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잭슨홀 미팅’에서는 무엇이 논의될까?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이달 22일부터 양일 동안 미국 와이오밍주에 속한 작은 휴양도시에 열릴 ‘2024 잭슨홀 미팅’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물가가 완전히 잡히지 않은 여건에서 정치적 압력 등으로 각국 중앙은행이 피봇(pivot)을 추진하는 전환기에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 잭슨홀 미팅 결과에 따라 각국 통화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적인 주제는 “통화정책의 실효성과 전달경로 재평가”다. 종전의 이론이 잘 맞지 않고 미래 예측까지 어려워짐에 따라 통화정책의 효과가 크게 떨어진 점을 고려해 그 원인을 짚어보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참석자 간에 격의 없는 토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참가자 면면을 보면 케인즈언과 통화론자가 유난히 많이 참석해 토론 결과가 주목된다.
1913년 당시 각주 별로 최대 현안인 물가를 잡기 위해 Fed가 설립됐다. 초기에는 ‘비밀의 사원’이라 불릴 정도로 철저하게 비공개 원칙을 유지했다. 물가 안정 목표를 도달하기 위한 양대 수단인 ‘통화량 조절’과 ‘기준금리 변경’ 중 전자를 주수단으로 삼았던 1980년대 초까지 이 원칙이 지켜졌다.
비밀의 사원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2차 오일쇼크로 미국 경제에 들이닥친 스테그플레이션 이후부터다. 경기침체하에 물가가 오르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아 직전까지 통화정책의 주수단은 통화량 조절방식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 고민 끝에 당시 폴 볼커 Fed 의장은 기준금리 변경방식을 다시 채택했다.
문제는 경기순환 진폭이 커지고 주가가 짧아지는 ‘순응성(procyclicality)’과 ‘단축화(shortening)’ 현상이 심화되는데 기준금리 변경방식이 효과를 보기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통화정책의 시차가 길 때는 기준금리를 변경할 때와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에 경제 상황이 달라 Fed가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선제성(preemptive)이 통화표준(monetary standard)의 생명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통화표준이란 로버트 헤철 전 리치몬드 연방준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주장해 통화정책의 틀(frame)이자 체제(regime)로 기준금리 변경과 같은 통화정책은 일정기간 지속돼야 효과를 볼 수 있어 선제성을 중시한다.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표적경로상 최종 목표인 물가 안정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중간에 확인해 보고 싶은 표적변수(proxy)가 필요했다. 중간표적변수는 그 특성상 기준금리와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최종 목표와의 연계성이 높아야 한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중간표적변수를 설정해 운용하면 최종 목표 달성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양대 조건을 갖춘 중간표적변수를 찾기가 더 어렵다는 점이다. 비밀의 사원을 열어 Fed의 의도대로 시장을 끌고 나가 시차를 줄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94년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 발표를 필두로 2000년에는 경제진단과 전망, 2003년에는 통화정책 지침이 추가됐다. 바톤을 받은 밴 버냉키 의장은 2011년에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FOMC 회의 직후 발표되는 선언문과 30분 후에 갖는 Fed 의장 기자회견 간의 일관성이다. 최근처럼 디지털이 진전되는 통화정책 여건에서는 FOMC 선언문과 Fed 의장의 기자회견과 일치되지 않을 때는 확정 혹은 부정적 편향을 낳아 시장에 혼선을 초래한다.
작년 12월 FOMC 선언문과 파월 Fed 의장의 기자회견으로 이 문제의 중요성을 살펴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선언문에 포함된 점도표상으로는 올해 세 차례 금리인하가 예상됐다. 하지만 파월의 기자회견은 선언문보다 더 강한 피봇 시사로 최대 여섯 차례까지 금리인하 신호를 줬다. 직전 선언문은 무력화되고 시장은 혼선이 나타났다.
파월 이전에 버냉키와 재닛 옐런 의장이 이 점을 중시해 기자회견 내용을 FOMC 선언문의 내용을 재확인하는 선에 그쳤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달랐다. 기자회견 뉘앙스가 FOMC 선언문과 다른 것을 넘어 각종 포럼과 의회 증언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Fed 인사들도 가세했다.
