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이상 청년 ‘그냥 쉬었다’ 20% 증가…취업 눈높이도 영향
올 초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이모(28)씨는 최근 ‘취준’(취업 준비)을 접고 대전에 있는 본가로 돌아가 쉬고 있다. 인문·상경계열을 이중 전공한 그는 지난해부터 취업에 도전했지만 ‘문과생’ 공채 문이 좁아지면서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이씨는 “면접이나 인·적성 단계까지 가지도 못하고 서류부터 탈락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한계를 느꼈다”며 “전문직 시험이나 고시 등 다른 진로로 변경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씨처럼 취업을 포기하고 그냥 쉬는 청년층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7월 청년층(15~29세) ‘쉬었음’ 인구는 전년 대비 4만2000명(10.4%) 늘어난 44만3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던 2020년(44만1000명)과 2021년(39만9000명)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쉬었음’ 인구란 비경제활동 인구 가운데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는 없지만 막연히 쉬고 싶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지난달 청년층 인구 815만 명 중 ‘쉬었음’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5.4%를 기록했다. 이 역시 같은 달 기준 역대 최대치다.
청년층 ‘쉬었음’ 인구는 고령층(60세 이상)을 제외한 다른 모든 연령대보다도 많았다. 40대 ‘쉬었음’ 인구는 28만4000명을 기록했고 이어 30대(28만8000명), 50대(39만4000명) 순으로 많았다. 원래 ‘쉬었음’ 인구가 가장 많은 고령층의 경우 110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청년층 ‘쉬었음’ 인구는 일할 의사도 부족했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통해 분석해 본 결과, 청년층 ‘쉬었음’ 인구 중 ‘일하기를 원했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한 사람은 전체의 75.6%인 33만5000명으로 나타났다. 4명 중 3명은 구직 의사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구직 의사가 있는데도 쉬는 나머지 청년층은 ‘원하는 임금 수준이나 근로조건이 맞는 일거리가 없을 것 같아서’(4만5000명)를 가장 많은 이유로 꼽았다. 뒤이어 ‘이전에 찾아보았지만 일거리가 없었기 때문에’(2만 명), ‘교육·기술·경험이 부족해서’(1만4000명), ‘근처에 일거리가 없을 것 같아서’(1만2000명), ‘전공이나 경력에 맞는 일거리가 없을 것 같아서’(9000명) 순으로 이어졌다.
결국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 탓에 청년층이 구직 시장을 아예 떠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노동집약 효과를 지닌 내수 회복이 더디게 나타나면서 일자리 양극화가 심화하는 것이다.
과거보다 고학력자가 많아지면서 취업 눈높이가 높아진 영향도 있다. 원하는 일자리와 남아 있는 일자리 간에 ‘미스매치’(불일치)가 점점 심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대졸(전문대 포함) 이상 ‘쉬었음’ 청년층 인구는 전년 대비 19.8% 늘어난 반면, 고졸 이하는 4.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고용률 악화는 저출생 흐름과 맞물리면서 산업 생산성 악화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중장기적으로는 산업 노동인력의 고령화, 세수(稅收) 차질, 만혼에 따른 저출산 악순환 등 국가적 손실이 커진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은퇴를 미루는 베이비부머 세대와 경합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청년층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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