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뺏긴 삼성의 자리 [사이공모닝]
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두 얼굴의 베트남-뜻 밖의 기회와 낯선 위험의 비즈니스>라는 책도 썼지요.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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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북부 하노이에서 2시간가량을 차로 달리면 삼성전자 박닌 공장이 나옵니다. 2008년 삼성전자가 베트남 첫 투자지역으로 선택한 곳이지요. 이곳에서는 베트남 직원들이 갤럭시 스마트폰을 생산합니다. 삼성전자가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스마트폰의 절반이 이곳에서 만들어집니다.
공장이라 칭하고 있지만 이곳을 직접 가보면 하나의 도시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듭니다. 잘 정돈된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대규모 생산 공장과 직원들을 위한 기숙사, 식당, 교육시설까지… 티끌 하나 허용하지 않는 이 공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만 2만여명에 달하지요. 베트남에서는 “삼성 공장에 취직하면 부모들이 시골 마을에서 잔치를 벌인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베트남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꿈의 직장이 바로 이곳이었지요. 삼성은 베트남에서도 ‘국민 기업’이라 불립니다.
그만큼 ‘삼성’이란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도 높습니다. 몇 년 전 냐짱에서 만난 반미 노점상 주인은 “나도 삼성 갤럭시 핸드폰을 쓴다”며 “한국에서는 얼마에 살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신은 1699만동(약 92만원)에 구매했다며 구체적인 가격까지 외우고 있더라고요. 자신의 소득에 비해 비싼 가격이라 그랬을 겁니다. 그래도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유, 삼성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와 믿음이겠지요.
그런데 최근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올해 2분기, 삼성이 베트남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에 출하량 1위 자리를 빼앗긴 겁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중국에 1위 뺏긴 삼성
삼성전자는 베트남 스마트폰 시장 상위 5개 브랜드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무려 24%나 줄어들었죠.
삼성을 제치고 1위 자리를 차지한 브랜드는 중국의 ‘오포’(oppo)였습니다. 전년 동기보다 110%나 신장해 전체 시장 점유율(27%) 1위를 기록했습니다. 삼성은 21%의 점유율로 2위로 내려앉았고, 샤오미(20%)·애플(16%)·비보(6%)가 뒤를 이었지요. 또 다른 통계(IDC)에서도 삼성전자의 점유율(21.7%)은 오포(26%)에 뒤집니다.
물론, 이 통계들은 제조사에서 유통업체에 납품한 스마트폰의 대수인 출하량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직접적으로 판매된 실제 판매 대수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언론들은 이런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유통·소매점들은 재고가 쌓이는 것을 피하려 하기 때문에 출하량과 판매량은 동일하지는 않아도 관련이 있다.” 결국, 출하량이 소비 시장에서도 유의미한 숫자라는 것이지요.
베트남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은 선두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위태로운 1위가 아니라 2위 브랜드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선두였지요. 2023년 4분기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은 31%로 2위인 애플(21%)보다 10%포인트 높았고, 오포(16%)는 4위 브랜드에 그쳤습니다. 올해 1분기만 해도 삼성전자가 28%의 점유율로 샤오미(19%)보다 9%포인트 많았고, 오포와 애플은 18%에 불과했지요.
전문가들은 “삼성을 필두로 한 600달러(81만원) 이상의 최고급 스마트폰 시장이 확대하고 있다”면서도 “중국 기업이 주도하는 저가 시장은 환율 변동 등에 민감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오포와 샤오미, 아너와 리얼미 같은 브랜드들은 베트남에서 300만동(16만원) 미만의 제품을 내놓으며 저가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중국 영향력 확대하나
베트남 스마트폰 시장의 변화를 삼성전자라는 특정 회사의 문제로만 봐야 할까요?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한국이 선전하던 베트남 시장에서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될 거란 신호탄은 아닐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베트남과 중국이 같은 공산주의 국가라는 점만 생각하지만 두 나라의 관계는 좀 더 복잡 미묘합니다. 베트남과 중국은 메콩강 개발을 두고 분쟁을 겪는 동시에 우리나라와 일본의 독도 문제처럼 남중국해(베트남은 동해, 중국은 남해라 부르는 곳이지요)를 두고도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미중 무역 전쟁 당시 미국이 “화웨이를 5G 통신망에서 배제해달라”고 촉구했을 때 아세안 국가 최초로 화웨이 기술을 거부한 것 역시 베트남이었습니다. 당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동남아 순방 일정에서 베트남만 제외하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최근 중국의 입장이 달라졌습니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영업난을 겪거나 파산하는 기업이 많아진 중국이 새로운 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중국은 내수 시장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립니다. 그 중 한 곳이 바로 베트남이지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공장이 있는 박닌 성에서는 요즘 중국 기업들의 생산·제조 공장이 빠르게 수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베트남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있지요. 지난 1988년부터 2023년까지 누계로는 한국이 베트남에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한 국가였지만 지난 1년을 보면 한국은 3위로 내려앉았습니다. 1위는 싱가포르, 2위는 일본, 4~5위는 홍콩, 중국, 대만이었지요. 중국계 자본으로 분류되는 싱가포르, 홍콩, 중국, 대만의 투자금이 대거 유입되고 있습니다.
앞서 보내드린 뉴스레터에서 소개해 드렸다시피 베트남은 실리를 중요시하는 ‘대나무 외교’의 달인입니다. 중국과 갈등을 벌였어도 베트남 발전에 도움이 되는 투자를 거부할 리가 없지요. 과거 우리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각종 세금을 면제해주고, 인력 유치에 도움을 줬던 베트남이 중국 기업에는 혜택을 주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습니다.
이달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수 시장 둔화를 이유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에서 2.5%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경쟁자가 등장했을 때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 그리고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하는 것. 기업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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