Fed 의장과 인사들이 수시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과정에서 통화표준의 생명인 선제성 유지가 어렵게 되자 2021년 9월 평균물가목표제 도입 계기로 ’후행적(reactive)‘으로 바뀌었다. 통화표준상 선제성을 잃어 통화정책의 주도력을 잡지 못한다면 ’세계중앙은행’과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서 Fed와 Fed 의장의 위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파월의 혼돈(Powell’s chaos)’. 최후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할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오히려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을 더 혼란스럽게 한다는 데서 비롯된 신조어다. 남라타 너레인과 쿠날 상가니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파월의 기자회견으로 S&P 지수가 상하로 1%, 금액으로는 390조원 이상의 주가 변동이 초래된다고 추정했다.
금리 변경이 적절한 시기에 했더라도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간 관계가 일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4년 이후처럼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시장금리가 떨어지는 ‘그린스펀 수수께끼’, 코로나 사태 이후처럼 기준금리를 올리면 시장금리가 더 올라가는 ‘파월 수수께끼’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케인즈언의 통화정책 전달경로(transtion mechanism·기준금리 혹은 통화공급 변경→시장금리 등락→총수요 가감→금리·고용·경기 조절)가 잘 작동되지 않는 것도 금리 변경 효과를 반감시킨다. 기준금리 변경에 따라 시장금리가 의도한 방향으로 조절됐다 하더라도 민간소비와 기업의 설비투자 등 총수요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함에 따라 정치적 압력이 거세지고 Fed의 폐지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열릴 2024 잭슨홀 미팅에서는 기준금리 변경 방식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해 전달경로 상 몇 가지 중요한 사안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화정책 전도경로의 첫 단추인 현재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FFR)를 ‘익일 환매 금리(ON RRP)’로 대체하는 방안이다. ON RRP는 기준금리로 갖춰야 할 기능이 FFR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대체 방안과 함께 피봇의 필요성이 나온 지 2년이 넘었는데도 연기되고 있는 금리인하에 대한 평가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론적으로 통화당국이 기준금리를 어떻게 조정해 왔으며 그것이 과연 적절했는가를 사후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방법 중이 하나가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이다.
산출공식은 우선 실질 균형금리에 평가기간 중 인플레이션율을 더한다. 여기에 평가기간중 인플레이션율에서 목표 인플레이션율을 뺀 수치에 정책반응 계수(물가 및 성장에 대한 통화당국의 정책의지를 나타내는 계량수치)를 곱한다. 그리고 평가기간 중 경제성장률에 잠재성장률을 뺀 값에 정책반응 계수를 곱한 후 모두 더해 산출한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테일러 준칙에 의해 도출된 적정수준보다 높아 2022년 3월 이후 Fed의 금리인상이 얼마나 급하게 단행했던가를 입증해 주고 있다. 2021년 5월 이후 인플레이션이 불거질 당시 ‘일시적’이라 오판하고 평균물가목표제로 안이하게 관리해온 Fed가 뒤늦게 ‘볼커 모멤텀’으로 대처해온 결과다.
