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잘 포장된 깻잎과 오줌권
국민들의 독서력 향상을 위해 기획한 대한민국 독서 캠페인 2024리딩코리아(CJB청주방송)를제작하면서 선정한 도서 11권을 한 권씩소개합니다. <기자말>
[박은선 기자]
김겨울 작가가 추천한 2024 리딩코리아 선정도서 <깻잎 투쟁기>는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지요.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 근로자, 불법 체류자 등으로 불리고, 농촌 노동현장에서는 이름도 없이 비속어에 가까운 호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우춘희 작가가 쓴 <깻잎투쟁기>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한 1500일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고국을 떠나 한국의 농촌 사회에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작가가 직접 현장연구를 통해 저술한 책입니다.
▲ 깻잎투쟁기 표지 사진 |
ⓒ 교양인 |
단독 주택이나 빈집을 개조해서 기숙사를 만들면 상시 주거 시설로 간주되어 고용주는 한 사람당 월급의 15퍼센트인 약 30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전기세 등 공과금으로 10만 원이 추가되면 한 사람당 40만 원이 되지요. 다섯 명이 산다면 그 집의 월세는 200만 원입니다.
반듯한 인테리어로 리모델링한 집이냐고요? 아닙니다. 농촌의 논밭 한가운데 다 허물어져 가는 폐가를 대충 고쳐놓은 집입니다. 그런데 이 기숙사는 특이하게도 월세가 월급에 따라 연동되기도 한다지요. 세입자의 월급이 오르면 그때마다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 달라고 요구한다는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상식적인 일이 아니죠.
우리에게 상식이 아닌 일은 이주노동자에게도 상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작가는 이주노동자들의 기숙사가 월 200만 원짜리 돼지우리라고 얘기하면서 '여기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외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상식과는 너무 동떨어진 현실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그들의 이야기와 삶은 왜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고 있을까요. 우춘희 작가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살면서 생각하고 느낀 점을 알리고 싶어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컨테이너, 비닐하우스라는 단어를 계속 접하면서 어릴적 비닐하우스에서 담배잎 엮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토요일 저녁 여섯 시에 방영하는 타잔 드라마를 보려면 담배 농사를 짓던 친척집에서 삼십 분 이상 담배잎을 엮어야 했지요. 마을에 티비가 있는 집이 두 집 뿐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허리높이만한 담배잎을 두 장씩 포개어 어른들이 새끼줄에 엮을 수 있도록 거드는 일이었는데, 끈적끈적한 담배잎 진이 손바닥에 묻어났고 온몸에 땀이 흥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닐하우스는 그렇게 덥고 습하고 땀나고 숨막히는 공간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었는데, 이주노동자들이 그런 곳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더 예민하게 다가왔지요.
이주노동자가 온다는 것은 단순히 '인력'이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오는 일이다.
이주노동자의 손과 함께 삶과 꿈도 온다. - 깻잎 투쟁기
우춘희 작가는 이주노동자가 온다는 것은 단순히 '인력'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오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주노동자의 손과 함께 삶과 꿈도 옵니다. 샘 밀러의 <이주하는 인류>에서도 "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는데, 인간이 왔다"고 얘기하고 있지요.
스위스 극작가인 막스 프리쉬(MaxFrisch)가 이민 정책에 대해 꼬집은 말인데요.
경제 성장기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필요하니 이민을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가 경제가 침체하면 태세를 바꿔 외국인 근로자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고용주와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건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지요. 대부분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주노동자들을 두고 별의별 이야기가 난무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이상한 말이 떠돌아도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지요. <깻잎 투쟁기>는 이미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생각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김승섭 교수는 2024 리딩코리아 선정도서인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에서 '오줌권' 이야기를 꺼냅니다. 백화점의 화장품 매장 등에서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화장실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데요. 직원용 화장실은 너무 멀리 있고 고객화장실은 사용하면 안 되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런데 깻잎밭에서 일하는 여성 이주노동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은 시간 싸움에 지지 않기 위해 실제로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었다. 밭에 설치된 간이 재래식 화장실은 더러운 데다 가까이 있지도 않아서 빨리 갔다 오려고 해도 최소 10분이 걸렸다. 그 시간이면 최소 깻잎 25개 묶음을 만들 수 있었다. ...
내가 만난 이주노동자 둥에는 소변을 참아서 방광염에 걸린 이들도 있었다. 화장실에 덜 가기 위해서 물을 잘 먹지 않는다고 말하는 노동자도 많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야 하는 것이 농업 노동자들의 현실이었다. - 깻잎 투쟁기
깻잎밭 여성들이 겪는 고통,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에서 말하는 백화점 화장품 매장 여성노동자의 오줌권 문제와 너무 똑같지 않습니까. 우춘희 작가의 말대로 오늘도 우리는 낯모를 누군가의 노동력에 힘입어 잘 살고 있지요. 그러면서도 그 '노동력'이 바로 사람이라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감력을 키우는 책
▲ 마트에 진열된 깻잎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 일하는 농업 노동자들이 있다. |
ⓒ 연합뉴스 |
2024 리딩코리아 방송에서 정재승 교수는 뇌과학의 입장에서 공감을 하기 위해서 인지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현대 뇌과학에서는 공감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공감을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려는 인지적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
우리는 그동안 공감하려고 애써보지 않았고 상대에 대한 정보도 턱없이 부족한데다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감하기가 어려웠던 것이지요. 공감해야 할 대상을 조명하고 정보를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자연스럽게 공감을 하게 됩니다. - 2024 리딩코리아, 정재승
이미 오래된 우리의 현실인데도 아직도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인성이 잘못되어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아는 만큼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거겠지요. <깻잎 투쟁기>로 공감의 영역을 넓혀보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기사 송고후 블로그에 게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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