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이 가혹한 호적등본…생모는 첩, 직업엔 "주막업"
■ 신복룡의 해방정국 산책
「 타협 없이 대립으로 치닫는 오늘날의 정치 상황은 좌우로 나뉘어 극한 대결을 하던 해방정국 풍경과 닮았습니다. 오늘의 '추천! 더중플'은 '신복룡의 해방정국 산책'(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25)입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가 인물 중심으로 해방 직후 한국 현대사를 인물 중심으로 들여다봅니다. 제 5부 ‘박헌영, 한 공산주의자의 사랑과 야망’편 제 1화를 무료로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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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5부〉박헌영, 한 공산주의자의 사랑과 야망
「 ① 박헌영, 이 가혹한 호적등본…생모는 첩, 직업 주막업 기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0650
② 남편 동지의 아이 가졌다…박헌영 아내의 ‘접촉사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2281
③ 스탈린은 박헌영 의심했다…모스크바 면접장서 생긴 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3860
④ '운명의 여인’ 현앨리스 재회…박헌영 죽음의 빌미 됐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5466
」
「 〈제5부〉박헌영, 한 공산주의자의 사랑과 야망 」
「 ① 가족이라는 굴레 」
인물사, 전기학 연구의 어려움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충격을 받은 책 가운데 하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역사학자인 리튼 스트래치(LyttonStrachey, 1880~1932) 교수가 쓴 『빅토리아 시대의 명사들』(Eminent Victorians, 1918)이다. 그는 서문에 느닷없이 “역사가의 첫 번째 미덕은 주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글을 시작하는 것이다(The first virtue of historian is ignorance)”라는 구절을 넣었다. 머리가 띵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한참을 생각한 끝에 역사가가 어느 글을 시작할 때는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그 주제를 다시 공부하라는 뜻임을 알았다.

역사학 가운데 인물사 또는 전기학은 그 주제의 연구보다 더 어려운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데, 첫째는 문중의 시비며, 둘째는 지역감정이며, 셋째는 종교적 호교론(護敎論)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거기에 이념의 굴레라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 위의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감정을 건드리면 바로 사자명예훼손죄(형법 308조)로 고소당할 수 있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문중이 제소하면 고소가 성립되며, 확정판결을 받으면 징역 2년을 살아야 하는데, 공소시효는 3년이다. 신분에 약한 교수가 이런 송사에 휘말리면 고생이 말이 아니다. 인물사를 공부하는 나는 이 죄에 걸려 너무 시달려 이제는 그런 주제를 비껴가고 싶다.
문중이나 지방색 또는 이념 논쟁 문제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처음부터 아예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쓰거나 어느 종교를 감싸고자 쓰는 교파 문제가 하나고, 다른 하나는 아예 처음부터 요절을 낼 각오로 쓰는 외삽법(外揷法)의 글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어디서 연구비라는 이름으로 몇 푼 받은 경우의 ‘역사업자들’이 쓴 글은 목불인견이다.
전기의 경우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 역사학에서는 이를 가리켜 “후손이 잘되면 붓으로 조상을 키운다”고 한다. 내가 13년 동안 한국독립유공자심사위원(장)을 지낸 경험을 되돌아보면, “오래 산 마지막 증언자나, 권력자 자식을 둔 사람이나, 부자의 목소리가 컸다”는 자조(自嘲)를 면할 수 없다. 그 역류를 비껴가는 것은 새로운 유공자를 발굴하기보다 어려웠다.

이번에 다루는 박헌영(朴憲永, 1900~56)의 경우는 위의 세 가지 경우와 조금 다르다. 그의 적이었든, 그의 숭모자였든 여기에는 생계형의 ‘꾼들’이 목을 매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역사의 좌우익은 불가피하게 나누어지기 마련이지만, 요즘처럼 이렇게 칼로 벤 듯이 갈라져 게거품을 무는 역사업자들도 드물다.
역사학이 소명으로서의 학문이던 시대는 이미 지났고, 이제는 기념사업회라는 이러저러한 돈줄에 목을 매다 보니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와 다르면 ‘토착 왜구’라거나 ‘뻘갱이’로 낙인을 찍을 경우에는 이미 논리나 양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싸움이 좌우로만 치닫는 것은 아니다. 일단 돈을 받은 뒤에는 내부적으로도 ‘숟갈 하나 더 놓기 싫어’ 다시 결승전을 치러야 하는 경우는 이제 다반사다. 지금의 동학(東學) 연구가 그렇다. 어느 지역이 발상지인지, 누가 주역인지, 기념관을 어디에 세워야 하는지, 어느 학자를 불러야 하는지의 문제는 이미 합리성이나 객관성을 떠나 ‘그곳’ 출신이며 전봉준(全琫準)과 한글 종씨인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시대에 배정된 돈을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로 머리가 터지게 싸우고 있다.
