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그려봅시다, 우리 고장 역사 문화재
[이완우 기자]
▲ 임실 2024 어린이 역사캠프 |
ⓒ 이완우 |
어린이 역사캠프는 이틀 동안에 첫날은 진구사지 석등, 하가 구석기 유적지와 상가 윷판 암각화 유적지를, 이튿날은 호국정신이 어린 소충사 등 우리 고장의 역사 문화 유적지를 탐방할 계획이었다.
▲ 임실 진구사지 석등, 역사캠프 탐방 진행 |
ⓒ 박재만 |
나는 이 역사 문화재 탐방 행사의 문화해설사로 활동했다. 특히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역사와 문화재 쉽게 풀어서 이야기했다. 석등의 구조를 중심 부분인 불집(초롱)에서 시작하여, 아래에 기단과 좌대를 이해하고, 윗부분 지붕돌과 상륜부 장식을 차례로 살폈다. 부처님이 좌대에 앉은 금당(대웅전 등)과 비교하여 석등의 주요 부재를 설명하니 어린이들도 쉽게 이해하였다.
석등으로 다가가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린이들은 석등의 대석과 지붕돌에 장엄(화려)한 석재 표면에 연꽃, 구름, 안상 등 무늬 조각을 흥미롭게 보았다. 상대석에 불집에 불을 붙이려 사다리를 놓았던 자리에 호기심을 보였다. 중대석(간주석)이 원통형인 양식은 신라 말기에 지방 호족과 선종 불교가 세력을 키워가며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시대상이 반영되었다. 석등을 둘러보고 다시 마을 정자 마루에 자리 잡고, 어린이들은 도화지에 석등을 도화지에 스케치하였다.
진구사는 백제 말기에 고구려에서 망명한 승려들에 의해 백제 땅에 설립(7세기 중반)되었고, 통일 신라 시대에 이 석등이 조성(9세기 후반)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왕자(희종의 아들)와 최고의 권문세족(충선왕의 인척)이 이 사찰의 주지였다. 이 사찰의 주지에게 몽골제국의 대칸 쿠빌라이가 삼장(三藏)이란 별호를 하사했는데, 이 '三藏'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이곳 절터에서 출토되었다. 융성했던 진구사는 조선 초기(세종 이후)에 폐허가 된 것으로 보인다.
350년 전에 임실 현감 신계징이 선비 한필상, 이시연과 함께 편찬한 실증적인 향토 읍지인 운수지(雲水誌, 1675년 한문 필사본)가 최근(2023년)에 발견되었다. 이 책자에 기록된 진구사 기록은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진구사 앞에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높은 누각을 세워 설재(設齋)하는 곳으로 삼았다.
누각 위에 천인재(千人齋)를 지었다.
어느 날 큰 홍수로 누각이 무너져 내리고, 종경(鐘磬)이 강 속으로 가라앉았다.
하늘이 흐리고 많은 비가 내리는 날에는 그 종경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임실 운수지(1675년) 진구사 한문 내용 중 발췌 해독>
이 진구사가 흥성할 때 사찰 바로 앞의 섬진강을 가로질러 높은 누각(건물 길이 100m 이상으로 추정)을 세웠고, 그 누각에 천 명이 머물러 설법하거나 재를 올리는 천인재(千人齋) 시설을 두었다는 내용이다.
폭이 넓은 섬진강을 건너지른다면 무지개 모양의 다리였을 터인데, 그 누각의 길이와 높이를 상상해 보니 그 규모가 놀랍기만 하다. 이 누각이 어느 때 큰 홍수로 무너졌다는데 그 시기는 고려 말로 추정된다. 이 마을에는 '큰물이 지면 강 속에서 범종 소리가 들렸다', '절 앞 강 건너 골짜기에 수백 명의 밥을 짓는 큰 솥이 있었다'는 등 여러 가지 전설이 현재까지 전해온다.
진구사지에서 멀지 않은 마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섬진강 상류를 가로지르는 호원교를 건너 섬진강을 따라 1km 거리의 하가(아랫데울) 구석기 유적지에 도착했다. 이곳 구석기 유적지는 섬진강 건너 있는 진구사지 석등과 2km 가까운 위치에 비스듬히 마주보고 있다.
이곳 구석기 유적지는 섬진강변 구릉지인데 현재 대부분이 농경지로서 트랙터 등 경작으로 유적지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 유적지 위의 도로변에 서서 유적지 안내판을 보는 게 전부인 아쉬운 탐방이었다.
이 지역에서 20여 년 전에 발굴 조사를 했는데, 2만 년 전 후기 구석기 유물을 중심으로 수천 점의 전기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 지층별로 나왔다. 3만 2천여 ㎡의 이곳 유적지 중에 발굴된 면적은 300㎡에 불과하였다.
▲ 임실 상가 윷판 암각화 유적지, 역사캠프 탐방 진행 |
ⓒ 박재만 |
이곳은 폭 9m, 길이 35m의 비스듬한 바위 지형으로 수십 개의 윷판형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국내 최대의 윷판 암각화 유적지이다. 이끼가 윷판 안각화가 새겨진 바위 위를 점차 덮어가고 있어서, 눈으로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는 윷판 형태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윷놀이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을 간직한 전통 놀이이다. 윷판에는 청동기 시대 천문 관측과 농경 문화와 생활과 축제가 담겨 있다.
▲ 치즈마을 작은 도서관 |
ⓒ 이완우 |
초등학교 저학년인 한 어린이는 석등을 그리고 성 모양이라고 느낌을 썼다. 모뿔 석기는 공룡 뼈 같고, 슴베찌르개는 칼 같단다. 윷판의 점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이 돌아가는 모양이 팔랑개비처럼 재미있는 듯하다.
▲ 역사탐방 유적지 문화재 스케치 |
ⓒ 이완우 |
▲ 임실 소충사 의병활동 동상 |
ⓒ 이완우 |
이석용 의병장은 임실 성수면 삼봉리에서 출생하여 정미의병(1907년)으로 의병 부대를 이끌며 항일의 횃불을 들고 의병 활동(1907~1909)을 전개하였으며, 일제에 의해 1912년 체포되어 1914년 순국하였다. 어린이들은 소충사를 참배하고 구한말 의병들의 국권 회복 활동을 알아보면서 호국정신을 마음에 키웠다.
치즈마을 가까운 산기슭 밭두렁에 야생 약초인 초롱꽃과 잔대가 꽃을 피웠다. 잔대 줄기를 마디풀과 하수오 덩굴이 타고 올라간다. 잔대꽃에서 초롱(연등)을 들고 진구사지 석등 주위를 돌았을 옛날의 진구사의 전성 시대가 연상된다.
▲ 무더위에 생기를 머금고 핀 잔대꽃과 하수오 덩굴 |
ⓒ 이완우 |
덧붙이는 글 | 필사본(한문) 운수지(1675)의 진구사지 내용을 참조하였습니다. 운수지 원문에는 진구사지를 중기사로 표기했습니다. 진구사가 폐사되고, 그 폐허된 가람 터에 작은 규모의 중기사가 있었습니다. 이곳 가람 터에서 1992년부터 2001년까지 5차례의 발굴 조사 결과 '진구사(珍丘寺)'라는 명문 기와가 발견되어 진구사지임이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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