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치료 위해 위성 개발까지" 우주 연구하는 의사의 꿈
"암 수술 환자에게 이식용으로 쓰기 위한 고막 등 인공장기를 3D 프린터로 만들다가 한계를 느꼈습니다. 반면 중력이 적은 우주에선 간·신장 같은 큰 장기를 만드는 걸 포함해 의학 연구가 훨씬 쉬워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죠." 박찬흠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밝힌 병원에서 우주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다.
'우주를 연구하는 의사이자 의과학자'. 박 교수를 한마디로 요약한 표현이다. 코 재건·두경부암 진료 등 병원 내 '본업'만큼 의과학자로서의 연구 스케줄도 일분일초가 모자라다. 바쁜 일상이 쌓여 국내 최초로 우주에서 암세포를 배양하고 항암제 반응도 관찰할 수 있는 연구 위성체 개발을 앞두고 있다. 그는 1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사와 의과학자가 동떨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결국 의학 임상을 바탕에 둔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우주에 관심이 컸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의사로서 벽에 종종 부딪히게 되면서, 근본적인 환자 치료를 위해선 지구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렇게 우주의학 분야에 뛰어든 지 10년째가 됐다. 병원에선 별거 아닌 의료용 튜브를 무중력 상태에선 어떻게 쓸지 몰라 수많은 테스트에 나서는 등 시행착오를 거쳤다. 우주공학 전문가와의 협업 과정에선 생소한 용어 장벽을 넘어서는 데만 1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맨땅에 헤딩하면서 위성체 개발까지 온 셈"이다.
우주서 심혈관질환·교모세포종 치료 관련 연구
여러 고비를 넘긴 연구는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우선 내년 발사 예정인 누리호 4호에 이른바 '바이오 캐비넷'을 싣는 게 첫 번째 도전이다. 바이오 캐비넷은 우주에서 줄기세포를 혈관 등으로 분화시키고, 심장 등 장기도 3D 프린팅하기 위한 장치다. 개발은 마무리 단계로, 오는 10월쯤 누리호에 캐비넷을 탑재할 예정이다. 박 교수는 "우주에서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큰 우주인들의 치료를 위한 연구"라고 설명했다.
다음 단계는 2027년 발사 예정인 지구 귀환형 인공위성을 통한 연구다. '인류가 가진 종양 중 가장 악성'이라는 교모세포종을 우주에서 배양하고 항암제를 투여한 뒤 반응 등을 살피고, 위성체를 다시 지구로 귀환시켜 정밀 유전자 분석 등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탑재하기 위해 박 교수팀은 '바이오렉스'라는 국내 독자 위성체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수술·화학요법이 먹히지 않고 전이도 많은 교모세포종의 우주 내 변화를 보고, 지상에서 치료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더 먼 곳까지 바라본다. 달의 극한 환경을 버틸 수 있는 극지 식물을 달에 심어 산소·식량 확보 등을 돕는 게 최종 목표다. 그 전엔 중형 위성을 공장처럼 만들어 세포·약물을 대량 제작하는 '바이오 팩토리'를 만들고 싶다는 희망도 내비쳤다. 그는 "2032년 한국 탐사선이 달에 착륙한다는 계획에 맞춰 극지 식물 연구를 꼭 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눈물 나와" 보람 속 정부 지원 아쉬움도
실패 위험이 크다는 스트레스를 떠안는 만큼 보람도 크다. 바이오 캐비넷이 개발 3년 만에 완성 단계에 접어들자 박 교수는 "사진을 찍고 난 뒤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분야를 앞서서 하니 아이디어를 내는 재미도 있고, 우리만 할 수 있다는 보람도 남다르다"고 말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한국에선 우주를 파고드는 의사·의과학자가 거의 없는데, 출발선부터 다르다는 게 박 교수 설명이다. 해외에선 대형 제약사 등이 우주에서의 고순도 신약·인공장기 연구에 천문학적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우주에서 만드는 항암제 등의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에 우주 의학이 미래 먹거리로 빠르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는 "기존에 나온 연구들의 정보 공개가 대부분 안 된다. 우주 환경 테스트 등을 위해선 엄청난 돈과 노력도 필요해서 진입 장벽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당장 (병원을 나가) 개원해도 먹고 살 순 있겠지만, 인류에 기여하고픈 사명감으로 어려운 연구를 이어가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 지원을 언급할 땐, 박 교수 목소리에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다. 최근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기조 속에 사업 연구비가 대폭 깎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함께 연구를 이어가던 팀원 일부도 독일 등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다. 그는 "2027년 위성 사업은 예산이 모자라 지구 재귀환보다 우주 내 실험에만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바꾸고 있다. (우주 의학 사업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만큼 앞으로 충분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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