이념에 재단되는 박헌영 연구
박헌영을 한국 현대사의 주역으로 등장시킨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짓이며 용기가 필요하다.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박헌영기념사업회가 생기고 번듯하게 『박헌영전집』(2004)이 출판되면서 그에 대한 사시(斜視)가 많이 교정되었지만, 박헌영이라면 일단 ‘뻘갱이’ ‘남로당’ ‘조선정판사 사건’ ‘북한 부수상’ ‘한국전쟁’ 등의 키워드를 먼저 연상하도록 우리는 잘 길들어 있다. 그에 대한 호의적 글이나 연민은 강고한 비토 그룹으로부터 집요한 저항을 받는다.
그러나 박헌영에 대한 정직한 논의를 적대시하거나 미화한다면 한국 현대사를 재구성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며, 그러한 모험으로 쓴 것이 곧 『한국분단사연구: 1943~53』(2001)다. 나는 과분하게도 이 저술로 2001년도 한국정치학회 학술상을 받음으로써 해방정국의 좌파 연구에 고군분투한 심지연(沈之淵·경남대 명예교수)의 연구에 작은 도반(道伴)이 됐다. “인간 사회를 연구하는 모든 학도는 역사의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승자들의 주장에 회의를 품는 것이 지배적 신화에 사로잡히는 것을 막아 주는 본질적인 안전장치다”(Barrington Moore, 1967, 523쪽)라는 배링턴 무어의 명제가 이 장의 핵심어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곧 역사학에서 호오(好惡)가 나뉜 인물이나 선악이 갈리는 사건에 관한 연구는 “양쪽 이야기를 모두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 정치전기학에 대한 나의 지론이다. 일본 자료만으로 청일전쟁을 쓴 저술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일본 육군성의 교본이지 역사가 아니다. 작고한 문희수(文熙洙·서원대 교수)는 영·독·불·중·일·러·한국 7개 국어를 구사하면서 청일전쟁을 썼으나 탈고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과거 100년, 향후 100년 안에는 7개 국어로 청일전쟁을 쓸 학자가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의 역사가들이 얼마나 편하게 먹고사는가?

박헌영 호적등본에 기록된 아픔
2000년 7월, 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나는 집필하던 『한국분단사연구: 1943~53』의 마지막 보완작업을 하다가 문득 충남 예산군 신양면(新陽面)으로 답사를 떠났다. 그곳은 박헌영의 고향으로, 뭔가 부족한 듯한 원고의 마지막 작업에 대한 영감을 얻고 싶어서였다.
머리에는 토인비(Arnold Toynbee)의 충고가 맴돌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의 역사학은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이 책을 통해 얻은 것보다 더 많다. 그리스 역사의 기술은 더욱 그러했다. 역사학자는 현장을 가보아야 한다. 그곳에서 그는 책에서 알지 못한 영감을 얻을 것이다”(『대화』, 1972, 293~298쪽)였다. 이 충고는 나의 역사 연구의 중요한 등대였다. “당신은 그곳에 가 보았는가?”라는 헤로도토스(Herodotus)의 경구도 나의 등을 밀었다.
폭염 속의 신양면 옛 장터는 고즈넉했다. 동네 이름처럼 햇살이 맑았다. 나는 먼저 신양면사무소에 들러 박헌영의 제적등본을 신청했다. 개인정보 보호가 없던 시절이라 면서기는 쉽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박헌영의 제적등본을 받아들고 망연자실했다. 어머니 이학규(李學圭)의 직업은 ‘주막업(酒幕業)’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와 호주인 남편 박현주(朴鉉柱)의 관계는 ‘첩(妾)’으로, 박헌영과 아버지인 호주의 관계는 ‘서자(庶子)’로 돼 있었다.
나는 이렇게 가혹한 호적등본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나는 혹시 ‘주막업’ 등 세 글씨가 훗날 그를 험담하려고 우익들이 적어 넣은 것이 아닌지 의심했지만, 필적이 본문과 같은 것으로 보아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직업을 호적등본에 기록하는 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었다.

1922년에 조선호적령이 내렸으니까, 박헌영이 22세 때부터는 이 등본을 들고 다녔을 터인데 그때 그 감수성 많은 청년 수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니 이념의 여부를 떠나 나는 연민과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면사무소를 나와 후손을 찾으니 삼종손 박대희(朴大熙)씨를 소개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77세인 그는 처연한 심정으로 박헌영의 소년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첫 아내 주세죽(朱世竹)과의 행복했던 시절 사진을 보여주었다.
