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친절한 외계인, 그라츠 쿤스트하우스

2024. 8. 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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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비행선 같이 떠 있는 유선형 물체, 미끈거리는 푸른 피부, 더듬이 같이 튀어나온 돌기들. 외계의 생명체를 연상케 하는 그라츠의 쿤스트하우스, 예술회관이다. 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 그라츠는 붉은 기와지붕으로 가득한 중세풍 고도(古都)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거점이었던 구도심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도시는 2003년도 유럽의 문화 수도가 되었다.

그 기념사업으로 현상설계를 실시했고, 런던대학의 피터 쿡 교수팀의 당선안이 실현되었다. 쿡은 1960년대 전위적인 건축그룹 ‘아키그램’의 주도자로, ‘입고 다니는 집’ ‘움직이는 도시’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발표해 명성을 높였다. 당시에도 황당했던 이 전위안들은 실현되지 못해 오랜 기간 ‘종이 건축가’로 지내다 66세에 비로소 그라츠에 대표작을 남기게 됐다. 수백 년 된 건물로 가득한 도시에 이처럼 기이한 건물을 제안한 건축가나, 이를 흔쾌히 수용한 시민들의 안목도 대단하다.

쿤스트하우스 본체는 1066개의 아크릴-유리판으로 덮었다. 외피 판에 삽입된 930개의 형광 링은 도시를 향해 전시하는 초대형 스크린이 된다. 이른바 BIX(big pixels의 애칭) 프로젝트는 유명 예술가들이 참여해 공공 예술을 도시에 선물한다. 독특하고 신선한 건물은 그 자체로 현대 조각이고, BIX의 조명 형태에 따라 변화하는 건물 벽은 곧 미디어아트다.

15개의 더듬이 천창을 통해 자연광이 유입되는 전시홀은 밝게 빛나는 추상적인 공간을 이룬다. ‘바늘’이라는 이름의 최상층 전망 데크는 앞 강변 풍경이나 역사 도심과 소통하는 타임머신이기도 하다. 19세기의 유서 깊은 건물 ‘철의 집’도 개조해 미술관의 일부로 삼았다. 건축가 스스로 ‘친절한 외계인’이라 부르는 이 건물은 과거와 미래가 유쾌하게 조우하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어우러지는 문명 소통의 공간이다. 건축가는 젊은 날부터 꿈꿔왔던 이상을 원숙한 솜씨로 실현해 역사 도시에 활력을 선사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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