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32년 전쟁
‘32년 전쟁’. 오는 24일로 수교 32주년을 맞는 한·중 경제 관계를 요약한 말이다. 양국 협력 이면에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있었다. 백색가전, 기계, 철강, 조선, 자동차…. 중국 성장은 그 자체가 한국 산업을 추격하고, 추월하는 과정이었다.
디스플레이는 가장 격렬한 전쟁터였다. 시작은 TV·PC 등에 쓰이는 CRT(브라운관) 모니터였다. 우리 기업은 수교와 함께 중국에 진출했고, 약 70%의 시장을 차지하기도 했다. 중국은 거세게 추격했고, 2000년대 중반 한국 CRT를 따라잡았다.
위기의 순간 우리는 LCD로 갈아탔고, 다시 중국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다. 그들은 또 추격했고, 2010년대 중반 추월에 성공했다. 지금 우리 기업은 거의 포기 상태다. LG디스플레이의 광저우(廣州) LCD 공장 매각은 이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끝은 아니다. LCD에서 밀린 우리는 또 다른 병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다. 다시 그들의 추격이 시작됐다. BOE 등 중국 기업은 정부 돈을 끌어와 OLED 공장을 짓고, 한국 인재를 빼갔다. 그러니 전쟁이다.
지금 전황은 불리하다. 올 상반기 스마트폰·태블릿용 중소형 OLED 시장 1위 자리를 중국에 넘겨줘야 했다. 이 기간 중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7%인데 비해 삼성·LG 등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49.3%에 그쳤다(출하량 기준, 시노 리서치 통계). 중국은 10%포인트 늘었고, 우리는 꼭 그만큼 줄었다. ‘OLED 고지’도 위험하다.
이대로 잡힐 것인가. 아니다. 업계는 중국 추격을 뿌리칠 차세대 기술로 ‘마이크로 LED’를 꼽고 있다. 각 기업은 기술 선점을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전쟁 양상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우리가 먼저 개발하고, 중국이 추격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 차가 없다. 중국은 2021년 이미 마이크로 LED를 국가 육성 항목으로 지정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올 1월 공업정보화부·과기부·교육부 등 7개 관련 부처가 공동 발표한 ‘미래 산업 혁신 발전 지원 의견’은 오는 2027년까지 이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에 올려놓겠다고 밝히고 있다. 오히려 우리보다 먼저 치고 나가는 양상이다.
디스플레이는 ‘32년 전쟁’에서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분야다. 반도체와 함께 독보적인 경쟁력을 지키고 있다. 이 전쟁에 밀린다면, 그 결과는 산업 종속일 수 있다. 정부와 업계가 손잡고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이유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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