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일반주주 이익 외면하는 한국 상장기업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은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 경제금융 정책이다. 윤 대통령은 연초부터 수 차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 저평가 현상) 해소 의지를 밝혔고,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가 밸류업 도입을 공식화한 지도 7개월 지났다. 최근 밸류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 국내에서는 강제성이 빠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성공적으로 거버넌스 개혁을 추진 중인 일본 기업같이 국내 상장사들도 스스로 변하길 기대한다. 밸류업은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프로젝트이므로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신한금융·메리츠금융·우리금융이 지난 7월 구체적인 밸류업 계획을 발표하자 시장이 환호했다. KB금융은 주가가 연초 대비 60%나 뛰었다. 지배주주가 없는 다른 금융지주사와 포스코·KT&G 등도 괜찮은 밸류업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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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들, 정부 밸류업 계획 외면
지배주주 이익에 일반주주 희생
이사 충실 의무에 주주 포함해야
」
하지만 증시는 대기업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대기업 중 밸류업 계획을 발표한 곳이 아직 없다. 어느 중견 상장사는 이사회에서 밸류업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화에너지는 지난달 주가가 저평가된 ㈜한화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 의사를 밝혔다. ㈜한화는 한화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이고,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100% 소유한 일반 회사이다. 당초 8% 지분 매집을 목표로 했지만 저조한 참여로 목표의 65%인 5.2% 지분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너무 낮은 공개매수가 때문이었다. 장기간 낮은 주가로 피해를 본 ㈜한화 일반주주는 왜 이런 가격에 지배주주에게 주식을 팔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상장기업 경영자 대다수는 ‘밸류업=주주 환원’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밸류업은 주주의 요구수익률인 자본비용을 이해한 후 자본 배치를 제대로 하고, 중장기적으로 성장과 주주 환원 최적의 조합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경영자는 전체의 1% 미만이라 생각된다. 금융당국은 거버넌스 전문가들을 초빙해 CEO, CFO 및 사외이사 대상으로 꾸준히 밸류업 교육을 해야 한다.
최근 두산그룹은 주주 및 금융당국과 대치하고 있다. 두산을 비롯해 3개 관계사가 밸류업은커녕 가치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이 7월 11일 자본시장법의 합병 비율 조항을 악용한 사업구조 재편을 발표했다. 자본 거래가 주주총회를 통과하면 사주 일가가 지배하는 두산의 두산밥캣 지배력은 14%에서 42%로 상승한다. 일반주주 지분율은 그만큼 하락한다. 두산그룹 시가총액이 개편안 발표 후 한 달 만에 6.5조원 증발했다.
두산 경영진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합병 비율을 정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이었다면 두산밥캣 이사회가 지배주주가 아닌 일반주주 입장에서 고민했을 것이고, 특수이해관계자인 두산 관계사들은 절차와 조건의 전체적 공정성 관점에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재선임을 위해 지배주주의 눈치를 보는 사외이사들 때문이다. 국회는 이른 시일 내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 충실 의무에 주주를 포함해야 한다. 독립 이사들이 소신 있게 이사회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연임을 금지하고 4년 단임을 기본으로 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수많은 대표이사를 만나봤지만 “귀사의 지난 1년, 3년, 10년 총주주수익률(TSR)을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이해하는 경우가 없었다. 총주주수익률은 배당을 포함한 주가수익률을 연율화한 개념이다. 월가에선 기업·경영진 평가의 핵심 항목이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밸류업의 성공이 절실하다. 한국 상장사 10년 총주주수익률은 연 5%에 불과하다. 미국은 13%, 일본·대만은 10%이다. 평균 배당수익률 2%를 제외하면 우리 기업들은 불과 연 3% 성장했다. 재계가 주장하는 “밸류업이 시행되면 기업의 성장에 타격을 준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우리 기업들은 연 3% 성장밖에 못 하고 있다. 1400만 일반투자자와 2250만 국민연금 가입자는 성장도 못 하고 주주 보호도 받지 못하는 한국 자본시장의 최대 피해자이다. 향후 한국의 총주주수익률이 연 5%에 머문다면 우리 세대는 물론 후손들 마저 낮은 금융소득 및 부족한 은퇴자금에 시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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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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