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기업이 돈도 잘 번다…ESG 우등생 '공시 감별법'
수백쪽 ESG 공시 ‘핵심 포인트’
■ 경제+
「 45.21%. 2015년 10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등급이 우수한(AA·A) 코스피 상장기업의 누적 주가수익률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을 11%포인트 넘게 앞질렀다. 1억원을 코스피 상장사에 고루 투자했다면 약 8년 동안 3415만원을 벌 수 있었는데, ESG 등급이 우수한 기업에 투자했다면 그보다 1100만원을 더 벌 수 있었다는 의미다. ESG가 연기금·기관투자가 등 ‘큰손’ 투자자의 핵심 참고 지표로 부상하면서 정부도 ESG 공시를 강화했다. 이제는 ESG 우등생을 찾아내는 게 주식 투자의 기본 방정식이 된 걸까. ESG 우등생 감별법을 알아봤다.
」
ESG 우량칩 9년 수익률 코스피보다 11%P 앞서
기업의 ESG 성과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형태로 매년 6~8월 한국거래소 ESG 포털이나 각사 홈페이지에 공시된다. 현재는 자율공시로 운영하지만, 내년엔 의무공시 시점의 윤곽이 나올 전망이다. 한국회계기준원은 의무공시 시행에 대비해 지난 4월 말 공시 기준 초안을 발표했고, 연내 최종 기준을 확정할 계획이다.
기업은 당장 공시 부담을 호소한다. ESG뿐 아니라 지배구조·밸류업 등 새롭게 등장한 공시가 계속 늘어서다. 반대로 투자자 입장에선 이득이다. 기업이 외부에 알려야 할 게 많아진다는 건 투자자가 참고할 정보가 늘어난다는 걸 의미한다.
공시가 늘어도 이용할 줄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중앙일보 머니랩은 개인투자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신생 공시 대해부’에 나섰다. 여기선 ESG 공시를 집중 해부해본다. ESG 등급 평가기관 서스틴베스트의 방법론을 중심으로 우량기업과 비우량기업의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지 살폈다. 투자자가 ESG 공시에서 무엇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도 정리했다. 단타만 칠 생각이 아니라면 ESG를 고려한 투자는 장기 주가 수익률에 긍정적 결과를 안겨줄 것으로 본다.
ESG 등급은 AA(탁월)·A(매우 우수)·BB(우수)·B(양호)·C(보통)·D(취약)·E(매우 취약) 등 총 7가지로 나뉜다. 지난해에는 총 1270곳의 상장·비상장 기업이 서스틴베스트로부터 ESG 평가를 받았고, 이 중 416곳(32.8%)이 AA·A 등급을 받았다. 서스틴베스트는 한국ESG기준원·한국ESG연구소와 함께 국내 3대 ESG 평가기관으로 꼽힌다.
기업이 평가받는 ESG 세부 항목은 총 111개(환경 36개, 사회 34개, 지배구조 41개)에 달한다. 또 개별 업종과 영위 사업에 따라 더 중요하게 평가받는 항목도 다르다. 예를 들어 자동차·자본재·에너지·소재 등 전통적인 굴뚝산업은 환경 분야 평가 가중치가 25%에 달하지만 탄소 배출량이 적은 미디어·엔터테인먼트·은행 등은 10%에 불과하다.
시험에서 국영수처럼 모든 기업에 중요한 항목도 있다. 먼저 환경 분야에선 기존 제품을 친환경 제품으로 개선하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식음료 기업이 플라스틱 용기 대신 종이 소재 용기를 만들어 제품을 판매하거나, 자동차 기업이 친환경 엔진을 장착한 차를 내놓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일종의 ‘환경 분식(粉飾)’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린워싱(Greenwashing·친환경적인 것처럼 위장하는 기업행동) 사례가 나타나는 것도 주로 이런 항목이다. 이 밖에 친환경 연구개발(R&D), 온실가스·폐기물 배출 저감 성과, 환경 사고 예방과 대응, 에너지 절감 성과 등도 가중치가 높은 항목이다.
사회 분야에선 상생 취지에서 협력사 대상 사회적 기준 수립 여부, 노사 문화 우수 기업, 평균 근속연수, 고객 정보보호 전담 조직 구축, 여성 직원 수 비율 등이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꼽힌다. 잦은 노사 분규가 손익에 미치는 영향이 큰 자동차·자동차부품, 항공·운송 업종 등은 원만한 노사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높은 가중치를 둔다.
지배구조 측면에선 매출액 대비 특수관계인 매출액이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다. 본래 실력보다는 관계사 등 특수관계인에 밀어내기식으로 얻은 매출이 많을수록 지배구조가 취약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사 보수 변동의 적정성, 과소배당 여부, 주주총회 공시 시기, 이사회의 사외이사 구성 현황 등도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
ESG 등급·가중치가 핵심…‘착한 척’ 그린워싱 주의를
ESG 등급이 AA인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찾아보면 이런 항목에서 돋보이는 실적을 공시한다. SK텔레콤(AA)의 경우, 지난해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114만9240t(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기존 목표치(122만7222t)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더 줄였다. 신한지주(AA)도 ESG 우등생이다. 이 회사는 10년 연속 DJSI월드지수에 편입했다.
반대로 가중치가 높은 ESG 평가 항목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 낮은 등급을 피할 수 없다. E(매우 취약)나 D(취약) 등급을 받은 기업 중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자체를 공시하지 않은 곳도 수두룩하다. ESG 등급이 저조한 기업은 기관투자가의 투자 대상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커, 주가 상승 기대도 낮아질 수 있다.
참치로 유명한 동원수산(E)은 온실가스 관리는 물론 사회공헌 활동과 윤리 경영 등에서 저조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카시트 제조업체 SG글로벌(E)은 온실가스 관리 능력이 미흡하고 근로자 안전과 보건, 관계사 거래와 윤리경영 등에서도 미흡해 최하 등급을 받았다. 이 밖에 티웨이항공 지주사인 티웨이홀딩스(D), 카지노·레저업체 파라다이스(D), 키움증권의 최대주주 다우기술(D) 등도 ESG 등급이 미흡했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뿐 아니라 개인도 ESG 우수기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 기업들이 본업에서의 사업 성과도 높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2017년부터 5년간 글로벌 주요 기업의 매출 성장률을 조사한 결과, ESG 경영 우수 기업은 연평균 6.4%를 기록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1.7%포인트 더 높았다.
전문가들 “ESG는 대세” 올 최대 변수 ‘미국 대선’
ESG 투자는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이후 뒷걸음질쳤다. 전 세계 ESG 펀드 자금은 지난해 4분기에만 25억 달러(약 3조5000억원) 규모가 빠져나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고금리 등 거시경제 불안과 기업의 그린워싱에 따른 신뢰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탓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문제가 더욱 심화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장기적으로는 ESG 투자가 대세가 될 것이란 데에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
앞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가 의무화하면 액티브(Active)형 ESG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도 활성화할 전망이다. 손서원 삼성증권 연구원은 “저탄소 구조 전환을 위한 투자 비율이 높은 종목(기업)을 선택하거나 이에 따라 투자 비중을 조절하는 액티브형 ESG ETF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ESG 투자에서도 올해 눈여겨볼 사건은 미국 대선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반(反)ESG 성향을 드러낸다. 백영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후보는 화석연료 사용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며 “그가 대통령에 당선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크게 증가할 수 있고 반ESG 법안 증가로 ESG 투자에 역풍이 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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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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