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칩스법 효과 없는데... 반도체 극단적 몰아주기는 선동

최기원 2024. 8. 1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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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원의 세금이야기] 'K칩스법'을 다시 생각한다① 그래도 묻고 더블로 가?

다른 시각에서 정부의 조세재정정책의 이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세금과 예산은 민주정치의 전제이자 결론이며,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말>

[최기원 기자]

 2022년 6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지난해 3월,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투자세액공제를 15%까지 늘리는 이른바 'K칩스법'이 통과되었다. 쉽게 말해 국가가 인정하는 전략적 가치가 있는 반도체 설비에 100억 원을 투자한다고 하면, 세금 15억 원을 돌려주는 제도다.

파격적인 혜택이지만 이것도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K칩스법의 확대와 일몰연장, 26조 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을 공언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은 현 15%인 투자세액공제를 25%로 확대하고 100조 원 규모의 각종 지원을 담은 특별법을 발의하고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보수 언론과 경제지는 말할 것도 없고 공영방송부터 기본적으로 대기업 감세에 비판적인 진보 언론조차도 정부의 대규모 반도체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 정도면 국론이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인 양향자 전 의원은 자신이 주장하는 K칩스법을 반대하면 매국노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매국노가 될 각오를 해서라도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이 있다. 100조 원이라 하면, 정부 재정의 15% 수준이고 법인세 1년치 세수보다도 많은 돈이다. 연봉이 5000만 원인 직장인이라면, 750만 원으로 별 고민 없이 '몰빵 투자'를 단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도 말하지 않는 K칩스법의 효과

모두가 K칩스법을 연장하고 확장하자 말하지만, 동시에 누구도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지난해부터 발효된 이 초대형 감세의 효과다. 그래서 K칩스법으로 실제 설비투자가 늘었는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capex 추이
ⓒ 삼성증권
결과는 실망스럽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메모리부분 capex(자본적 지출, 대체로 설비투자)는 오히려 5조 원가량 감소했다. K칩스법 없이 지난 5년간 꾸준히 증가해 2배가 된 추세와는 대비된다. 비메모리 부문은 전년도에 비해 약간 늘긴 했지만, 지난 5년 추세에서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보기는 어렵기도 하거니와 메모리 부문의 capex 감소를 메우기는 태부족이었다. 심지어 삼성증권은 2024년에는 삼성전자의 메모리 비메모리 부문 모두 capex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SK하이닉스는 더 심하다. 2022년에 비해 설비투자가 반토막이 났다. 20조 원에 육박하던 숫자가 8조 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난 5년을 통틀어 최악이다. 전년도보다 더 많은 설비투자를 하면 거기에 또 일정 비율을 공제해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까지 적용되었음에도 이러하다. 3조 원에 달하는 세금을 깎아준 것 치고는 썩 가성비가 나왔다고는 보기 어려운 실적들이다.

여러 변수를 통제하는 엄밀한 연구가 수행될 필요가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K칩스법은 반도체 기업의 설비투자의 방향을 바꾼 변수로는 작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인텔, TSMC, 마이크론 등의 다른 반도체 기업들의 capex 실적과 비교해도, 부진한 반도체 경기사이클의 영향이 두드러져 보일 뿐 세금과 보조금 변수를 읽어내기는 어렵다.

산업 전체로 봐도 설비투자는 K칩스법 통과 이후 하향세를 그렸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제공하는 지표 모두 그렇다. K칩스법으로 세액공제 대상으로 추가된 수소산업이나 미래형 이동수단의 경우 법안 통과 반년이 지나도록 세액공제 신청 자체가 '0'이었다. K칩스법으로 56조 7000억 원의 투자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매일경제>와 한국경제연구소의 '핑크빛 미래'는 도대체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얼렁뚱땅' 법안 심사가 빚어낸 예견된 결과

법이 통과되었던 시점부터 이는 예견되었던 일이었다. 지난해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이 통과된 직후 윤석열 대통령의 질책과 기획재정부의 말바꾸기로 황급히 법안심사가 이뤄진 탓에 심사는 '얼렁뚱땅'과 중구난방의 연속이었고 응당 검토했어야 하는 것들이 생략되었다.

기재부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하던 반도체 지원이 며칠 사이에 왜 갑자기 두 배로 늘려야 할 정도로 부족해진 것인지 설명은 없었다. 국가전략기술에 해당하는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나 최저한세를 고려한 실질적 감면액 추산, 반도체 외 갑자기 추가된 업종(수소, 미래형 이동수단)에 대한 검토는 없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구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대한 감면액 추정치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애초에 세금감면과 투자증가의 관계는 학술적으로 합의된 결론이 도출된 바가 없기도 하거니와, 법 자체가 신규설비투자가 아닌 계획된 모든 설비투자를 감면 대상으로 인정해 주는 방식이라 투자 유인효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는 그대로 들어맞았다. 어차피 해야 하는 설비투자에 정부가 현금을 얹어주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세액공제라는 '편리한 방식'에 의존한 것도 문제였다. 세액공제는 기본적으로 낼 세금이 있을 때 환급이 이뤄진다. 지난해와 같이 반도체 기업들의 성적이 '역대급으로' 나쁠 때 법인세 실적 역시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낸 세액이 없으니 환급은 없고 세액공제분은 이월된다.

