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권 미흡 '실명공개' 압박 금감원…3분기 바로 적용

차민영 2024. 8. 19. 06: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금감원, 운용업계 3분기 업무보고서 토대로
'주주권익 침해 사례' 선정…운용사별 점검
허울뿐인 '스튜어드십 코드'…실효성 커질까

금융감독원이 '거수기'로 전락한 국내 운용업계의 의결권 행사에 '실명 공개' 카드로 압박에 나섰다. 자산운용사들이 당국에 10~11월 제출하는 3분기 업무보고서를 토대로 주주 권익 침해 사례를 선정한다. 이를 중심으로 회사별 의결권 행사 과정을 집중적으로 점검해 낙제점인 회사 실명을 공개할 계획이다. 자산운용업계에선 능동적인 의결권 행사가 가능해질 것이란 기대감과 함께 '1호' 낙인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내비쳤다.

특단 조치 '공개적 망신 주기'까지 등장

19일 정부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3분기 업무보고서부터 주주 권익 침해 사례를 중심으로 자산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 여부를 들여다본다. '네임앤드셰임'(Name&Shame·공개적 망신주기) 전략'에 따라 문제 소지가 있는 자산운용사 실명도 최초로 공개한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운용사들은 매 분기 업무보고서를 해당 분기 종료 후 45일 이내에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실명 공개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금감원 공식 홈페이지 게재나 보도자료 배포 방식 등이 유력해 보인다.

금감원이 의결권 행사 대상 안건을 선정하는 기준은 명백하게 주주 권익이 침해됐다고 당국이 판단한 사례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전에 일괄적인 기준으로 사례를 선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며 "당국에서 볼 때 기업이 소액주주 등의 권익을 명백하게 침해한다고 판단되는 사례를 사후적으로 판단할 듯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선 당국의 직접 판단 자체가 논란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신력 있는 외부 지배구조 전문기관에 이를 위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국 역시 실명 공개에 따른 자산운용업계의 부담을 인지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작년 태스크포스(TF) 운영을 통해 마련된 가이드라인이 운용사 내부 지침에 잘 반영돼 있고, 이를 토대로 의결권을 지침에 맞게 행사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이에 맞지 않게 (의결권을) 행사했을 경우 운용사로부터 설명을 듣고자 한다"고 말했다.

국내 자산운용사가 형식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문제의식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실제로 금감원이 274개 자산운용사의 올해 1분기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내역 공시를 점검한 결과 265개사(96.7%)는 의결권 행사·불행사 사유에 대한 구체적 판단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A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이를 관리하지 않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곳이 '모난 돌' 취급을 받았다"면서 "2017년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지침)가 도입된 후 상황이 조금 나아졌지만, 자율 규범이다 보니 외부 민원에 운용사들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두산 지배구조 개편 이슈 맞물려

다만 시장 일각에선 시기가 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3일 임원 회의에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서는 기관투자가들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원칙) 이행이 중요하다"며 "외부요인으로 펀드의 독립적인 의결권 행사가 저해받지 않고 실질적으로 의결권 행사가 이뤄질 수 있는 개선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금감원은 두산로보틱스가 제출한 합병 관련 증권신고서가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정정신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두산 측은 지난 6일 신고서 내용을 다시 수정해 제출한 상태다. 하지만 이 원장은 최근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두산 측이 제출한 합병 관련 증권신고서 내용이 미흡할 경우 이를 계속 반려하겠다는 입장을 표했다.

금감원이 괘씸하게 여기는 부분은 합병비율이다. 현재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 산하에 있는 두산밥캣을 인적분할해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와 안정적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의 기업가치를 거의 1대1로 동일하게 평가했다. 다만 현행 자본시장법상 회사를 합병할 때 두 회사의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게 돼 있어 두산이 합병비율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없다.

작년 금융당국은 계열사, 비계열사 합병비율 규제 완화를 검토한 결과 비계열사에 한정해 합병 비율을 자유롭게 산정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계열사의 경우 기업가치 산정 과정에서 회계법인의 평가방식에 대한 신뢰 제고가 먼저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현행 제도가 존속하게 됐다. 사실상 금감원이 두산 그룹의 구조개편에 대해 제동을 걸 법적 근거가 없자 투자 주체인 자산운용사들을 압박하기 위해 실명 공개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금투업계 '1호' 안된다 불안감 속 기대 상존

금감원의 실명 공개 강수에 금융투자업계서는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백재욱 대신경제연구소 대표는 "기업 입장에선 합병비율을 정할 때 법적 규정을 준수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주주 입장에선 두산이 주주를 위한 최선의 의사결정을 한 것이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며 "또 자산운용사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촉구하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주주 입장에선 의결권 행사는 기관이 각자 알아서 판단하는 영역이므로 금융당국에서 이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돼선 안다고 본다"고 짚었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의결권 행사를 제대로 하라는 당국의 정책 취지에 공감한다"며 "운용업계에서는 의결권 행사에 큰 부담을 느끼는데 당국서 지적한 주주 권익 침해 사례들이 계속 쌓일 경우 회사들도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인센티브 중심의 제도 운영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B자산운용사 대표는 "일본의 공적연금(GPIF)처럼 외부위탁 운용자산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하는 구조가 있어야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률도 높아질 것"이라며 "규제를 통한 방식보다는 인센티브 중심의 능동적 참여가 더 중요할 듯하다"고 짚었다. 김민국 대표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인센티브 중심의 유인 구조를 만들어 준다면 하지 말라 해도 다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네임앤드셰임 전략이지만 부정적 의미의 '셰임(창피주기)'만 할 게 아니라 칭찬도 해주고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을 잘한 운용사에 가점을 주는 접근이 필요할 듯하다"고 전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