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 이미지와 싸운 세기의 미남배우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배우’(가디언)이자, ‘프랑스 영화의 위대한 유혹자’(프랑스24), ‘프랑스 영화계의 영원한 스타’(르몽드)가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가 낳은 ‘세기의 미남 배우’ 알랭 들롱이 별세했다. 88세. AFP 등에 따르면 들롱의 세 자녀는 “아버지가 18일(현지시간) 자택에서 가족들이 함께 있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사인은 발표되지 않았다.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투병해 온 고인은 “건강이 악화할 경우 안락사해 달라”는 뜻을 2022년 3월 가족을 통해 공표했다. 이후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에 머무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여자가 다가올 때’(1957)로 스크린 데뷔한 이래 9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에서 신분 상승 욕망에 사로잡힌 가난한 청년 톰 리플리 역할로 스타덤에 올랐다. 다부진 몸, 차가운 푸른 눈빛으로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란 수식어를 얻었지만, 꽃미남 스타에 안주하지 않았다. “나는 스타가 아니라 배우다. 사람들이 내가 아름다운 얼굴의 예쁜 소년일 뿐이란 사실을 잊게 하기 위해 수년간 싸워 왔다”고 수차례 인터뷰에서 말했다.
전 세계 명감독들과 작업하며 숱한 대표작을 낳았다. 이탈리아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태양은 외로워’(1962), 프랑스 명감독 르네 클레망의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 미국 감독 조셉 로지의 ‘고독한 추적’(1976), 프랑스 스릴러 귀재 자크 드레이의 ‘볼사리노’(1970), 스파게티 웨스턴의 아버지 두치오 테사리의 ‘조로’(1975) 등이다. 영화 ‘로코와 형제들’(1960), ‘레오파드’(1963)를 함께하며 베니스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탈리아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는 “(들롱이 아닌) 다른 배우를 써야 했다면 이 영화들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프랑스 누아르 전성기의 중심에도 고인이 있었다. 깃을 세운 트렌치코트에 중절모를 눌러 쓴 서늘한 범죄자의 모습으로 필름 누아르 걸작을 배출했다. 특히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한밤의 암살자’(1967), ‘암흑가의 세 사람’(1970) 등은 마틴 스코세이지, 쿠엔틴 타란티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오우삼 등에게 영향을 준 작품으로 꼽힌다.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알랭 들롱은 밑바닥 인생을 연기할 때 매력이 살아난다”고 표현한 퇴폐적 분위기는 고인의 기구한 인생에서 나왔다. 1935년 태어난 고인은 4세에 부모가 이혼한 뒤 위탁가정에서 자랐다. 17세에 해군에 입대해 인도차이나전쟁에 파병됐다가 지프 절도로 불명예 전역했다. 이후 잡일을 전전하다 프랑스 감독 이브 알레그레의 눈에 띄며 ‘여자가 다가올 때’로 데뷔했다.
여성 편력 탓에 가족사가 복잡하다. 1964년 첫 아내 나탈리 들롱과 맏아들 안토니를, 1987년 네덜란드 모델 로잘리 판 브레멘과 동거하며 1990년 딸 아누슈카, 1994년 막내아들 알랭 파비앙을 얻었다. 독일 배우 로미슈라이더와 약혼 중 독일 록스타 니코와 외도해 낳은 아들(2023년 사망)은 평생 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세 자녀는 고인의 동거녀 히로미롤린을 학대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고인이 참석한 마지막 공식 행사는 2019년 칸 국제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 수상 무대였다. 당시 10분간 기립박수를 받은 고인은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오직 내 배우 경력뿐”이라며 “요즘은 경력의 끝을 넘어 인생의 끝에 도달한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사후에 받을 상을 살아 있을 때 받는 것 같다”고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1991년 프랑스 정부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1995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명예 황금곰상을 받았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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