막대한 고정자본투자를 바탕으로 시장우위를 점하는 것이 기본 전략인 반도체 산업에서 실적이 나쁜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설비투자가 강요되지만, 세액공제가 현금흐름에 보탬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면 투자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없다.

세액공제와 더불어 최저한세의 존재 역시 투자세액공제의 효과를 상쇄시킨다. 세법상 법인세 과표가 1000억 원 이상인 기업은 법인세를 최대한 감면받아도 17% 이상의 세금은 내야 한다. 지난해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가전략기술 중 반도체 설비투자액은 약 20조 원이었다. 그렇다면 공제액은 3조 원이 되는데, 이건 대부분 삼성과 하이닉스의 몫이다.

그런데 지난 5년간 삼성과 하이닉스가 낸 법인세 연간 평균 납부액이 9조 원가량이다. 개별 기업의 세무상 법인세율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공시된 회계를 기준으로 추산한 21% 언저리를 평균적인 실효세율로 봤을 때, K칩스법으로 연간 3조 원이 감면된다면 세율은 14%로 떨어진다. 세율이 최저한세율인 17% 이하로 떨어지면 최저한세율이 적용되므로 3조 원 중 1조 3000억 원은 공제될 수 없다.

공제 안 된 금액은 이월이 되긴 하겠지만 이들의 설비투자 규모로 보건대 매년 막대한 이월액이 쌓일 것이고 설비투자의 증감과는 상관없이 고정적으로 최저한세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공제율을 아무리 높인다 한들 투자 인센티브는 원천적으로 작동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묻고 더블로 가?
 2023년 3월 30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국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이른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그저 '묻고 더블로 가'를 외치는 것이 타당한가?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앞다투어 공제율을 확대하고 이월공제 기간을 늘리는 파격성을 강조한다. 일몰을 10년씩 연장하고, 대기업에 적용되는 15% 공제율을 25%까지 올리고, 10년 기한의 이월공제도 20년씩 하자고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K칩스법이 작동하지 않는 현실은 제대로 검토했는지 심히 의문이다. 그저 공제율만 올린다고 투자가 늘어나거나 기업경쟁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돈을 쥐여주는 것에 방점을 두기보다 다른 요소들을 우선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설령 세금을 제대로 깎아 줄 수 있도록 어찌어찌 제도를 설계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15%에서 25%로 공제액을 확대하면 산술적으로 연간 세금감면액은 3조 원에서 5조 원으로 늘어난다. 추후 설비투자 규모가 커지면 이 금액은 더 커진다. 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연속으로 100조 원에 육박하고, 사상 최대 규모의 세수 결손을 기록한 이 시점에 이런 대규모 세금감면을 주장한다면 어디서 비는 세수를 해결할지는 답변을 해 줘야 하지 않는가?

막연히 기업이 투자를 더 할 테니 경기가 활성화되어 세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고식적 답변은 곤란하다. 이미 우리는 그런 논리가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세수 기반만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경험했다.

특히 '재정건전성 노래'를 부르는 여당은 더더욱 책임감 있는 답변을 해 줘야 한다. 부가세나 소득세 같은 다른 세금을 올린다거나, 어떤 예산을 5조 원어치 구조조정을 하겠다거나 하는 계획 말이다. 아니면 '죄송하다, 지금은 기업경쟁력을 위해 재정적자를 감내할 때이고, 지나친 재정건전성 강조는 앞으로 포기하겠다' 같은 언사라도 해 줘야 하지 않는가?

쉽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최저한세율에 예외를 두고 글로벌 최저한세(15%) 룰까지도 돌파한다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현금이 많고 부유한 두 기업의 법인세율은 10%아래까지도 내려갈 수 있다. 다른 기업의 절반 정도의 세금을 내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극단적 수준의 '몰아주기'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을 수반한다. 근로소득자들이 세금을 더 낸다거나, 다른 연구개발(R&D)이나 공공서비스의 축소라거나, 국가채무의 증가에 따른 미래의 재정부담 같은 일들 말이다.

이런 일들을 감내해서라도 세액공제를 더 해 줘야 할 이유에 대해서 누군가는 말을 해 줘야 한다. 그래야 정책의 실효성과 우리가 감수할 희생을 합리적으로 저울질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뛰어야 한다'는 공포마케팅 외에는 설득력 있는 논변을 들어본 바가 없다. 이것은 정치가 아니라 선동이다.

'K칩스법'을 다시 생각한다②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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