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칼럼] 권력의 인과응보

최훈 2024. 8. 1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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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주필

정부 수립 76년. 한국의 정치 권력이란 한시도 세상에 평안을 주지 못해 왔다. 권력을 쥔, 쥐려는 이들 간의 투쟁·증오·복수는 여전히 악순환 중이다. 권력자들 스스로에게도 이는 잔인한 업보(業報)를 불러왔다. 전임 대통령 12명 중 퇴임 뒤 큰 탈 없이 수명을 다했던 대통령은 2명(김영삼·김대중)뿐. 혁명·쿠데타로 인한 하야(사실상 강제퇴진까지)가 3명, 시해 1명, 자살 1명, 사법 수형을 겪은 이가 4명이니 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법적 고행 없이 삶을 마친다면 12명 중 3명만 무탈이니 우리 국가 지도자의 불행 확률은 75% 이상이다.

실세인 대통령비서실장도 마찬가지. 박근혜·문재인 정부 비서실장 8명 중 수형이 2명, 검찰 수사를 받았거나 받는 이가 4명이다. 전 정권 10년의 실장 역시 75% 확률로 1인자의 불운에 수렴해 왔다. 한때 나는 새도 떨어트렸다는 국정원장(중앙정보부·안기부 포함)도 만신창이다. 초대 김종필 부장부터 직전 정부 박지원 원장까지 35명 중 큰 탈 없던 이들은 12명뿐. 사형·사형선고, 피랍·실종부터 징역·구속·정치규제·검찰수사 겪은 이가 23명. 3분의 2(66%)가 지녔던 힘만큼의 과보(果報)가 찾아왔다. 반란부터 정적 누르려는 불법도청, 북풍·서해공무원 피살 등의 조작, 특활비 등 1인자에게 맹목적 충성 다하려다(물론 자기 영달의 심리가 섞였겠지만) 되돌아온 결과였다. 탄핵·특검, 입법 폭주와 거부권, 여야의 1인자 충성 경쟁, 고소·고발, 욕설·비난으로 날 새우는 지금 역시 불행으로의 영원한 궤도에 올라타 있다.

「 76년 동안 투쟁-증오-복수 악순환
권력자들 불행 넘어 고해의 세상 돼
‘탐욕·분노·무지’의 악업 깨우치고
‘절제·관용·지혜’의 정치로 속죄를

정치인들 스스로야 업보 받으면 그만이겠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지은 정치의 공업(共業)은 국민에겐 회복하기 힘들 큰 상처를 안겼다. “정치 이념 다른 이들과 연애나 결혼할 의향 없다”는 응답이 국민의 58.2%(보건사회연구원, ‘사회통합 실태진단’). “함께는 술도 안 마신다”가 33.2%. ‘한 지붕 두 민족’으로 갈라 온 게 정치가 빚은 대한민국의 실상(實相)이다. 오죽하면 정치 갈등이 가장 심각한 세계 1위(90%, 미국 퓨리서치센터, 조사대상국의 중간값 50%)이겠는가. 그뿐인가. 특검의 국정농단 수사, 검찰의 이재명 대장동 수사 과정에선 각각 5,6명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지난 20년 검찰·경찰 수사를 받다 목숨 끊은 이가 163명·76명이다(인권연대 전수조사). 정말 고통의 바다 한가운데다.

마음과 말과 행위의 업엔 그 과보(果報)가 따른다는 불교의 ‘인과응보’는 우리 정치엔 큰 각성을 줄 화두다. 모든 이의 삶에 영향 미칠 정치 지도자를 붓다는 더욱 경계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세상 이치 다 아는 듯 뽐내고, 거만하게 권세를 부린다. 남 업신여기길 손쉽게 하느니라. 자기 분수 모르니 악행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힘만 드러내 위엄을 사려 한다. 전생 얼마간의 복덕 쌓아 금생에 약간의 지위를 누리지만 금생에 악을 범해 그 복력이 다하면 악업만 남아 지옥 불가마에서 한없는 고통이다.”(『삼세인과경』) “살아 무거운 죄인들이 최악의 아비지옥에 들어설 땐 문으로조차 들어가지 못하니 엄청난 업풍(業風)에 정신 잃고 거꾸로 휘말려 순식간에 나락”(『목련경』)이란 경고다. 꼭 다음 생의 과보만도 아니다. “현재의 업에 즐거움 받듯(善因善果), 현재에 괴로움을 받기도 한다(惡因惡果).”(『열반경』)

악업의 뿌리는 삼독심(三毒心). 탐욕(貪慾), 증오와 분노(瞋恚-진에), 어리석음(愚癡-우치)의 ‘탐·진·치’다. 죄는 대개 이 셋의 비빔밥이다. 결코 충족 못할 욕망에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셋 중 으뜸인 탐욕. 만족이 없으니 그 끝도 없다. 정치인에게야 약간의 자기 망상도 필요는 할 터다. 그러나 애초 제 소유 아닌 것에, 자질·도덕성·자격의 분수 모르는 탐함이 대부분이다. 초선 되면 재선, 당대표·지사·장관이면 대통령 되고프다. 더 큰 탐욕에의 장애물인 누군가를 제거하려는 증오·분노가 진에다. 온 세상을 분열시킨다. 인과응보를 믿지 않고, 이런 탐욕·진에가 행복을 줄 거라 믿는 미몽, 그건 바로 우치다. 자기만 진실이라 반대자 박해를 정당화한다. 어리석음이자 지적 게으름이다. 여-야, 친윤-비윤, 친명-비명, 개딸-수박, 극우-좌파 등 모든 우리 정치의 심연이다. 세상 뜨기 전 “정치는 다 허업(虛業)”이라던 김종필 전 총리는 그 본질을 깨우쳤던 걸까.

권할 길은 ‘탐·진·치’의 정반대로다. 제 분수 알고 절제하라. 세상은 지혜·성품 더 훌륭한 이들이 가득하다. 권력이란 잠깐씩 나랏일 맡겨 놓은 분업(分業)일 뿐. 탐하길 그칠 줄 알아야 할 까닭이다. 권력이란 공동체를 진화시킬 자기 헌신의 수단일 뿐이 아닌가. 인격 살생의 막말, 거짓이야말로 절대 사라지지 않고 새겨질 업이다. 그 마음속 칼 씻어낼 선업, 관용·포용·이해다.

지금 우리 정치인들이 가장 아플 붓다의 죽비가 있다. “인과응보는 너무나 정확해 즉시가 아니라도 머지않아 반드시 그 과보를 받고 만다. 누구도 대신 받을 순 없다.” 선거든, 법정이든, 민심의 광장이든, 자신의 다음 생에서든 말이다.

최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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