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약정 위반’ 롯데케미칼, 인수금융 만기 등 자금조달 과제 산적
재무비율 추락‥금융 대주단과 약속 지키지 못해
차입금 만기 이어지는데 조달 여건 나빠질 듯
롯데케미칼이 실적·재무 상황 악화로 금융회사들과 맺은 재무 약정을 위반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도 하향 가능성과 더불어 향후 자금 확보에 부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 가운데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옛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면서 빌린 인수금융을 차환해야 하는 등 자금조달 과제는 산적해 있다.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과거 은행과 증권사 등으로부터 자금을 빌리면서 일정 재무비율 유지하기로 약속한 재무약정을 지키지 못했다. 과거 일본계 미즈호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리면서 연결 기준으로 ‘순금융부채/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4배 이하로, ‘EBITDA/이자비용’을 5배 이상 유지하기로 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옛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자금을 빌리면서도 대주단과 같은 비율을 지키기로 재무약정을 맺은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공시한 상반기 재무제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약속한 재무비율을 지키지 못했다. 롯데케미칼은 2020년까지 막대한 현금창출력을 기반으로 차입금보다 현금이 많은 순(純)현금 상태를 이어왔다. 장기간 자본을 축적한 덕에 수년간의 실적 악화와 투자 확대로 차입금이 빠르게 늘어났는데도 여전히 부채비율이 100%를 밑돈다. 하지만 실적 악화로 EBITDA가 급감하고 이자 비용이 늘면서 ‘EBITDA/이자비용’은 5배 밑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들은 재무약정 위반에도 불구하고 상환 요청이나 담보권 제한 등의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 롯데케미칼에 가장 많은 자금을 빌려준 것으로 알려진 일본계 미즈호은행은 롯데케미칼에 웨이버(WAIVER, 계약유지 약정서)를 줬다. 롯데에너지 인수금융 재무약정은 이번 반기 기준으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적시돼 있다.
금융회사 관계자는 "재무약정이 걸려 있는 일부 차입금에 대해 즉시 상환 요청 등의 제재를 가하면 기존 대출이 모두 부실화될 수 있다"면서 "수조원의 자금을 빌려준 금융회사 입장에서 해당 대기업과의 영업 관계와 전체 대출의 안정적인 상환을 위해서라도 웨이버를 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무약정을 지키지 못한 것만으로도 향후 자금 조달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롯데케미칼은 웨이버를 받았지만 3000억원의 대출을 장기 차입금이 아닌 단기 내에 상환해야 할 유동성 차입금으로 분류했다. 약정을 지키지 못해 대출을 만기까지 12개월 이상 연장할 수 있는 권리(기한이익)를 상실했다는 설명이다. 회계기준에 따라 약정 위반 차입금은 유동성 차입금으로 분류해야 한다.
신용등급 불확실성도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상반기에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AA0)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올해 상반기에 누적 적자를 기록하면서 신용등급이 AA-로 떨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자금조달 필요성은 커졌다. 1분기 말 4조5000억원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차입금이 1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차입금과 장기유동성부채(1년 이내 상환해야 하는 장기차입금)이 5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투자를 줄인다 하더라도 꼭 필요한 경상적인 투자와 운영자금을 고려하면 외부 자금 조달이 불가피하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금융 7000억원의 내년 3월 만기에도 대응해야 한다. 현재 증권사들과 기업어음(CP), 회사채, 주가수익스와프(PRS) 등의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롯데카드와 구매약정 신용카드 약정을 맺어 300억~400억원 규모의 운영자금을 확보하기도 했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은 현금 보유량이 많고 부채비율도 아직 높지 않아서 자금 확보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재무약정 위반이나 신용도 악화, 업황 악화 등의 부정적인 요인이 겹치면서 투자자들이 보수적인 스탠스(입장)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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