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손대면 ‘톡’…나를 만지지 마세요
줄기차게 쏟아지던 장맛비도 그치고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왔죠. 이렇게 더운 날엔 조금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하루 종일 선풍기와 에어컨을 틀어놓고 실내에서만 머물게 되는데요. 너무 많이 사용하는 에너지도 문제거니와 건강에도 안 좋으니 중간중간 한 번쯤은 집 밖에 나가 동네 산책이라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엔 드물어졌지만 옛날 마을엔 집집마다 심었었던 식물이 있어요.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서 반대로 무관심하게 지나칠 수도 있는, 봉선화가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어릴 적 장독대에 붉은색 혹은 자주색이나 흰색으로 피어있던 봉선화 꽃과 잎을 채취해서 백반과 함께 찧어서 손톱에 올려 물들이던 추억이 있어요.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 끝에 붉게 봉선화 꽃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도 기억이 납니다. 봉선화는 봉숭아·봉송아·봉숭화라고도 부르는데요. 표준어로는 봉숭아와 봉선화만 채택이 되어 있죠.
봉선화라는 이름은 줄기와 가지 사이에서 꽃이 피며 우뚝 일어선 모습이 봉황을 닮았다 해서 지어졌다고 해요. 1621년 중국 명나라에서 펴낸 ‘군방보(郡芳譜)’에 "머리와 날개 꼬리와 발이 우뚝 서 있어서 펄떡이는 봉황새의 형상과 같다 하여 봉선화라고 한다"라고 나와 있다고 합니다. 꽃잎을 자세히 보면 새 같기도 하고, 펼쳐보면 투구 같기도 한데, 꽤 화려한 모양이에요. 제비꽃처럼 꿀을 뒤쪽으로 넣어두어서 머리를 땋은 것처럼 뒤쪽으로 가늘고 기다랗게 돌출된 ‘거’가 발달해 있는 것도 특이하죠. 봉선화 속에 속하는 ‘물봉선’의 경우에는 거가 꼬아져 말린 모양이라 더욱 신기합니다.
봉숭아 잎을 자세히 보면 조금 특이한 부분이 눈에 띄죠. 전체적으로 작은 톱니가 있는데 줄기에 붙어있던 부분부터 약 3~4㎝ 정도는 톱니 대신 그냥 돌기 같은 게 나 있거든요. 거기에 개미가 많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밀선(蜜腺)이라고 하는 부분인데요. 이름에 꿀 밀자가 들어있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 개미들은 밀선에서 나오는 꿀을 먹으러 오는 거예요.
그렇다면 봉선화는 왜 꽃도 아니고 잎에 개미를 부를까요? 개미를 불러 잎을 먹으려는 애벌레를 막으려는 전략입니다. 자신의 적을 다른 적으로 막아내는 차원 높은 방법이죠. 봉숭아 외에도 벚나무나 복사나무, 은사시나무 등 밀선을 만들어낸 잎들은 꽤 찾아볼 수 있습니다.
봉숭아는 우리나라 전국 어디에서나 잘 자라고 흔히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특히 장독대에 많이 심었는데요. 개미 덕분인지 청결과 안전을 우선시해야 하는 장독대에 두꺼비나 뱀이 잘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외에 봉숭아꽃이 주로 붉은빛을 띠기 때문에 중요한 장소에 나쁜 기운이 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이유도 있죠. 꽃을 따다 손톱 끝을 붉게 물들이는 것도 단순히 아름다움 말고도 건강하고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봉숭아의 학명은 ‘Impatiens balsamina L.’ 인데요. 영어 이름은 가든발삼(garden balsam)이라고도 하고, 터치미낫츠(touch-me-nots)라고도 합니다. 라틴어 ‘impatient’는 참지 못한다는 뜻이고, 영어 이름 또한 날 만지지 마세요 정도의 뜻인데요. 열매를 만지면 터지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그래서 꽃말도 ‘나를 만지지 마세요’라고 하죠. 하지만 잘 익은 열매가 터지면서 씨앗이 멀리 이동하는 것이니 오히려 봉선화 입장에서는 누군가 만져주는 게 좋겠지요. 스스로 번식한다고는 하지만 멀리 가지는 못합니다. 빗물의 도움으로 좀 더 멀리 가거나 사람의 도움으로 가꿔져서 번식하기도 하죠.
이 세상에 어떤 생명이 다른 존재의 도움 없이 살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겨우 몇 미터밖에 못 가지만 한 해 두 해 그렇게 조금씩 가다 보면 언젠가는 수백 미터, 그 이상도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무더위로 세웠던 계획들을 실천하기 어려운 시기입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조금씩 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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