~4월 춘궁기와 비슷한 가격(3000~3500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2800원)과 비교하면 15% 가까이 올랐다.
식량 문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우선 국정과제로 꼽으며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분야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장기화로 만성적인 경제난을 겪는 상황에서 '먹는 문제'는 민심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최근 대규모 홍수 피해가 발생한 이후 지속해서 이재민을 챙기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그만큼 민심 이반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일 수 있다.
북한 매체들은 올해 경제건설에서도 1차적인 투쟁목표는 '알곡고지 점령'이라며 농업 증산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의 기상 여건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정보조기경보국(GIEW)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최신 기상예보를 인용해 이달부터 10월까지 북한 지역의 강수량이 평균 이상으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해당 보고서는 폭우로 인한 침수가 홍수로 이어져 농작물에 심각한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이재민까지 발생할 것으로 우려했다. 8월 말부터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는 태풍이 북한의 식량 상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수해를 입고서도 최근 무기 거래를 축으로 밀착을 강화하고 있는 러시아 측의 지원 제안조차 거절하며 '자력 복구'에 집중하고 있다. 김정은으로서는 외부의 도움을 받는 순간 체제의 무능을 인정하는 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추가적인 자연재해에 직면한다면 외부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유석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러시아가 열어준 제재의 뒷문을 활용해 자력 복구를 추진하고 있지만, 또 다른 자연재해의 파고가 온다면 식량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질 수 있다"며 "상황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 같은 우방국이나 국제기구에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8·15 통일 독트린' 제안에 대해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 언론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번 수해 피해의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관련해서 여러 가지 민생의 어려움이 가중될 여지가 있고 그러한 상황들도 북한의 반응이나 태도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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