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잭슨홀 미팅
가늠할 자리… 고금리 국면
끝자락에서 어디로 향할까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은 로키산맥의 일부인 티턴산맥과 그로스벤터산맥이 계곡·호수를 둘러싸 절경을 펼쳐내는 산골 휴양지다. 만년설로 덮인 산봉우리가 거울처럼 맑은 수면에 비친 호숫가에서 운이 좋으면 비버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연은)은 1981년부터 매년 8월이 되면 잭슨홀에서 경제 심포지엄을 열어 왔다. 이 심포지엄은 ‘잭슨홀 미팅’으로 불린다. 올해 잭슨홀 미팅은 오는 22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열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를 구성하는 12개 연은 가운데 하나인 캔자스시티 연은은 미주리·와이오밍·콜로라도·네브래스카·오클라호마주 등 미국 중서부 일대 여러 시중은행의 법정준비금을 관리한다. 하지만 운용 자산 규모가 12개 연은 중 꼴찌에서 두 번째일 만큼 작다. 캔자스시티 연은의 지난해 말 기준 자산 규모는 958억 달러(약 130조원)로 가장 많은 뉴욕 연은의 4조1550억 달러(약 5628조원)와 비교하면 2.3%에 불과했다.
이런 캔자스시티 연은이 인적도 드문 잭슨홀에서 사흘간 마련하는 토론장으로 주요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 경제 석학, 금융시장 전문가들이 모여 재정·통화 정책을 토론하며 세계 경제를 진단한다. 별장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자리여서 참석자들은 정장 대신 남방을 입거나 운동화를 신을 만큼 긴장감을 살짝 내려놓기도 한다.
자유로운 토론이라곤 하지만 주요국 중앙은행장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무게가 가볍지만은 않았다. 2010년 잭슨홀 미팅 당시 연준 의장이던 벤 버냉키의 연설이 그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유동성을 푸는 양적완화의 효과가 당시만 해도 충분하게 검증되지 않았지만, 버냉키는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추가 시행 가능성을 언급해 세계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후 버냉키에게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렸다’는 의미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5년 잭슨홀 미팅에서는 인도 경제학자인 라구람 라잔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가 미국 경제의 거품을 경고했다. 당시 하버드대 총장이던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당시 라잔의 조언을 “잘못된 분석”이라고 비판했지만, 2년 뒤 찾아온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2008년 월가 4대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를 무너뜨리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몰고 왔다. 이후 라잔은 인도 중앙은행인 인도준비은행 총재가 됐다.
올해 잭슨홀 미팅은 고물가·고금리 국면의 종반부에서 주요국 재정·통화 정책 기조가 어느 방향으로 바뀔지를 가늠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관전포인트는 연준이 다음 달 17~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지, 그 폭을 ‘빅컷’(0.5% 포인트 인하)으로 확대할지에 대한 연준 인사들의 힌트에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잭슨홀 미팅 이틀째인 23일 ‘경제 전망’을 주제로 연설하는데, 통화 정책 방향을 언급할 수 있다.
미국 연방기금 선물시장의 기대치를 나타내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서 9월 FOMC 회의를 통한 금리 인하 전망은 이미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였고, 고용시장 냉각과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빅컷 단행 전망은 25.0%의 지지를 얻었다. 파월의 발언이 시장의 기대와 엇갈리면 금융시장은 다시 흔들릴 수 있다.
중립금리 수준에 대한 논의도 이뤄진다면 파월의 연설 못지않게 주목할 만하다. 중립금리는 성장을 촉진하거나 저해하지 않아도 자금 수요·공급을 맞출 수 있는 금리의 이론적 수준을 말한다. 주요국 중앙은행에서 중립금리가 상향됐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다면, 언젠가 찾아올 고금리 국면의 끝자락에서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같은 초저금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예고가 될 수 있다. 연준 위원들은 이미 지난 6월 FOMC 정례 회의에서 사실상 중립금리로 여겨지는 장기금리 추정치의 중간값을 기존 2.6%에서 2.8%로 상향했다.
김철오 국제부 차장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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