박헌영은 1900년에 충남 예산군 광시면(光時面) 서초정리(瑞草井里)에서 아버지 영해(寧海) 박씨 현주(1867~1934)와 어머니 신평(新平) 이씨 학규(1867~?) 사이에서 출생했다. 제적등본에 따르면, 박현주에게는 이미 배다른 맏아들 지영(芝永, 1891년생)이 있었고, 박헌영의 뒤로 두 딸(1905년생, 1912년생)이 있었다. 이미 맏아들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자식을 얻고자 소실을 맞이한 씨받이인 것 같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쌀가게를 경영하면서 약간의 농지를 소유한 중상의 재산가로 궁핍하지는 않았다.
박헌영은 훗날 자신이 “봉건 양반 가정에서 출생했다”고 말한 바 있지만, 이는 아마 열등감의 표현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신의주(新義州) 지방법원 검사국이 작성한 ‘박헌영의 피의자 신문 조서’(1925. 12. 12.)에는 “나에게는 부모님, 형님 내외분, 그리고 나와 아내, 이렇게 여섯 가족이 있고, 재산은 나에게 없으나 아버님께 약 1만엔의 재산(동산·부동산)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쌀값을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그때 1엔은 지금의 구매력으로 1만3890원 정도였으니까(『조선총독부 통계연보』, 1926) 지금의 구매력으로 1억4000만원 정도의 자산이 된다. 그 정도면 넉넉한 집안이었다.
■ 📝‘신복룡의 해방정국 산책’ 목차
「 〈제 1부〉 이승만과 김구의 만남과 헤어짐
① 여인과의 만남은 박복했다…출신 다른 이승만·김구 공통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6303
② 레닌 금괴가 임정 갈랐다…이승만-김구 ‘결별’ 세 장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7987
③ 좌우 대립의 ‘불편한 진실’…右는 우익, 左는 좌익 죽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9731
④ 가슴 따른 자, 머리 못 이긴다…김구와 이승만 ‘정해진 운명’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2924
〈제 2부〉 여운형과 김규식의 만남과 헤어짐
① 임정과 밀정, 그리고 여운형…김구 측근은 권총 빼들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4524
② “대물 여운형” 점찍은 美군정, 병약남 김규식에 눈 돌렸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6200
③ 미국은 양다리를 못 참았다, 중도파 고집한 여운형 최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7586
④ ‘좌우합작’ 허구의 희생자들…중도파, 비극적 해프닝 맞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8952
〈제 3부〉 송진우와 장덕수, 중도파의 비극적 운명
① 송진우의 ‘찬탁론’ 와전됐다, 기어이 총을 쏜 광기의 시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0770
② 누가 장덕수를 암살했나…이승만·김구 그때 갈라섰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2422
〈제 4부〉남북협상이라는 신기루
① 평양서 김구 맞이한 첫사랑…김일성에 철저히 이용당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4116
② 아버지는 자결, 조부는 친일…北 택한 홍명희 ‘기구한 3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5569
③ 홍명희는 아들과 맞담배했다, 부자간 치열했던 ‘이념 논쟁’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7215
④ 北이 꾸민 가장 기만적 모임…‘남북협상’ 비극으로 끝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8833
〈제 5부〉박헌영, 한 공산주의자의 사랑과 야망
① 박헌영, 이 가혹한 호적등본…생모는 첩, 직업 주막업 기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0650
② 남편 동지의 아이 가졌다…박헌영 아내의 ‘접촉사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2281
③ 스탈린은 박헌영 의심했다…모스크바 면접장서 생긴 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3860
④ '운명의 여인’ 현앨리스 재회…박헌영 죽음의 빌미 됐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5466
〈제 6부〉해방정국의 3대 비극
①항쟁이냐 공산폭동이냐…1946년 '대구 사건'의 진실(상)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7163
더중앙플러스에서 ‘신복룡의 해방정국 산책’ 연재 중입니다.
」
[참고문헌]
Evans, Ernestine, “Looking East from Moscow,” Asia, Vol. 22, No. 12, 1922.
Moore, Barrington, The Social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Boston : Beacon Press, 1967)
Strachey, Lytton, Eminent Victorians(New York : The Modern Libray, 1918)
Toynbee, Arnold J., Surviving the Future(London : Oxford University Press, 1971; 홍사중(옮김), 『대화』(삼성문화재단, 1974)
박갑동, 『박헌영』(인간사, 1988)
박헌영 제적등본
심지연, 『조선혁명론 연구』(실천문학사, 1987)
『이정 박헌영 전집』(역사비평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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