<그림 1> Fed의 금리인상 속도 비교 주 : t는 첫 금리인상 시점, t+10은 첫 금리인상 이후 10개월이 지난 시점
볼커 모멘텀식 대응은 장단기 금리 간 역전현상을 불러온다. 말이 뛰는 식의 금리인상으로 통화정책에 민감한 단기금리가 빠르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2년물과 10년물 국채금리 간 역전 현상이 2년이 넘도록 장기화되면서 이제는 굳어지는 상황이다. 작년 하반기에는 100bp((1bp=0.01%포인트) 이상으로 40년 만에 최대 폭으로 벌어진 적도 있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2분기 연속 성장률 추이로 경기를 판단한다. 하지만 ‘선제성’를 중시하는 미국 중앙은행(Fed) 입장에서는 NBER식으로 지나간 성장률 추이로 경기를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유효성 문제가 있긴 하지만 Fed가 경기를 판단하고 예측하는 기법으로 ‘수익률 곡선 스프레드’를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60년 이후 15차례 걸쳐 장단기 금리 간 역전, 즉 단고장저 현상이 발생했고 대부분 경기침체가 수반됐다. 워런 버핏 등과 같은 투자의 구루가 뉴욕 연방은행이 매월 확률 모델을 이용해 발표되는 장단기 금리 차의 경기 예측력을 각종 투자판단 때 가장 많이 활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장단기 금리 간 역전 현상에 대해 Fed는 경기침체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다. 오히려 인플레를 잡기 위해 경기가 희생되더라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볼커 모멘텀식 대응해 왔다. 올해 잭슨홀 미팅에서 피봇 지연에 대해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 것인지, 9월 이후 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 2> 미국 2년물과 10년물 금리차 추이
2년 전부터 잭슨홀 미팅의 단골과제가 된 중립금리에 대한 검토도 올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볼커 모멘텀식 대응의 가장 큰 부작용은 ‘r스타(r*)’ 금리가 ‘r스타스타(r**) 금리’보다 높아진 점이다. r* 금리는 실물경기를 침체시키거나 과열시키지 않는 중립금리다. 반면 r** 금리는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또 하나의 중립금리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지면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져 스트레스 지수(SI)가 올라가고 위기가 발생한다.
코로나발 인플레이션이 불거질 직전까지 20년 이상 저물가가 지속돼는 여건에서 r* 금리와 R** 금리 간의 괴리는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3월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실물경기 섹터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단기간에 급하게 올리는 과정에서 r* 금리가 높아졌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한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얼마나 높아졌는가에 대해서는 추정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다. 분명한 것은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만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더 올리면 두 금리 간의 격차가 벌어져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지금 수준보다 더 떨어진다. Fed가 피봇을 지연시킴에 따라 상업용 부동산 침체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의 추가 금리인상으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져 세수가 부족할 경우 재정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도 통화정책 이상으로 중요하다. 만약 세금 인상과 공공서비스 지출삭감 등을 통한 긴축으로 대응할 경우 도심일수록 죽임의 도시로 내모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잭슨홀 미팅에서는 감세와 공공서비스 지출을 늘리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간단한 래퍼 곡선을 통해 살펴보면 대도시처럼 세율과 재정수입 간에 역비례 관계인 비표준지대에 놓여있는 여건에서는 세율을 낮추는 것이 경제 의욕과 도시 매력을 높여 상업용 부동산 가격하락을 막고 세수도 늘어나게 된다.
최근처럼 작년 3월 이후 각국의 금리인상으로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진 상황에서는 인플레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통제권에 들어오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경기부양’ 쪽으로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인플레 목표치를 높이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림 3> 미국 노동생산성과 중립금리
미국 경기침체 논쟁의 발단이 된 ‘삼의 법칙(Sahm‘s rule)’에 대한 논쟁도 이워질 것으로 예상돤다. 삼의 법칙이란 최근 3개월 실업률 평균치가 지난 1년간 최저 실업률을 0.5%포인트 이상 높으면 경기가 침체한다는 실증적인 이론이다. 1970년 이후 실업률이 이 법칙에 걸리면 한 차례을 제외하고는 미국 경기가 침체국면에 빠졌다.
<그림 4> 삼의 법칙과 미국 경기 주 : 음영부문은 경기침체 구간임
지난 7월 실업률이 당초 예상보다 높은 4.3%로 ‘삼의 법칙(Sahm‘s rule)에 부합된 것으로 나오자 미국 경기침체 우려가 급부상했다. 현재는 0.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실업률은 비자발적 실업자 수를 경제활동인구로 나눠 산출한다. 비자발적 실업자란 일 하고자 할 의향이 있으나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 노동시장 참가자를 뜻한다.
지난 5월 이후 실업률이 4% 이상 상승한 것은 해당 기간 중 집중적으로 발생한 자연재해 등으로 노동시장에 참가한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보다 일시적인 병목(bottle neck)과 불일치(mismatch)의 결과다. 7월 실업률 이후 발표된 주간실업청구건수는 2주 연속 큰 폭으로 감소돼 노동시장 수급 여건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과연 2024 잭슨홀 미팅에서 삼의 법칙에 대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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