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인사이드 아트] 미완의 과제, 공공미술 프로젝트

2024. 8. 1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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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문화도시를 표방하면서 추진하는 대표적인 사업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여기에는 도시 환경의 미적 개선이나 시민들의 문화 향유와 예술가 지원, 낙후 지역의 문화 재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적의 사업들이 있다. 서울시의 경우 ‘지붕 없는 미술관’을 내세우며 ‘서울은 미술관’과 ‘조각도시 서울’이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과거 여의도 한강공원에 설치되었던 ‘괴물’(2015)이나 서울역 광장의 ‘슈즈트리’(2017)처럼 흉물 논쟁으로 철거되는 사례도 있지만,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2017)이나 ‘홍제유연’(2019),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2019), 최근의 가락시장 정수탑 프로젝트 ‘비의 장막’(2024)에 이르기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사업도 있다. 이들 조형물은 설치 장소나 작품의 성격에 따라 3~5개월부터, 2~3년 혹은 5년 이상 장기적으로 설치 운영된다.

「 도시공간과 광장의 예술 활용법
트래펄가 광장, 타임스퀘어 눈길
국경 초월한 예술 공론의 장소
큐레이션과 지속가능성이 중요

마이클 라코위츠, 네 번째 좌대 공공미술 프로젝트, 2018, 런던 트래펄가 광장. 사진 런던시청 홈페이지

8월 현재 광화문광장이나 시청사와 노들섬 입구 등 서울의 주요 도시공간, 광장을 중심으로 ‘한평조각미술관’이 열리고 있고, 9월에는 송현녹지광장과 월드컵공원, 한강공원 등에서 ‘서울조각페스티벌’이 진행 예정이다. ‘서울조각상 공모’ 등 형식을 달리하면서 새롭게 거듭난다고는 하지만 공공미술의 특성상 조각가, 설치미술가, 영상 미디어 작가들이 주로 참여하게 되는데, 국내 작가의 층이 한정적이고 기획 또한 매너리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적지 않은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는 사업이지만, 유사한 전시의 반복으로 인하여 지명도 있고 역량 있는 작가들은 오히려 참여를 기피하는 현상이다. 기획에 있어서 집중과 선택이 필요하며, 가락시장 정수탑 프로젝트처럼 국제작가(네드 칸)를 지명 공모하여 참여 작가의 스펙트럼을 글로벌 수준으로 확장해야 한다.

영국 런던 트래펄가 광장의 ‘네 번째 좌대(The Fourth Plinth)’와 뉴욕 타임스퀘어의 ‘미드나잇 모먼트(Midnight Moment)’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어떻게 국제적으로 성공했는지 잘 보여준다. 지금 서울 주요 도심에서 진행 중인 ‘한평조각미술관’의 기획 아이디어는 사실 ‘네 번째 좌대’에서 차용한 것이다. 트래펄가 광장의 빈 좌대를 활용하여 1년에 한 번씩 교체, 전시하는 이 프로젝트는 잉카 쇼니바레, 마이클 라코위츠(사진), 샘슨 캄발루 등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소외와 불평등, 디아스포라(이산), 문화 다양성, 기후·생태 위기 등 예술적 성찰과 의미 있는 담론을 지속적으로 생산한다. 참여 작가의 엄격한 심사와 검토 과정을 거치며, 1999년 시작되어 이미 2028년까지 작가 선정이 완료되었다. 이 사업은 영구적인 기념물이 아니면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공미술’로 명성을 얻고 있다.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네 번째 좌대에 설치된 잉카 쇼니베어 작품 ‘병속의 넬슨 군함. 중앙SUNDAY


2020년 삼성동 무역센터 앞 LED 입체 전광판에서는 미디어아트 ‘WAVE(디스트릭트)’가 소개되어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과 국제적인 호평을 받았다. 이후 2022년부터 무역센터와 K-POP 라이브 미디어 광장 일대에서 매년 ‘서울미디어아트위크(SMAW)’가 진행 중이다. 민관합동의 이 사업 역시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드나잇 모먼트’의 운영방식을 따르고 있다. 코엑스 주변 실내외 전광판을 활용하여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다양한 미디어 아트를 소개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국내 작가 중심의 라인업이 아쉽다. 타임스퀘어 주변 90여 개의 전광판을 활용하는 ‘미드나잇 모먼트’는 지구촌 전역에서 작가(오노 요코, 조승호, 마사 아티엔자 등)를 선정하여 매월 한 명(팀)씩 매일 밤 11시 57분부터 12시까지 3분간 상영한다. 2012년부터 현재까지 누적 100명 이상의 국제적 작가들이 참여하여 3D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첨단 디지털 기술뿐만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예술 공론의 장을 만들고 있다.

도시는 우리의 일상이자, 집단적 기억의 장소이며, 유동적이고 시간성이 교차하는 변증법적인 공간(앙리 르페브르)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작가지원이나 시민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관행적으로 반복되고 시각적 흥미를 끌다가 휘발성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도시 공간이 시민이나 도시 산책자들에게 의미 있는 문화 담론과 기억의 장소가 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지역과 장소에 따라 다수의 기관과 협력해야 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행정의 미학’과 동시에 ‘예술 기획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특성화, 차별화 전략은 물론 문화 다양성의 시대에 지역(한국)과 세계가 함께 성장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모색할 때이다. 트래펄가 광장이나, 타임스퀘어 공공미술의 성공적 사례는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작가 선정 등 큐레이션의 중요성과 지속가능성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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