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계절적 이주민

태원준 2024. 8. 1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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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유류 가운데 온 지구를 돌아다니며 살아온 것은 쥐와 인간뿐이라고 한다.

이주하는 인간의 역사는 아프리카에서 세계로 퍼져 나간 호모 사피엔스가 대부분 써내려 왔는데, 우리 유전자의 2%를 차지하는 네안데르탈인도 여름엔 숲으로, 겨울엔 해안 동굴로 옮겨 다니는 생활을 했다.

샘 밀러는 저서 '이주하는 인류'에서 "우리는 모두 이주민의 후예"라 규정하며 정착 기간은 수백만년 인류사에서 매우 짧기에 "인간의 이주 본능은 여전히 어떤 포유류보다 강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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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논설위원


포유류 가운데 온 지구를 돌아다니며 살아온 것은 쥐와 인간뿐이라고 한다. 이주하는 인간의 역사는 아프리카에서 세계로 퍼져 나간 호모 사피엔스가 대부분 써내려 왔는데, 우리 유전자의 2%를 차지하는 네안데르탈인도 여름엔 숲으로, 겨울엔 해안 동굴로 옮겨 다니는 생활을 했다. 샘 밀러는 저서 ‘이주하는 인류’에서 “우리는 모두 이주민의 후예”라 규정하며 정착 기간은 수백만년 인류사에서 매우 짧기에 “인간의 이주 본능은 여전히 어떤 포유류보다 강하다”고 했다.

농경과 목축을 익힌 뒤에는 계절적 이주가 거주 이동의 주된 양식이 됐다. 유목민은 가축에 먹일 풀을 찾다보니 자연히 철마다 사는 곳이 달랐고, 농경사회도 농번기 일손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는 계절노동자가 생겨났다. 땅이 넓어 계절이 혼재하고, 국경이 없어 이동이 자유로운 북미에선 20세기까지 계절적 이주민이 농업을 지탱했다. 밀 수확의 북상 루트를 따라 추수 일꾼이, 개화 루트를 따라 양봉 일꾼이 몰려 다녔고, 오렌지 수확기엔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의 생활인구가 늘었다.

한파 지역을 찾아다니며 끊긴 전선을 복구하는 통신 수리공처럼 비농업 분야에서도 엿보이던 계절적 이주의 생활방식은 이제 은퇴 문화의 일부가 돼서 ‘스노버드(snowbird)’란 말이 생겨났다. 북부의 혹독한 겨울을 피해 남부 선벨트로 가서 한 계절을 살다 오는, 직장에 매이지 않아 그리할 수 있는 은퇴자를 일컫는데, 요즘은 이와 반대로 여름철 폭염을 피해 북쪽 지방이나 고지대를 찾아가는 ‘선버드(sunbird)’가 많다고 한다.

유엔국제이주기구는 지구온난화로 향후 30년간 15억명의 기후이주민이 발생하리라 추산했다. 적도와 가까운 저위도 지역부터 이주행렬이 시작될 때 우리처럼 사계절을 가진 중위도 국가에서 나타날 현상은 계절적 이주의 확산이 아닐까 싶다. 다른 계절은 그래도 살 만하니 갈수록 가혹해지는 여름을 나려고 일시적으로 거처를 옮기는 이들이 많아질지 모른다. 한 달째 계속되는 열대야가 우리의 이주 본능을 자극하고 있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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