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좋든 싫든 전기차와 함께할 운명

김혜원,산업1부 2024. 8. 19.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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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차를 바꾸면서 전기차 구매를 고려했다가 생각을 접은 적이 있다.

인천 청라아파트 전기차 화재 사고를 계기로 돌이켜보니 우리 주변에는 전기차 안전 불감증이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주행거리 역시 완충 시 더 멀리 가는 전기차만 선호할 게 아니라 긴 주행을 감당할 제조 역량을 갖춘 안전한 배터리인지를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교훈을 개인적으로 남겼다.

전기차가 아무리 경제적이어도 안전에 대한 보장이 없으면 그 어떤 이점도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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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산업1부 차장


몇 달 전 차를 바꾸면서 전기차 구매를 고려했다가 생각을 접은 적이 있다. 남편과 상의 끝에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유가 안전 때문은 아니었다. 거주하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전기차 충전기가 한두 대뿐이고, 주말 동안에만 300㎞ 가까이 주행하는 일이 잦은 일상을 따지면 현실적으로 여건에 맞지 않아서였다. 인천 청라아파트 전기차 화재 사고를 계기로 돌이켜보니 우리 주변에는 전기차 안전 불감증이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충전 시설은 단순히 개수의 문제를 떠나 화재 발생 시 진압할 수단이 주위에 충분히 갖춰져 있는지 폭넓게 따져봐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 주행거리 역시 완충 시 더 멀리 가는 전기차만 선호할 게 아니라 긴 주행을 감당할 제조 역량을 갖춘 안전한 배터리인지를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교훈을 개인적으로 남겼다.

올해 국내 등록대수 60만을 돌파한 전기차의 안전성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전기차가 아무리 경제적이어도 안전에 대한 보장이 없으면 그 어떤 이점도 무의미하다. 현대차·기아와 BMW를 선두로 소비자 정보 비대칭 해소와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한 것이 늦었지만 자체로 의미 있는 이유다. 제조사와 배터리 공급사는 철저한 품질 관리와 사후 안전 대응에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정보 공개 이상의 경각심을 가져야만 소비자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화재 사고의 차량 제조사인 벤츠의 초기 대응에 낙제점을 주고 싶다. 벤츠는 배터리 제조사를 물었을 때 영업기밀만 운운하며 공개하지 않아 빈축을 샀다. “혹시 중국 CATL 배터리가 아닌 것 아니냐”며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다른 중국산 배터리가 탑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역풍을 맞았다. 자사 전기차 모델의 80%에 중국산 배터리를 넣은 ‘불편한 진실’이 알려지는 걸 꺼린 기색이 역력하다. 벤츠는 ‘짱츠’와 ‘중국차’로 불리는 오명을 자초하며 고급 독일차 이미지를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를 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과도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는 지양해야 한다. 각국의 강도 높은 환경 규제로 전기차는 인류 이동수단 역사상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은 틀림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항공·자동차·철도 산업도 초기 개발 단계에서 안전에 관한 기술 부족과 규제 미비로 많은 사고와 인명 피해를 낳았다. 항공기의 경우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통계를 찾아보니 지난해 기준 사고율은 100만 비행당 2.05건까지 낮아졌다. 1950년대 후반에는 40건을 넘었다. 같은 기간 단일 비행에 1건의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4만분의 1에서 49만분의 1로 대폭 줄었다. 이는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항공기 설계와 엔진 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엄격한 안전 규제와 표준화 시스템으로 뒷받침한 결과다. 전기차 화재 사고율은 0.013%로 1만대당 1.3대 수준이다. 항공기 사고 확률보다 약 63배 높지만 내연기관차 사고율(0.016%)보다는 낮다. 전기차 구매는 개인의 선택이자 자유라서 좋든 싫든 우리는 전기차와 동시대를 살아야 한다. 전기차를 기피한다고 안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위험을 인지하고 안전성 강화 노력을 시작함으로써 앞으로 전기차는 더 안전해질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만 그 길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 과거 항공산업이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결국 항공기를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 중 하나로 만든 것처럼 제조사와 규제 기관, 소비자가 협력한다면 전기차의 장래도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혜원 산업1부 차장 ki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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