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해파리와 냉방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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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악명 높은 환승역에서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탄다.
출근길이 이렇게 한산할 수도 있구나.
맹렬한 기세로 차가운 공기를 내뿜는 지하철에서 몸을 겨우 식혀도 치열한 환승역에서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다시 맹렬한 지하철로, 다시 찌는 듯한 길 위로 다시 시원한 회사로.
연안 해역의 급격한 수온 상승으로 출현 밀도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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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절끓는 땅과 바다, 인류 전체 위기의식 필요
출근길, 악명 높은 환승역에서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탄다.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환승이 가장 쉬운 칸을 찾아 타는데, 그곳은 소리 없는 전쟁터다. 환승역을 안내하는 방송이 나올 때부터 입구 근처 인구 밀도가 더 높아지고, 이들의 얼굴엔 출발선 앞에 선 100m 달리기 선수 같은 비장함마저 감돈다. 탕, 소리와 함께 출입문이 열리면 인파가 말 그대로 쏟아져나온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넋 놓고 있다간 떠밀려 넘어질 수 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을 하는데, 그날따라 지하철의 공기부터 달랐다. 칸을 잘못 탔나 싶을 정도로 전에 없던 한산하고 쾌적한 기분. 환승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딴에는 뛰다시피 빠르게 걸어가도 밀치고 앞서가는 사람이 서넛은 보이던 출근길이,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왜지? 아, 광복절 샌드위치 데이구나. 출근길이 이렇게 한산할 수도 있구나. 누군가에겐 이런 쾌적한 출퇴근 길이 일상일 테고, 누군가는 평소의 나보다 더한 전쟁터를 매일 겪는 이도 있겠지.
맹렬한 기세로 차가운 공기를 내뿜는 지하철에서 몸을 겨우 식혀도 치열한 환승역에서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다시 맹렬한 지하철로, 다시 찌는 듯한 길 위로 다시 시원한 회사로. 평소의 그 뜨겁고 차가운 출퇴근길 위에서 '지구 온난화가 심화할수록 '냉방 계급'이 뚜렷해지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미 현실이 된 얘기다. 올해 유난히 찌는 듯한 더위에 온열질환 사망자가 벌써 스무 명을 넘어섰고, 상당수가 일터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비록 샌드위치 데이엔 쉬지 못하고 일했지만 퇴근 후 주말을 이용해 모처럼 동해안을 찾았다. 수영장과 계곡, 바다를 가리지 않고 물놀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강원도 여름 여행에서 바다 수영을 빼놓으면 서운해 떠나기 전 해수욕장 검색부터 시작했다. 상상했던 푸르고 맑은 바다 이미지가 이어지는 와중에 생각지 못했던 크고 물컹하고 투명한 것이 속속 등장했다. 기사를 찾아보니 '노무라입깃해파리'란다. 얼마 전 경북 감포 앞바다에 다녀온 후배가 해파리가 둥둥 떠다녀서 아이들이 모래놀이밖에 하지 못했단 얘길 들은 게 떠올랐다. 직경이 1~2m에 달하며 촉수를 포함한 전체 길이가 5m 이상인 개체도 있다. 한 번 쏘이면 부종, 발열, 근육마비, 호흡곤란, 쇼크 증상을 유발하는 무서운 존재다. 장마철 이후 폭염이 이어지면서 전국 연안에 해파리 떼가 들끓게 됐다. 통상 1㏊(1만㎡)당 20~40마리가 발견되는데, 국립수산과학원의 지난달 조사에서는 108마리가 발견됐다. 측정을 시작한 2015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원인은 역시나 뜨거워진 바다였다. 해파리는 고수온 영향으로 난류를 타고 제주와 서해, 남해, 동해 등으로 북상했다. 연안 해역의 급격한 수온 상승으로 출현 밀도도 높아졌다. 누군가에겐 단지 여름 해수욕을 하지 못하게 된 데 대한 아쉬움을 남기겠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생업과의 직접 연관성이다. 어민들은 무거운 해파리가 걸려 그물이 찢어지고 어획량이 줄어 아예 조업을 포기하기도 했다.
절절 끓는 땅과 바다는 이미 '역공'을 시작했다.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생업을 쥐고 흔든다. 당장은 '냉방 계급'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해도 언제까지 남의 얘기일 수 없다. 뙤약볕은 누구도 피해 가지 않고 모두의 정수리에 내리쬔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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