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에 봐도 좋은 책, 아름다운 책 만들고 싶어요”

맹경환 2024. 8. 19.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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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 음악전문 출판사 ‘프란츠’ 김동연 대표
김동연 프란츠 대표가 지난 1일 서울 광진구 프란츠 사무실에서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 출판한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 대표는 출판이 어렵다고 하지만 책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그는 "스마트폰만 보던 사람들이 다시 책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최현규 기자


최근 서울 광진구 음악전문 출판사 프란츠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그랜드피아노였다. 수시로 이곳에서는 작은 콘서트를 비롯해 음악 감상과 강의 모임이 열린다.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바이올린 레슨 전문가에서 출판사 대표로 변신해 음악과 책을 하나로 만드는 김 대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수많은 책을 접하지만 프란츠에서 나온 책들은 좀 달랐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디자인과 표지의 재질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은 하나의 예술품”이라는 김동연(47) 대표의 말을 들었을 때 프란츠의 책들이 다른 이유가 이해됐다.

바이올린과 함께한 어린 시절

김 대표는 어린 시절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동네 아이들을 끌고 다니며 탐정 놀이를 즐겼다. 선글라스를 낀 사람을 보면 수상하다는 생각으로 뒤를 밟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바이올린을 잡았다. 유치원 다닐 때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본 바이올리니스트의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부모님께 졸랐지만 들어주시지 않았는데 외할머니가 바이올린을 선물하면서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꿈꾸던 예술 중학교 입학에 실패하면서 실망감에 바이올린을 놓게 된다. 대중음악에 빠져 대학도 실용음악과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중음악을 하기 위해 클래식이 탄탄한 바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손을 놨던 바이올린을 잡고 대학도 바이올린 전공으로 음대에 진학했다. 그는 “집에서 대중음악은 반대할까 봐 나만의 절충안을 찾았던 것 같다”면서 “음대 진학에 실패하면 실용음악과에 진학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바이올린 교본 통해 맺은 출판과의 인연

김 대표는 연주자가 아닌 음악 교육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연주자가 되려면 더 재능이 있어야 하고 훨씬 더 연습해야 한다”면서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잘 보는 편이라 어려서부터 연주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질 않았다”고 말했다. 시작은 대학 입학 직후 다른 음대생과 마찬가지로 자그마한 음악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성인들을 대상으로 레슨을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대개 아이들은 부모에게 떠밀려 억지로 하는데 성인이 된 후 악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본격적으로 바이올린 스튜디오를 차려 성인들만 가르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성인을 가르치면서 늘 교본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그는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제가 어렸을 때 배웠던 교재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원하는 교본이 나오길 하염없이 기다리다 아예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하고 1년 넘게 원고를 다듬었다. 그리고 음악 관련 대형 출판사에 무작정 기획서를 내밀었다. 그렇게 2008년에 나온 책이 ‘한 권으로 끝내는 취미 바이올린’이다. ‘생일 축하합니다’를 통해 바이올린 기초를 배우고 영화 ‘시네마 천국’ ‘하울의 움직이는 성’ ‘여인의 향기’ ‘올드 보이’ 등의 OST를 비롯해 ‘1994년 어느 늦은 밤’ 같은 가요처럼 익숙한 곡을 통해 바이올린 연주 기술을 단계별로 배우도록 구성했다. 이후 ‘바이올린 영화음악을 만나다’ ‘바이올린 이지 클래식을 즐기다’ ‘바이올린 재즈에 빠지다’ 등의 교재를 잇달아 선보였다.

직접 출판사를 해보자


김 대표는 욕심이 생겼다. 시대별 바이올린 명곡집 등의 기획을 갖고 출판사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곳이 없었다. 책이 얼마나 팔릴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출판사들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는 “내 기획이 별로인가, 그래도 만들어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직접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일단 출판 공부를 시작했다. 강연도 찾아다니고 1인 출판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카페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출판에 대해 알면 알수록 혼자서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결국은 포기했다. 그러던 2014년이었다. 그해 4월 세월호 사고가 터졌고, 10월에는 가수 신해철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충격적이었다. 이런 일이 나한테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그해 말 진짜 망하더라도 그냥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다음 해 1월 우선 출판 등록부터 했다. 출판사의 이름은 프란츠. 그는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 프란츠 슈베르트에서 빌려왔다”면서 “지금은 프란츠 카프카 등 다른 예술가들을 연상하는 분들도 많아서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2년 만에 나온 프란츠의 첫 책


첫 책을 내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김 대표는 “10년 후에 봐도 좋은 책, 아름다운 책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제 이름을 건 출판사의 첫 책이라 더 많은 신경이 쓰였다”고 했다. 2년 넘게 음악과 미술을 공부했던 프랑스 파리를 다시 찾아 서점을 뒤지며 발견한 것이 ‘음악 혐오’였다. 음악의 오남용 사례를 통해 음악의 본질을 되짚어 보게 하는 묵직한 주제의 책이다. ‘아름다운’ 책을 만들기 위해 표지 디자인도 미술 도록만 전문적으로 하는 곳에 맡겼다. 기존 출판사로부터 거부당한 기획 중 하나도 직접 출판했다. 상급자를 위한 명곡 악보집 ‘바이올린을 위한 밤의 노래’였다. 연주자와 감상자용 버전으로 나눠 책을 구입하면 출판사 홈페이지를 통해 연주 음원을 내려받거나 CD를 별도로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란츠에서는 이후 10여권의 책이 나왔다. 모든 책에 ‘책은 예술품’이라는 그의 초심이 녹아 있다.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든다. 그는 “종이와 인쇄, 제본 등 순수제작비가 책 정가의 15%를 넘으면 안 된다는 게 출판업계의 정설이지만 프란츠는 이걸 맞춘 적이 거의 없었다”면서 “최근 나온 ‘음악소설집’은 20% 정도였다”고 말했다.

책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프란츠에서 나온 책들은 대부분 음악과 관련이 있다. 김 대표에게 음악과 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는 “음악은 너무나 깊고 아름답고 오묘한 세계인데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질 않는다”면서 “하지만 책은 한 권으로 다른 세상을 꽤 깊게 경험할 수 있다는 점 말고도 서로 다른 표지 디자인과 감촉, 종이의 냄새 등에서 다른 것이 대체하기 힘든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을 다양하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알아가는 과정을 풀어 가고 싶고,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프란츠의 책들을 보면 악기에 관한 책(‘스타인웨이 만들기’)이나 음악가의 평전이나 자서전(‘프란츠 슈베르트’ ‘음악 없는 말’), 음악을 주제로 한 소설(‘음악소설집’) 등 다양하다.

김 대표는 프란츠를 서서히 클래식에서 대중음악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장기적으로 예술과 문학을 아우르는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소망이 있다. 지난해 말에 음악을 떠나 일상의 삶을 이야기하는 ‘뉘앙스’라는 이름의 임프린트(하위 브랜드)를 만들어 첫 책 ‘듣기 좋은 말 하기 싫은 말’도 선보였다.

출판이 어렵다고 하고 책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걱정도 많다. 하지만 김 대표에게는 책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

“다른 출판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두 가지 믿음으로 이 일을 합니다. 책은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것과 책이 있어야만 한다는 거예요. 스마트폰만 보던 사람들이 조금씩 다시 책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라디오에서 책 광고가 자주 나오던, 베스트셀러들이 100만부씩 팔리던 그때로 돌아가기는 어렵더라도, 누군가는 계속 책을 보고 있을 겁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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